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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2 도서 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공식 직영
스펄전의 아가서 복음이야기 시리즈 종이책 ISBN 9791124736753 전자책 ISBN 9791124736746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2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2

찰스 H. 스펄전 저 · 나무와열매 번역실 역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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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아가서는 영적인 마음으로 읽는 사람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시이다. 또한 성경 전체에서 숭고함과 아름다움은 독수리가 바위 높은 곳의 둥지에서 편안히 머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2』 중에서
BOOK OVERVIEW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아가서 설교문은 총 65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6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49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2)이다.

TABLE OF CONTENTS

📑 목차

01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7p
02 I 몰약 향주머니(A Bundle of Myrrh) 23p
03 II 장미와 백합화(The Rose and the Lily) 54p
04 III 최고 중의 최고(The Best of the Best) 86p
05 IV 가시나무 중의 백합화(The Lily Among Thorns) 115p
06 V 숲속의 사과나무(The Apple Tree in the Woods) 147p
07 VI 사과나무 아래에서(Under the Apple Tree) 177p
08 VII 노루와 들사슴(The Roes and Hinds) 199p
09 VIII 봄을 위한 설교(A Sermon for Spring) 209p
10 IX 연한 포도송이(The Tender Grapes) 237p
11 X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이 서로에게 가진 권리(The Interest of Christ and His People in Each Other) 263p
INSIDE THE BOOK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

솔로몬의 아가서는 영적인 마음으로 읽는 사람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시이다. 또한 성경 전체에서 숭고함과 아름다움은 독수리가 바위 높은 곳의 둥지에서 편안히 머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주님이 아가에서 이런 표현 방식을 사용하신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가장 뛰어난 시적 능력까지도 주님께 바쳐져야 함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주님에 관한 높은 생각과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상상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낯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마땅히 경배해야 한다. 예수님은 가장 숭고한 시가 우리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생각으로 우리가 주님을 기뻐하기를 바라신다. 이제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여러분 앞에 설명하려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주님이 자신을 높여 말씀하시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를 높이 생각할수록 우리는 그분과 맺은 관계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영혼은 그리스도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혼인 생활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높이 생각하는 것이 행복한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영혼과 그리스도의 혼인 관계에서는 이것이 더욱 중요하다. 시편의 말씀을 들어 보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시 45:11). 예수님은 우리의 남편이시다. 이제 그분을 ‘바알(Baal)’, 곧 ‘너의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시(Ishi)’, 곧 ‘나의 남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 5:23). 아내가 남편을 멸시하고 업신여긴다면 창조 질서가 무너지고 가정의 조화도 깨진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를 멸시하게 된다면 더 이상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설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얼마나 높이 보좌에 앉아 계시는지를 깨달을수록 우리는 그 보좌 아래에서 더욱 겸손히 엎드리게 된다. 그러면 은혜의 질서 안에서 주 예수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더욱 올바르게 행할 준비가 된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의 주 그리스도는 여러분이 자신을 높이 생각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야 여러분이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권위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훌륭한 남편이신 주님께 더욱 합당한 신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 주님은 우리가 자신을 높이 생각할수록 주님을 향한 사랑도 커진다는 것을 아신다. 사람은 자신이 높이 여기지 않는 대상을 쉽게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과 존경은 함께 간다. 물론 불쌍히 여겨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높임을 받으신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그런 사랑을 드리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반드시 감탄하며 우러러보는 사랑이어야 한다. 그 감탄이 높이 올라갈수록 우리의 사랑도 더욱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간절히 권한다. 여러분의 주님이 지니신 뛰어나심을 깊이 생각하라. 주님이 여러분의 본성을 입으시기 전 태초부터 누리셨던 영광 속에서 그분을 깊이 생각하라. 별들이 빛나는 보좌에서 주님을 내려오게 하여 수치의 십자가에서 죽게 한 그 크신 사랑을 생각하라. 주님의 손을 못에 내어 주고 심장을 창에 내어 주게 한 그 전능한 사랑을 깊이 생각하라. 연약한 모습으로 모든 지옥의 권세를 이기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감탄하라. 고난을 통해 여러분의 모든 죄의 군대를 무너뜨리셔서 그 죄들이 다시는 영원히 여러분을 대적하여 일어서지 못하게 하신 주님을 바라보라. 이제 다시는 죽지 않으시려고 살아나신 주님을 바라보라. 이제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으시려고 왕관을 쓰신 주님을 바라보라. 이제 다시는 고난을 받지 않으시려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을 바라보라. 그분 앞에 엎드리라. 여러분 마음 깊은 곳의 궁전에서 그분을 영접하라.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그분을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높이라. 오직 그렇게 할 때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이 마땅히 그러해야 할 모습에 이를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높이 여기는 마음은 주님도 잘 아시듯 우리의 위로를 위해 꼭 필요하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그리스도를 매우 높이 여기면 이 세상의 것들은 여러분에게 작은 것이 된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잃어도 그 상실이 그토록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이 겪는 손실과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날개조차 여러분을 먼지에서 들어 올릴 수 없다고 느낀다면, 분명 세상을 지나치게 크게 여기고 주님을 지나치게 작게 여긴 것이다. 나는 저울 하나를 본다. 한쪽 저울판에는 자녀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놓여 있다. 그러나 다른 쪽 저울판에는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이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이제 그 사람에게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지 살펴보자. 예수께서 이 가벼운 환난을 높이 들어 올리신다면 잘된 일이다. 그러나 환난이 예수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면 참으로 우리의 영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알면서도 시련에 너무 짓눌려 도무지 기뻐할 수 없다면 그대는 마땅히 사랑해야 할 만큼 예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분에 관한 기쁨 가득한 생각을 품기만 하면 조약돌 하나는 잃었지만 다이아몬드는 그대로 간직한 사람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또 불길 속에서 낡은 천 조각과 썩은 누더기 몇 개가 타는 것은 보았지만 자기 자녀들은 불 속에서 구해 낸 사람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주님의 귀하심을 깊이 깨닫는다면 가장 깊은 고통 중에서도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것이시기에 기뻐할 것이다. 상처의 모든 아픔을 빼내는 고약을 말하지 말라. 질병을 고치는 약을 말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달콤한 사랑을 영혼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상처에 한 번 붙이기만 한다면 그 상처는 곧 나을 것이다. 예수의 사랑이라는 귀한 약 한 방울을 영혼이 맛보기만 한다면 마음의 모든 아픔을 영원히 몰아낼 것이다. 예수여, 예수여, 예수여, 우리 안에 계시옵소서. 그러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 놓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우리를 느부갓네살의 풀무불 속에 넣으셔도 좋다. 주님이 우리의 벗이 되어 이글거리는 숯불 위를 함께 걸으신다면 우리는 어떤 악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주님은 우리가 자신을 위대하게 생각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영혼의 모든 능력이 활기를 얻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나는 예수를 높이 여길수록 사랑이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믿음이나 인내나 겸손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높이 여기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영적인 사람의 모든 능력이 힘 있게 움직인다. 나는 이 기압계로 여러분의 경건을 살펴보겠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는 높은 자리에 계시는가 아니면 낮은 자리에 계시는가? 그리스도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가? 주님이 함께하시지 않아도 만족하며 살아왔는가? 주님의 영광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주님의 법을 소홀히 여겼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이 병들어 있음을 나는 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그 병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내가 예수를 높일 수 있을까?’였다면 어떠한가? 여러분 영혼의 날마다의 소원이 ‘아, 어디로 가야 그분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만 있다면!’이었다면 어떠한가?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수많은 연약함이 있고 자신이 과연 하나님의 자녀인지조차 거의 알지 못한다 해도 나는 여러분이 안전하다고 의심 없이 확신한다. 여러분이 예수를 높이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의 누더기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그분의 왕의 옷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상처가 피를 쏟아 낸다 해도 나는 그것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그분의 상처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눈에 그 상처들이 빛나는 루비처럼 보이는가? 여러분이 나사로(Lazarus)처럼 거름더미에 누워 있고 개들이 와서 핥는다 해도 나는 여러분을 조금도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나는 여러분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판단하지 않는다. 아름다우신 왕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분은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영광스럽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가? 할 수만 있다면 그분을 더욱 높이고 싶은가? 그분을 찬양하는 소리에 나팔 하나를 더 보탤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을 수 있는가? 아, 그렇다면 여러분은 잘되어 가고 있다. 여러분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위대한 분이시라면 머지않아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주님은 믿음의 눈에 지극히 아름답고 기쁨을 주시는 분이다. 주님은 자신 안에 어떤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는지만 말씀하지 않으신다. “나는 장미요 나는 백합화이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자신에게 바라볼 만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려 주신다. 장미는 바라보기만 해도 매우 아름다운 꽃이기 때문이다. 막 피어나려는 장미 봉오리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 어디 있겠는가? 활짝 핀 장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백합화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백합화는 땅의 꽃이라기보다 하늘의 꽃처럼 보인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믿음의 눈에 아름답고 기쁨을 주시는 분이다. 내가 처음 그리스도를 보았던 때를 기억한다. 그 광경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뒤에도 나는 여러 번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슬퍼하는 것은 단 한 순간이라도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돌린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은 태양을 바라보다가 캄캄한 어둠으로 눈을 돌리는 것과 같다. 행복을 바라보다가 비참함으로 눈을 돌리는 것과 같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여러분에게 그분을 보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을 보아도 얻을 수 없는 평안과 안식과 소망을 가져다준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얼마나 달콤해지는지 모른다. 삶의 쓰라림은 사라지고 앞으로 올 생명의 영광을 미리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 본문의 비유는 참으로 정확하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예수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참으로 그분은 장미처럼 붉고 백합화처럼 희시다.” 다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에게서 우리에게 풍겨 오는 향기로도 큰 기쁨을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는 달콤하고 다채로우며 사라지지 않는 향기가 있다. 영적인 후각으로 그 향기를 맡으면 참으로 큰 기쁨을 얻는다. 후각은 아마도 매우 섬세한 감각의 한 종류일 것이다. 어떤 물질에서 나온 아주 작은 입자들이 민감한 신경에 닿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생기는 감각을 냄새를 맡는다고 표현한다. 후각은 신비로운 감각이다. 냄새를 맡는 것보다 보고 듣는 것을 이해하기가 더 쉽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영적으로 느끼는 방법이 있다. 그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달콤함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영적 감각에 닿아 가장 큰 기쁨을 준다. 몸에 코가 있고 향기로운 냄새를 느끼는 섬세한 신경이 있는 것처럼 영혼에도 영적인 후각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멀리 계신 듯 보여도 영혼은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는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향기로 기뻐한다. 날마다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 무엇인가? 그분의 진리와 성령 하나님과 그분의 영향력과 약속과 교훈과 위로의 말씀이다. 이 모든 것에는 하늘의 달콤함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시편 기자와 함께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린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시 45:8). 이 향기로운 냄새가 우리에게 불어올 때마다 우리도 기뻐한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리스도인에게 달콤하다. 그리스도가 손대신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가슴에 품고 싶다. 그리고 영광 중에서 그분의 얼굴을 뵙는 날까지 사랑스러운 물망초처럼 간직하고 싶다. 그렇다. 주님이 밟으셨던 돌들까지! 나는 거의 이렇게 말할 뻔했다. 주님이 바라보셨던 산들까지도 우리에게 소중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팔레스타인(Palestine)을 우상처럼 섬기거나 미신적으로 숭배하지 않는다. 주님이 큰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셨던 동산조차 그렇게 숭배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와 관계된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 마음에 끊이지 않는 경외와 사랑이 있다.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놀랍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천사들의 노래가 놀라웠던 것과 같다. 또 이스라엘이 광야에 진을 쳤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처럼 그 맛이 달콤하다. 그렇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달콤한 향기가 있다. 여러분 모두 그 향기를 느끼고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분이시다.

PUBLISHER'S REVIEW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ABOUT THE AUTHOR

👤 저자 소개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설교의 황태자 (The Prince of Preachers)”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ABOUT THE TRANSLATOR

🎓 역자 소개

🏛️

나무와열매 번역실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번역·기획팀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BIBLIOGRAPHIC INFORMATION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도서명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2』 시리즈 / 권차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2
저자 (원저)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옮긴이 (역자) 나무와열매 번역실
출판사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발행일 2026-11-09
쪽수 294쪽 판형 / 무게 128*188mm
종이책 ISBN 9791124736753 전자책 ISBN 9791124736746
정가 (종이책) 21,000원 정가 (전자책)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전자책 사양 EPUB (리플로우) 전자책 파일 크기 4.6MB
직영 단독 혜택 출판사 직영 단독 스펄전 기념 책갈피 증정 + 안전 직발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