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3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3
그리스도 예수를 문으로 삼아 들어온 우리 모두가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장막에 있는 은밀한 곳까지 담대히 들어가 기쁜 마음으로 본문의 말씀을 노래하기 바란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아 2:16).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3』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전도서 설교문은 총 63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6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47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3)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그리스도 예수를 문으로 삼아 들어온 우리 모두가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장막에 있는 은밀한 곳까지 담대히 들어가 기쁜 마음으로 본문의 말씀을 노래하기 바란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아 2:16). “그분은 내 것이고 나는 그분의 것이네. 내가 경배하는 하나님이시네. 내 아버지요 구주요 위로자이시니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러하시네.” 이 말씀은 은혜 안에서 매우 높은 상태를 묘사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 묘사가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것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원리가 한 번 나타난 것일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척도이다. 공기가 더 따뜻해질수록 온도계의 눈금이 올라가는 것처럼 영적 생명이 더 힘 있고 뜨거워질수록 예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높아진다. 여러분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다. 우리가 온전히 거룩하게 되고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해질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며 참으로 모든 것보다 더 크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교만이 영혼을 가득 채우면 예수께서 계실 자리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수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면 자아는 낮아지고 죄는 왕좌에서 쫓겨난다. 주 예수를 하찮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영적으로 눈멀고 벌거벗고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으로 여겨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반역자는 정당한 왕을 업신여기지만 총애받는 신하는 열정적으로 왕을 칭송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시는 분이다. 그분은 순금과 가짜 금속을 가려내는 시금석이다. 그분의 이름 자체가 연단하는 불과 같고 잿물과 같다. 거짓 신앙인은 그 이름을 견디지 못하지만 참된 신자는 그 이름 안에서 승리한다. 우리는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갈 때 은혜 안에서도 자라 간다.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의 모든 자리를 가득 채우시게 하라. 그때에야 우리는 육신의 헛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참된 생명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참으로 영적인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제국이 흥하고 망하는 일도 아니며 승리한 군대가 진군하는 일이나 패배로 나라가 황폐해지는 일도 아니다. 그는 왕관이나 주교관에도, 칼이나 방패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그의 감탄 어린 시선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그분의 사역에 고정되어 있다. 그에게 예수는 역사의 중심이며 섭리의 영혼이고 핵심이다. 그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은 자기 구속자요 주이신 분에 관한 지식이다. 그가 연구하는 것은 예수가 누구신지,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루실지,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고 앞으로 무엇을 하실지에 관한 것이다. 신자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죄인들이 그분을 알게 되느냐는 점이다. 예수의 영예와 관련된 일이 날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다른 일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대로 처리하시도록 맡겨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신다면 세상의 나머지 모든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가장 좋은 상태에 있을 때 사랑하는 그분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머리요 앞부분이며 심장이요 영혼이다. 오늘 본문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그린 초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라는 연주자가 부드러운 줄을 건드릴 때 잘 조율된 그의 수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아 2:16).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하늘의 기쁨과 영광을 묘사하려고 아무리 애써 왔어도 모두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다시 그것을 묘사하려 해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하신 것은 눈이 보지 못하고 귀가 듣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시계가 한 번 똑딱거릴 때마다 우리의 기쁨은 더 가까이 온다. 보라! 그것이 날개를 달고 날아오고 있다. 겨울 같은 슬픔의 하루도, 여름 같은 기쁨의 하루도 모두 우리를 그날에 더 가까이 데려간다. 지난 주일 저녁에도 우리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밤마다 이동하는 장막을 치며 하루 길만큼 본향에 더 가까이 간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누리는 가장 귀한 위로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벽에 가까워지고 있다. “날이 밝을 때!” 그것은 또한 활동을 시작하라는 부름이다. 잠에서 깨어난 피조물들은 하루의 일을 준비하고 온 자연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연은 마치 밤의 검은 날개 아래 얼어붙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밝은 햇살이 빛을 가져오자 생명도 다시 활기를 얻는다. 이제 일꾼은 허리를 동이고 자기 일을 하러 나간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가장 많이 하도록 도움받은 사람들조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무언가를 완성하는 곳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시도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라며 힘을 다하고 있다. 내 상태를 비유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종종 알껍데기 안에 있는 병아리와 같다고 느낀다. 병아리는 껍데기를 쪼며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며, 더 많이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범위는 너무 좁고, 자신은 갇히고 막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어린 독수리들이 마침내 알을 깨고 나와 둥지를 떠나 날개를 펼치는 순간은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 우리가 새벽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행복도 이와 같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지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죄 없이 그분을 섬기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떠도는 일 없이 그분을 경배하며, 그분의 거룩하신 마음을 조금이라도 질투하게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이 온전히 그분께 헌신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서 던져진 벼락이 한길로 곧게 나아가듯 한결같고도 거룩한 끈기로 의무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을 것이다. 섬기는 길에서 스랍처럼 빠르고 그룹처럼 강할 것이며, 바로 그 섬김 자체가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벽을 간절히 기다려도 좋다. 그 새벽이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날이 밝을 때!” 그것은 또한 모든 것을 분명히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밤에는 우리는 주위를 더듬듯 바라본다. 산의 윤곽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고, 달빛을 따라 강이 흐르는 길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분별력이나 주변의 모습에서 끌어내는 추론에 따라 많든 적든 무엇인가를 알 수 있지만, 여전히 밤은 어둠의 시간이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촛불과 등불을 켜도 밤 자체를 낮으로 바꿀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우리가 온전히 알지 못하는 때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 가운데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그 지식은 온 세상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귀하다. 주의 이름을 찬송하라!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희미하게 볼 뿐이며, 아직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데 이르지 못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처음 글을 배우는 아이처럼 한 음절씩 읽는다. 읽기는 하지만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호레이스(Horace)를 읽는 소년과 같다. 그는 문체의 아름다움도 언어가 지닌 시적인 우아함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어를 하나씩 겨우 읽어 가며 문자적인 뜻을 조금 알아낼 뿐이다. 아마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죽기 전에 알고 있던 지식은, 천국에 들어간 어린아이가 그곳에서 단 5분 동안 알게 되는 것보다 적을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적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사라질 것이다. 새벽이 세상에 찾아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제 빛깔과 올바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전에는 모든 것이 검게만 보였지만 이제 색깔을 보게 된다. 풍경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고, 산이 또렷하게 솟아 있으며, 강은 힘차게 바다를 향해 흐른다. 아주 작은 꽃들까지도 우리의 눈길을 끈다. 태양이 비추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무지개의 색깔로 칠해 놓으신 듯 땅 위의 모든 것이 분명히 보인다. 우리가 다음 세계에 들어갈 때 얻게 될 발견은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 “그때 우리는 보고 듣고 알게 되리라. 이 땅에서 바라며 소원했던 모든 것을! 우리의 모든 능력은 그 영원한 기쁨의 세계에서 즐겁게 쓰임을 얻으리라!”
믿는 사람 중에는 살아 있다고 기대할 정도의 은혜만 겨우 지닌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일할 힘이 없다. 다른 이를 돕기 위해 내밀 팔도 없고,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것을 볼 수도 없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 온 시력과 힘을 다 써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우리 어머니의 집으로 모셔 오려는 사람들은 달라야 한다. 의심과 두려움에 가득한 연약함을 지나, 구주를 굳게 붙드는 확신과 날마다 그분과 교제하며 사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나는 이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이들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성도들이여, 당신이 사랑하는 교회 안으로 그리스도를 모셔 오고 싶다면 먼저 당신의 가장 깊은 영혼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분의 동행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외침은 이것이어야 한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너희가 보았느냐?” 또 여러분의 열망이 도달하려는 곳은 이것이어야 한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내가 찾았노라.” 말뿐이어서는 안 된다.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어야 한다. 예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정도여서는 안 된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이 그분의 이름을 들을 때 움직여야 한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말은 아주 강한 표현이다. 신부가 예루살렘의 딸들을 사랑할 수도 있고,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을 사랑할 수도 있으며, 각각 알맞은 자리에서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영혼의 사랑, 곧 사랑의 본질이며 가장 깊고 다정하고 순수하고 참된 사랑은 온전히 한 분을 향한다. 여기에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스도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중심이고 으뜸이며 모든 것이 되시는 순결한 마음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바로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를 찾아 교회 안으로 모셔 올 남자들이며 여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수를 늘려 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여러분 각자가 이 차가운 시대에 쇠약해져 가는 교회를 불쌍히 여기고, 그 이마에서 사라져 버린 영광을 회복하려고 힘쓰기 바란다. 미지근한 라오디게아를 위해 기도하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데를 위해 기도하라. 그러나 여러분의 기도가 힘을 발휘하는 정도는 여러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구속자를 사랑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정도와 비례할 것이다. 예수를 이처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이 장을 보면 신부는 그분을 찾았다. 침상에서 찾았고, 거리에서도 찾았으며, 큰길에서도 찾았다. 마침내 파수꾼들에게 물어보면서까지 찾았다. 그분을 만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곳에서 찾았다. 우리에게는 예수와 끊임없는 교제가 필요하다. 영혼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쉴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죄로 그분을 근심하게 했고, 그래서 그분이 멀리 “몰약 산과 유향 언덕”으로 물러나 계신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 우리의 느슨한 생활이나 기도의 소홀함, 또는 다른 어떤 잘못 때문에 그분의 얼굴빛을 잃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우리는 결심해야 한다. 그분이 나타내시는 사랑의 충만함으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마음 안에 머무실 때까지 우리 영혼에는 쉼이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그분을 찾으라. 자매여, 그분을 찾으라. 그분은 여러분 누구에게서도 멀리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강렬하게 그분을 갈망하면서 찾으라. 그렇게 하기 전에는 그분을 성도들의 모임 안으로 모셔 올 사람이 될 수 없다. 예수를 교회의 방 안으로 모셔 오려고 힘쓰라. 그러나 먼저 여러분 자신에게 그분이 계신지 분명히 하라.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열심은 위선이 될 것이다. 주님을 찾을 때 우리는 모든 사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신부는 파수꾼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보통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쓸모없는 사람처럼 지나친다면 하나님께도 그들에게도 감사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역자들을 활용하되 그들을 넘어서야 한다. 신부는 파수꾼을 통해 직접 주님을 찾지 못했다. “그들을 떠나자마자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만났노라.” 사랑하는 청중 여러분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내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진리가 단순하고 진지하게 선포되는 것을 듣기만 하면 그것 자체가 자동으로 영혼에 복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종을 훨씬 지나쳐 주인께로 나아가라. 주일마다 각 사람의 마음에 이런 갈망이 있기를 바란다. “주여, 주님 자신과 교제하게 하소서.” 물론 우리는 선포되는 진리를 들을 때 예수를 보게 되며, 나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님을 바깥뜰에서 예배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바로 속죄소 앞에 서야 한다. 멀리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우리 영은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세상이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시므온처럼 주님을 품에 안아야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요한처럼 주님의 품에 머리를 기대야 쉴 수 있다. 주님의 사도들도 좋고 선지자들도 좋으며 복음 전하는 이들도 좋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두를 지나쳐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구주이신 주님과 직접 교제하기를 목말라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복되게 할 것이다. 오직 이런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주목하라. 사랑하는 이를 찾을 때까지 끝까지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다시 얻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죄가 길을 막는다면 단호하게 버려야 한다. 소홀히 한 의무가 있다면 진지하게 수행해야 한다. 계속해서 교제를 누리려면 더 높은 은혜의 길로 올라가야 한다면, 어려움이라는 산도 두려워하지 말고 올라가야 한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3』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3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6-11-09 |
| 쪽수 | 247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736777 |
전자책 ISBN | 9791124736760 |
| 정가 (종이책) | 20,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5.0MB |
| 직영 단독 혜택 | 출판사 직영 단독 스펄전 기념 책갈피 증정 + 안전 직발송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구약 지혜서·시가서 명설교 완역본으로 깊은 영적 통찰을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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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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