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4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4
양심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셔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크든 작든 양심은 언제나 죄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선포한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4』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전도서 설교문은 총 63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6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47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4)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양심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셔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크든 작든 양심은 언제나 죄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선포한다. 이것은 임의로 정해진 규칙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죄와 고통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관계가 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면 죄는 그것을 범한 사람에게 악한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양심이 그 악한 결과를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셨다는 사실, 곧 죄인이 받아야 했던 고난을 그분이 받으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죽으신 자들의 머리요 둘째 아담이셨기에 그들의 대속자가 되는 것이 정당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안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피처럼 붉은 덮개 아래로 들어가라. 그곳에 들어가야만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마다 언제나 가장 두드러진 것은 피였다. 아벨은 피 흘리는 어린양을 가져와야 했고, 노아도 죽인 짐승을 제물로 드려야 했다. 왕께서 애굽에서 자신의 택하신 자들과 잔치를 나누셨을 때,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신 모든 집의 문 인방과 두 문설주에는 피가 발려 있었다. 광야를 지나가실 때 성막을 덮는 것 중 하나는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이었다. 거룩한 뜰 안팎에서도 끊임없이 피가 뿌려졌다. 율법 아래서는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율법의 목소리는 복음이 선포하는 것과 같은 사실을 계속해서 외쳤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우리 구주의 생애는 나무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끝나야 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 전에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사랑의 식사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붉은 포도주가 담긴 잔이었다. 그것은 그분의 피를 상징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자기 백성과의 교제를 눈에 보이게 나타내실 때마다 포도주가 부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자리를 대신한 대속자의 생명이 쏟아져 완전한 만족이 이루어진 이 통로 외에는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며 나타내실 수도 없다. “그 덮개는 자색이라.” 오, 이 입술로는 그 자색이 얼마나 귀한지 다 말할 수 없다. 이 마음조차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얼마나 귀한지 온전히 알 수 없다. 그 생명의 피는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우리의 구속을 위해 기꺼이 흘려진 피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구원의 병거 안에서 편히 앉아 위를 바라보며 기뻐하라. 의심이나 두려움이나 불신이나 의혹이 여러분을 괴롭히게 하지 말라. 피처럼 붉은 덮개 아래에서 여러분은 안전하다. 이제 한 단계가 더 남아 있다. 우리는 피에서 그 피를 흐르게 한 사랑으로 올라간다. 왕의 병거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그 사랑은 단지 병거 바닥에만 깔려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차 안쪽 전체를 부드러운 재료로 덮어 앉고 기대게 하는 것처럼 은혜 언약 전체의 안쪽이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달콤한 사랑으로 장식되고 아름답게 되어 신자의 영혼을 기쁘게 한다. 은혜 언약의 가장 깊은 곳은 사랑이다. 전부 사랑이고 섞이지 않은 사랑이며 보이지 않는 사랑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사랑이다. 은혜 언약에 대해 더 많이 알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지혜와 능력과 순결함과 영원함을 더욱 깊이 감탄하게 된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은 바로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영원한 구원으로 데려오신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이다. “주께서 인자하심으로 나에게 관을 씌우셨습니다. 주의 사랑이 내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냈습니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주의 사랑이 가장 귀한 값을 치르고 나를 구속했습니다. 주의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주의 사랑이 이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주의 사랑이 마침내 완성하여 나를 주의 완전한 형상으로 주 앞에 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입혀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한 요점은 이것이다. 복음을 공부할수록 복음은 더 커지고 더 귀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권한다. 성경을 많이 묵상하라. 여러분의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깊이 생각하라. 그분의 아름다움과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자주 묵상하라. 많은 그리스도인처럼 겉만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오늘날은 옛 청교도 시대처럼 깊이 묵상하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피상적으로 생각한다. 성경의 표면에도 금덩어리가 놓여 있지만 가장 값진 금광은 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곳까지 파 내려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일에 깊이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하라. 어떤 학문은 짧은 시간 안에 알 만한 것은 거의 다 배울 수 있다. 더 깊이 공부할수록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만 들고 곧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관한 학문은 다르다. 배우면 배울수록 그 사실들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지고 그 사실들을 더 깊이 기뻐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리아처럼 언제나 주님의 발치에 앉으라고 권한다.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꿀이 가장 좋은 꿀이라고 한다. 그것을 생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의 생명에서 나오는 말, 곧 그의 “생명의 꿀”이다. 그런 말은 모든 사람에게 달콤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주 예수께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방울처럼 달콤하다. 여기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몇몇 사람에게 작은 주의를 주고 싶다. 어떤 사람의 말은 벌집에서 꿀이 떨어지듯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을 쓸어 가는 큰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다른 사람이 한마디 끼어들 틈조차 없다. 아무리 말을 얇게 눌러 한쪽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도 그 틈에 끼워 넣을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반드시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혀가 경첩에 달린 듯하고 진자처럼 계속 움직인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끝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것을 칭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기 교회를 칭찬하면서 입술이 “벌집처럼 떨어진다”고 말씀하신다. 벌집에서 꿀이 떨어질 때 처마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빠르게 쏟아지지 않는다. 꿀은 걸쭉하고 진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한 방울이 한동안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고, 그다음 방울이 생기고, 또 그다음 방울이 떨어진다. 빠르게 연속해서 쏟아지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은 말을 계속할 때 그 말은 종종 묽고 빈약하며 별 가치가 없다. 그러나 정말 좋은 말을 가진 사람의 말은 벌집의 꿀처럼 천천히 떨어진다. 내가 여러분에게 좋은 말을 한마디라도 덜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밖의 쓸데없고 어색한 말들이다. 오, 그런 말들을 빼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 역시 다른 많은 사람만큼 이 점에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말을 지금의 절반만 한다면 어쩌면 두 배로 더 좋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 하는 말의 십분의 일만 한다면 어쩌면 열 배나 더 나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말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그러나 혀를 멈출 줄 아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 참된 교회의 입술, 참된 신자의 입술에서는 벌집의 꿀처럼 풍성한 말, 풍성한 생각, 풍성한 기도, 풍성한 찬양이 떨어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한다. “저는 기도할 때 제 입술에서 그런 꿀이 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가 전혀 이어지지 않습니다. 찬송할 때도 마음을 실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하면 제가 너무 무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겸손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이 사람은 할 수 있다면 설교하고 싶어 한다. 할 수 있다면 나를 더 잘 영화롭게 하고 싶어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우리가 실제로 해낸 것만 재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보신다. 그래서 우리의 입술이 벌집처럼 꿀을 떨어뜨린다고 평가하신다. 세상에서 벌집의 꿀보다 더 달콤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세상 사람이 무엇을 가장 달콤하다고 생각하든, 그리스도께는 그리스도인의 말이 가장 달콤하다. 때로 신자들이 함께 앉아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이 땅에서 그들을 위해 겪으신 고난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분의 뛰어난 영광과 한없고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말하기 시작한다. 생명의 선한 말씀에서 자신들이 맛보고 만져 본 것을 서로 이야기한다. 길을 가며 이런 것들을 말할 때 그들의 마음은 속에서 뜨거워진다. 그 방에 예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소 지으시는 예수께서 그곳에 계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여기 있는 것이 좋구나. 내 형제들의 입술에서 벌집처럼 꿀이 떨어지고, 그들의 말이 내게 달콤하구나.” 또 어떤 때에는 그리스도인이 혼자 방 안에 있다. 몇 마디 끊어지는 말과 많은 한숨과 눈물과 탄식으로 하나님께 이야기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 계시며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 “나의 사랑아, 네 입술에서는 벌집처럼 꿀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여, 이제 예수에 대해 더 많이 말하지 않겠는가? 그분을 자주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기도와 찬양과 다른 사람을 세우는 말에 여러분의 혀를 더 자주 사용하지 않겠는가? 하늘에서 몸을 굽혀 여러분의 말을 듣고, 그분을 위해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귀하게 여기시는 이런 청중이 계시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여 주는 가운데 설교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만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설교해야 한다면 나도 그만두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플라톤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웅변가가 연설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 마침내 플라톤 한 사람만 남았다. 그런데도 웅변가는 온 힘을 다해 계속 연설했다. 왜 계속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대답했다. “플라톤 한 사람이면 어떤 사람에게도 충분한 청중이다.” 그렇다면 설교하거나 기도할 때 온 세상이 비난하고 온 세상이 등을 돌려도 예수 한 분이면 어떤 사람에게도 충분한 청중이 아니겠는가? 그분께서 만족하시고 우리의 말이 벌집보다 달다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옥의 모든 마귀가 달려들어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설교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다. 그것이 꿀이라면 계속 떨어지게 하라.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귀하게 여기신다면 온 세상의 평가보다 그분의 평가를 더 높이 두겠다. 그분이 누구보다 잘 아신다. 최고의 심판자이시며 마지막 심판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그분을 이야기하겠다. 그분께서 계속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또 하나 매우 두드러진 개념이 있다. 바로 내적 생명의 안전이다. “잠근 동산.” 숲의 멧돼지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작은 여우들이 포도나무를 망칠 수도 없다. “덮은 우물.” 바산의 황소들이 사나운 발로 그 물을 흐리게 할 수 없고 레바논의 들짐승도 와서 그 물을 마실 수 없다. “봉한 샘.” 썩은 물이 들어가 근원을 더럽힐 수 없고 물은 깨끗하고 살아 있는 상태로 보존된다. 아무도 돌을 던져 샘을 메워 버릴 수 없다. 신자의 내적 생명은 얼마나 안전한가! 사탄은 그 생명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다. 세상도 그 생명을 건드릴 수 없다. 고난과 시험과 박해로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날개 아래 덮여 있으며 악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된다. 세상의 고난이 어떻게 영을 죽일 수 있겠는가? 돌을 던져 영혼을 맞히려는 것이나 고난으로 영을 파괴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큰물이 넘칠 때에도 그것이 그에게 가까이 오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장막 은밀한 곳에 두셨고 그분의 초막 안에 숨기셨으며 높은 바위 위에 안전하게 세우셨다. 성이 포위당한 사람들을 지켜 주고 성벽이 그 안에 숨은 사람들을 보호하듯, 거대한 바위 같은 방어가 여러분의 거처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보호자이신데 누가 여러분을 해칠 수 있겠는가?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사 54:17). 그 어떤 유혹도 안의 생명의 순결함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다. 의심이라는 무거운 짐도 새로운 힘의 근원에서 나온 생명의 원리를 빼앗아 갈 수 없다. 땅과 지옥의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 영이 가장 약할 때 가장 거센 분노로 공격한다고 해도 그 불멸의 원리는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그 모든 세력에 맞서며 결국 하나하나 이길 것이다. 그 생명을 주신 분께서 자기 생명을 걸고 그것을 보존하겠다고 보증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온 불꽃과 같다. 하나님이 죽지 않으시는 한 그리스도인의 내적 생명도 꺼질 수 없다. 우리는 죽을 몸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불멸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사라질 이 겉껍질 안에 오래 남는 영혼이 있고, 그 영혼 안에는 영혼 자체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는 원리,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참으로 하나님이신 성령이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이며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과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해 우리 역시 그분과 함께 썩지 않는 생명을 가진다. 참으로 우리는 이 말씀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요 14:19).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4』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아가서의 복음이야기 4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6-11-09 |
| 쪽수 | 274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736791 |
전자책 ISBN | 9791124736784 |
| 정가 (종이책) | 20,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5.2MB |
| 직영 단독 혜택 | 출판사 직영 단독 스펄전 기념 책갈피 증정 + 안전 직발송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구약 지혜서·시가서 명설교 완역본으로 깊은 영적 통찰을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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