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이사야서의 복음이야기 1
스펄전의 이사야서의 복음이야기 1
이 복된 본문의 말씀에는 가장 온전한 용서의 약속이 담겨 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이사야서의 복음이야기 1』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이사야서 설교문은 총 271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95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18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이사야의 복음이야기(1)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이 복된 본문의 말씀에는 가장 온전한 용서의 약속이 담겨 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이 색들이 선택된 것은 매우 선명하기 때문이다. 주홍색과 진홍색은 즉시 눈길을 끈다. 어떤 색의 옷은 입고 지나가도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홍색 옷을 입은 사람은 훨씬 먼 곳에서도 보인다. 어떤 죄들은 눈에 띄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죄이다. 보지 않을 수 없으며 죄인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 중 많은 사람이 알듯이, 이 히브리어 단어는 두 번 물들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가 깊이 밴 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양털을 염료 속에 너무 오래 담가 두면 색이 빠지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빨거나 입어도, 색을 없애려면 천 자체를 없애야 한다. 많은 죄가 바로 이런 종류이다. 사실 우리의 타고난 타락도 이와 같아서 깊이 배어 있다.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해진 죄인이 선을 행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은, 구스 사람이 자기 몸을 씻어 희게 하거나 표범이 자기 반점을 없애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여기에는 선명하게 드러나는 정욕과 깊이 밴 정욕을 완전히 용서하겠다는 약속이 있다. 용서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주목하라. “눈처럼 될 것이다”라고 한다(사 1:18 참조). 순결하고 희며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다. 그러나 눈은 곧 흰빛을 잃으므로, 이 용서는 부지런한 주부가 깨끗하고 흰 아마포를 마련하려고 씻어 준비한 양털의 흰빛에도 비유된다. 여러분은 얼룩의 그림자도 죄의 흔적도 남지 않을 만큼 깨끗해질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눈에는 평생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과 같아진다. 아니, 더 나아가 말하겠다. 그날 그는 평생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나은 위치에 놓인다.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의 완전한 의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통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다. 우리에게는 한때 겉옷이 있었지만, 그것은 빼앗겼다. 우리가 믿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옷을 주시는데, 그 옷은 한없이 더 좋은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평범한 옷에 불과했지만, 그분께서는 우리를 왕처럼 입히신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옷을 입는다. 저기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지옥처럼 검다. 그러나 그가 믿자 하늘 자체의 순결함처럼 희어진다. 믿음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모든 죄를 없앤다. 사람이 예수님의 피로 가득 찬 그 거룩한 씻는 대야에 한 번 들어가면, 그에게는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남지 않는다(엡 5:27). 그의 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의 불의는 덮였으며, 그의 허물은 광야로 옮겨져 사라졌다. 이것이 복음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다. 복음은 우리 죄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없앤다. 조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며, 잠시가 아니라 영원히 없앤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 3:18). 오늘 그대가 세상에 있는 모든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예수님을 믿는 순간 구원받는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대 안에 거하시며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대를 위해 호소하여, 죄가 결코 그대의 책임으로 돌려지지 않게 할 것이다. 몇 해 전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참으로 끔찍한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자에게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께로 회심했다. 그에게는 한 가지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법의 형벌을 받기 전에 세례를 받는 것이었다. 당시 그가 살던 나라의 법에 따르면, 쇠사슬에 묶인 채 세례를 받는 것 외에는 그 일을 이룰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었는가? 그는 기쁨 속에서 세례를 받았다.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서 자신까지도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쇠사슬에 묶였지만 그는 자유로웠다. 사람 앞에서는 죄가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았다. 사람의 법으로는 형벌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저주에서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여, 말씀에 더하지 말라. 성경에 기록된 재앙들이 더해질까 두렵다. 말씀에서 제하지 말라. 생명나무에서 그대의 몫이 제하여질까 두렵다! 또한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담대함과 온전한 확신으로 진리를 선포한다. 겸손은 귀한 덕목이지만 주님을 대신하여 말할 때 머뭇거리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위대한 왕의 대사로 외국 궁정에 파견된 자가 자신의 직무를 잊고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굽실거리다 군주의 존엄을 떨어뜨리거나 소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배신할 수 있다. 대사는 자신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기억해야 한다. 직무와 본국에 합당한 위엄을 갖추고 담대하게 말해야 마땅하다. 동양의 전제군주들은 외국 대사들에게 티끌 속에 엎드릴 것을 요구하곤 했다. 어떤 유럽인들은 무역의 이익을 위해 비굴한 의식에 굴복했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대표에게 그것이 요구되었을 때 그는 조국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짓을 단호히 거절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가 비굴한 순종으로 만왕의 왕을 욕되게 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여러분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관용을 구하지도 않고 박수갈채를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며 마땅히 말할 바를 담대히 선포한다. 우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독단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신 것을 전할 때 우리는 마땅히 확신 있게 단언해야 한다. 우리는 '만약'이나 '그러나'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리라'와 '되리라'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러하다고 선포하셨다면 그것으로 모든 논쟁은 끝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때 모든 논쟁은 멈추어야 한다. 우리 주님의 권위를 내팽개치는 자들은 우리의 증언을 거부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나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신 진리를 듣고도 거절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그 잘못은 대사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왕께 행한 것이며, 설교자의 입이 아니라 진리가 흘러나온 하나님의 입을 거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너그러운 사랑을 베풀라고 촉구한다. 우리는 너그럽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의 돈을 쓸 때에만 그러하다. 우리에게 맡겨진 타인의 보물을 마음대로 나누어 줄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하나님의 진리를 다룰 때 우리는 청지기이다. 사람들의 생각에 영합하는 너그러움이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의 원칙에 따라 주님의 보물창고를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계시하신 바를 담대하게 선포한다. 주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그 잊을 수 없는 말씀이 오늘날 주님의 종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1:17-19). 거짓된 오류를 대적하여 주님을 대신해 말할 때 우리는 어조를 부드럽게 낮추지 않고 우레와 같은 벼락을 던진다. 거짓 과학을 마주할 때 깃발을 내리지 않으며 단 한 시간도 복종하여 물러서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는 인간의 지식이 쌓아 올린 수많은 도서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은 인간의 온갖 사상이 구축한 포대를 침묵시키는 거대한 대포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들은 마땅히 담대하게 외쳐야 한다.
그 빛을 일상에서 실제로 활용하라는 뜻이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사도 요한은 기록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그 빛이 여러분에게 실제적인 빛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을 보석함에 넣어둔 다이아몬드 팔찌처럼 모셔두어서는 안 되며 일상에서 늘 입는 옷처럼 걸치고 행해야 한다. 골방 속에 감추어 둔 등불이 아니라 발걸음마다 환히 비추는 빛이 되게 해야 한다. 믿는 바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의 빛에 걸어가라." 세상 사람들의 헛된 이론의 빛을 따라 걸어보려 한 적이 있는가? 나는 결코 그런 헛수고를 해본 적이 없다. 세상을 놀라게 한다는 새로운 학설들이 나타나지만 알고 보면 분별없는 자들의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떤 학자가 창세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데 들으셨습니까? 어떤 수학자가 민수기에 오류가 있음을 찾아냈다는데 아십니까?" 나는 대답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틀렸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학자들이 아직 공격하지 않은 구절이 있다면 머지않아 어떤 바보가 나타나 공격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이 성경의 진리를 정말 확신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답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성경의 완전한 영감을 온전히 믿으며 이 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틀림없는 진리임을 확신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의 무오성을 믿는다. 로마 가톨릭 교도는 교황의 무오성을 믿고, 철학자는 자신의 생각의 무오성을 믿는다. 나는 이 무오한 성경과 무오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회의론자들의 헛된 주장에 흔들리는 영혼들이 있다면 "여호와의 빛에 걸어가라." 수천 년 동안 시험을 거쳤으나 성경은 단 한 번도 부족함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 빛은 결코 꺼지지 않았으며 구름이 걷히며 오늘날 더욱 밝게 빛나고 있다. 이 등불은 하나님이 친히 켜신 유일한 등불이기에 지옥의 모든 마귀가 달려들어도 결코 끌 수 없다. 성경의 모든 교리와 계명과 약속이 공격을 받는다 해도 머리털 하나 흔들릴 필요가 없다.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면 영혼은 온전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이사야서의 복음이야기 1』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이사야서의 복음이야기 1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6-11-09 |
| 쪽수 | 252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736852 |
전자책 ISBN | 9791124736845 |
| 정가 (종이책) | 20,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5.0MB |
| 직영 단독 혜택 | 출판사 직영 단독 스펄전 기념 책갈피 증정 + 안전 직발송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구약 대선지서·이사야서 명설교 완역본으로 깊은 영적 통찰을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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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유와, 계절의 끝에서 맺히는 결실처럼 풍요로운 문장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