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기도의 영광 맛보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기도의 영광 맛보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043080
• 전자책 ISBN: 9791124043080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1. 모세의 얼굴에 빛이 임한 이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모세의 얼굴에 기이한 영광이 임했다. 우리는 먼저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그 얼굴에 그 영광이 임했는가?” 모세의 얼굴 피부가 빛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첫째, 그가 거룩한 산에서 하나님을 뵈었을 때 보았던 영광이 반사된 것이다. 이는 그가 드렸던 기도의 부분적 응답이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는 그 간절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그때 그 기도를 온전히 이루실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하셨다. 그러나 그 기도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1,400년이 지난 후에야 완전하게 응답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나며, 변화산 위에서 모세는 변모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뵈었다. 그때 그의 기도는 가장 충만하게 응답되었다. 시내 산에서는 여호와의 온전한 영광을 볼 수 없었으나, 그때에도 충분히 큰 인상을 받아 얼굴 피부가 빛날 정도였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빛을 얻고, 그 빛을 반사하여 주위에 전한다.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친구와 대화하듯 교제하였다. 이것이 그의 얼굴을 빛나게 했다. 태양이 거울에 비출 때, 그 빛이 반사되어 마치 작은 태양처럼 밝게 빛나듯이, 모세의 얼굴도 여호와의 영광을 반사했다. 모세의 얼굴은 해에 비친 달과 같았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비추신 빛을 사람들에게 비춘다.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보며 점점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고후 3:18). 그러므로 여러분이 골짜기에서 빛나기를 원한다면 먼저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하라. 더 큰 광채를 원한다면 이렇게 기도하라.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소서”(시 31:16).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빛을 여러분에게 비추시면, 여러분 얼굴에서 결코 빛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우리는 빛을 비춘다. 모세의 얼굴에 임한 빛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결과였다. 그 교제는 결코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특별하고 구별된 교제였다. 나는 모세가 평소에도 믿음의 사람으로서 일상의 소명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무려 두 번, 각각 사십 일 동안 하나님과 홀로 교제했다. 그때는 아론도, 여호수아도, 백성도 모두 산 아래에 있었고, 오직 모세만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 교제는 깊고 친밀했으며,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최소한 팔십 일이나 이어졌다. 오래 지속된 교제는 짧은 교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친밀함을 낳는다. 매일 아침 햇살이 비칠 때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었고, 매일 저녁 이슬이 내릴 때에도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러한 온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교제가 가져올 결과가 어떠하겠는가? 그는 산 아래 진영의 소리도,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듣지 않았다. 오직 백성을 위해 애타게 중보 기도할 때 외에는 세상을 잊어버렸다. 개인적이거나 가정적인 관심사조차 그의 교제를 방해하지 못했다. 여호와, 그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를 완전히 덮으셨다. 아, 우리도 그러한 하늘의 교제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하나님과 오랫동안, 끊임없이, 온전히 교제하지 못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가!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분명히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우리는 급히 짜낸 몇 분의 기도로 만족한다. 서둘러 성경을 15분 읽고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나, 만일 몇 분 대신 몇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얻는 유익은 그에 비례하여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아, 기도로 밤을 새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 골방의 문을 닫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교제가 필요하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얻을 능력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설령 우리의 얼굴에 모세처럼 광채가 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삶은 빛날 것이며, 인격은 더 순결하고 투명해질 것이다. 우리의 영혼 전체가 하늘의 빛으로 물들어,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의 광채를 보고 놀랄 것이다. 바로 이렇게, 모세의 얼굴이 빛난 이유는 그가 오래도록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 26=29쪽 중에서 -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성도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이 기도의 시대가 아님을 두려워한다. 지금은 독서의 시대요, 설교의 시대요, 활동의 시대이다. 그러나 기도의 시대는 아니다. 청교도들의 기도를 읽을 때,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들의 공적 기도는 종종 45분, 때로는 한 시간 반이나 이어졌다. 나는 그것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개인 기도는 훨씬 더 길었고, 금식과 기도의 날이 흔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 영국의 가축 전염병 문제를 두고, 금식과 기도의 날을 선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두 훨씬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만 기도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더 많이 기도할수록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다. 풀 베는 자는 낫을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서기관은 붓을 다듬는 시간을 허비라 여기지 않는다. 루터는 평소보다 두 배의 일을 해야 하는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세 시간을 기도하지 않고서는 이 일을 끝낼 수 없다.” 그는 일이 많을수록 더 많이 기도했다. 그래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 우리가 그와 같이 한다면! 하나님과 홀로 산에 오르는 기도 생활을 더 많이 한다면, 우리는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한다. 유익한 설교를 듣고, 신앙에 잘 자란 성도들과 교제하라. 연약한 신앙을 가진 새싹 같은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옮겨졌을 때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시골에서 온 이들이 의심과 두려움에 싸여 있을 때, 어떤 선한 성도자매들이 다가와 격려하고 위로해 주면,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오, 모든 교회가 따뜻하고, 다정하며, 사랑이 넘치기를!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많은 격식과 거리감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 서로 대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로 이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자.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하며 서로의 믿음을 굳세게 하자. 그리하면 우리는 더욱 온전한 확신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이 확신을 얻기 원한다면, 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가운데 수많은 복을 얻는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쏟고 또 쏟는 자는 결코 쓸 힘이 부족하지 않다. 그분을 위해 힘을 다한다면, 그분은 새 힘을 채워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다. 그것을 감추어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사람처럼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다섯 달란트의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다섯 달란트를 더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믿음을 잘 사용할수록, 우리의 확신도 더욱 자라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받은 것을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리라. 브룩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네게 촛불 빛밖에 없다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러면 별빛을 주실 것이다. 별빛을 받았다면, 또 감사하라. 그러면 달빛을 주실 것이다. 달빛을 받았다면, 기뻐하라. 그러면 햇빛을 주실 것이다. 햇빛을 받았다면, 더욱 찬송하라. 그러면 주님은 네 해의 빛을 일곱 날의 빛과 같이 하실 것이다. 마침내 주님 자신이 네 영혼의 빛이 되실 것이다.” 찬양하라, 감사하라. 그러면 너희의 확신은 자라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예식과 방편과 기도를 뚫고 나아가 그리스도 자신께 나아가라. 도마는 그리스도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음으로써 자신의 불신앙이 고쳐졌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주님께 기도하라. “그리스도여, 나를 주님의 붉은 옷에 감싸 주소서. 주님의 이름을 친히 내게 알려 주소서.” 주님께 간구하라. 주님의 고난과 영광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 달라고. 그분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하시고, 그분이 친히 말씀하시며, 창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 달라고 구하라. 그리하면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독수리 날개처럼 우리를 하늘로 들어 올릴 것이다. 예수와의 교제는 불수레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우리는 산꼭대기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보좌 곁에 둥지를 틀 것이다. 땅의 염려를 초월하고, 세상의 폭풍과 다툼을 넘어,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앞 영원한 평강의 바다에 영혼을 담그게 될 것이다. 오늘 밤 우리는 주님께 간구하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준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선이다. 기도를 통해 하늘에 연결되며 하늘의 은혜를 받는다. 나아가 기도의 영광스러움은 기도를 실천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복이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기도의 영광을 맛보느냐 아나냐 여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기도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기도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기도의 양광 맛보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기도의 영광 맛보기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그레이스 변 옮김
판권
스펄전의 기도의 영광 맛보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5. 11. 3.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043-08-0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asting the Glory of Prayer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모세의 얼굴의 빛남(The Shining of the Face of Moses)
모세의 얼굴의 빛남(The Shining of the Face of Moses)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출애굽기 34:29-35
사십 일 동안의 금식은 사람의 얼굴빛을 좋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굶주린 듯 보이고, 주름지고, 늙어 보이며, 초췌해진다. 모세는 적어도 두 번 사십 일을 금식하였다. 많은 신뢰할 만한 학자들에 따르면, 신명기 10장의 기록은 그가 세 번 연이어 사십 일을 금식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나는 그 세 번째 금식에 대하여 단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짧은 간격을 두고 모세가 사십 일을 금식했고, 이어 다시 사십 일을 금식했으며, 아마도 세 번째 사십 일도 더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렇게 혹독한 과정을 거친 얼굴에 남을 매력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섬기던 주님께서 그의 얼굴에 비범한 광채를 비추셨다. 아마도 그 광채로 인해 모세는 이후 노년에 이르러서도 건강을 유지했을 것이다. 여든의 나이에 그는 이스라엘을 사십 년간 더 인도했고, 결국 그의 눈은 흐리지 않았으며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신 34:7). 사십일을 금식할 수 있었던 자는 죽음에게도 쉽사리 삼켜지지 않을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눈은 이 세상에서 쉽게 흐려지지 않았고, 초자연적인 광경을 견뎌낸 육체는 광야의 피곤함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그의 종을 붙드시어, 물조차 마시지 않는 금식이었음에도 그의 육체는 손상되지 않았다. 물조차 금한 점이 이 금식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며, 그것을 단순히 인간의 단식 행위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모세는 처음에는 자기 얼굴이 빛나는 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자기 얼굴의 광채와 사람들이 그 광채를 보고 놀란 일,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자신이 취했던 행동을 자세히 적어두었다. 이것은 결코 자랑 때문이 아니었다. 모세는 자신에 대해 항상 겸손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된 것이다.
모세는 지극히 온유한 사람이었고, 그의 저술에도, 그의 삶의 모든 행위에도 그 온유함이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나는 두렵다. 하나님이 우리 얼굴을 빛나게 하신다면 우리는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광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겸손하고 낮아진 영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얼굴이 빛났다고 기록된 사람은 단 두 명뿐이다. 구약에서는 모세이고 신약에서는 스데반이다. 스데반의 마지막 말은 그의 온유함을 증명한다.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칠 때, 그는 기도하며 말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온유한 성품과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드러날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이 얼굴에 광채를 주실 뿐 아니라 그것이 기록되는 것도 안전하다. 모세는 이 기록을 기꺼이 쓰지 않았고 억지로 썼다. 그는 허영심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므로, 우리도 호기심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는 우리의 배움을 위해 기록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우자.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오늘 우리 얼굴에도 모세의 얼굴처럼 빛을 비추시기를 구하자.
성경 본문을 살펴보면, 모세의 얼굴은 그 후에도 계속 빛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산에서 내려온 후, 그 광채는 점차 사라져 갔다. 바울은 그것을
“없어질 영광”(고후 3:7-11)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세가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할 때면 그 광채가 다시 살아났고, 그는 그 광채를 얼굴에 띠고 나와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는 수건을 벗어 하나님의 대사의 얼굴에 있는 광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말씀이 끝나고 일상적인 교제를 할 때는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지 않으려고 다시 수건을 덮었다. 모세는 얼굴에 영광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변함없이 온유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큰 영광을 주셨으나, 그는 그것을 과시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는 수건을 사용하였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만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설교자나 교사로 세우시며 영광을 주신다면, 그 영광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결코 여러분의 자격이나 인격 때문이라고 여기지 말고, 주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그 직분 때문이라고 여기라. 바울이 “이는 내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라”(롬 11:13) 하였으나, 바울 자신을 높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대사로서 영광을 입었을 뿐, 개인으로서 자랑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종들에게 주시는 존귀는 그 개인에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 위에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사사로운 생활 속으로 끌고 가서 자신을 “거룩하다” 하거나, 혹은 자기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사람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인도의 브라만처럼 스스로를 신적 계급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특권은 오직 주께서 성령 하나님의 은사를 따라 그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점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거나 하나님을 대신해 말할 때는 얼굴을 가리지 않지만, 성도들 앞에서는 자기 우월감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기꺼이 숨기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모세의 얼굴에 기이한 영광이 임했다. 우리는 먼저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그 얼굴에 그 영광이 임했는가?”
모세의 얼굴 피부가 빛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첫째, 그가 거룩한 산에서 하나님을 뵈었을 때 보았던 영광이 반사된 것이다. 이는 그가 드렸던 기도의 부분적 응답이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는 그 간절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그때 그 기도를 온전히 이루실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하셨다.
그러나 그 기도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1,400년이 지난 후에야 완전하게 응답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나며, 변화산 위에서 모세는 변모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뵈었다. 그때 그의 기도는 가장 충만하게 응답되었다. 시내산에서는 여호와의 온전한 영광을 볼 수 없었으나, 그때에도 충분히 큰 인상을 받아 얼굴 피부가 빛날 정도였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빛을 얻고, 그 빛을 반사하여 주위에 전한다.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친구와 대화하듯 교제하였다. 이것이 그의 얼굴을 빛나게 했다. 태양이 거울에 비출 때, 그 빛이 반사되어 마치 작은 태양처럼 밝게 빛나듯이, 모세의 얼굴도 여호와의 영광을 반사했다. 모세의 얼굴은 해에 비친 달과 같았다.
성도는 하나님이 비추신 빛을 사람들에게 비춘다.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보며 점점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고후 3:18). 그러므로 여러분이 골짜기에서 빛나기를 원한다면 먼저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하라. 더 큰 광채를 원한다면 이렇게 기도하라.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소서”(시 31:16).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빛을 여러분에게 비추시면, 여러분 얼굴에서 결코 빛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우리는 빛을 비춘다.
모세의 얼굴에 임한 빛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결과였다. 그 교제는 결코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특별하고 구별된 교제였다. 나는 모세가 평소에도 믿음의 사람으로서 일상의 소명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무려 두 번, 각각 사십 일 동안 하나님과 홀로 교제했다. 그때는 아론도 여호수아도 백성도 모두 산 아래에 있었고, 오직 모세만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 교제는 깊고 친밀했으며,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최소한 팔십 일이나 이어졌다.
오래 지속된 교제는 짧은 교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친밀함을 낳는다. 매일 아침 햇살이 비칠 때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었고, 매일 저녁 이슬이 내릴 때에도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런 온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교제가 가져올 결과가 어떠하겠는가?
그는 산 아래 진영의 소리도,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듣지 않았다. 오직 백성을 위해 애타게 중보 기도할 때 외에는 세상을 잊어버렸다. 개인적이거나 가정적인 관심사조차 그의 교제를 방해하지 못했다. 여호와, 그 영광의 하나님이 그를 완전히 덮으셨다.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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