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043301
• 전자책 ISBN: 9791124043301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완전한 구원을 주셨다면, 그것은 그분의 영광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기 영광을 위해 만드신 분이시므로, 그분께서 보내신 복음은 결코 여러분의 상황을 구원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복음일 수 없다. 찬송할지어다! 이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며,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을 “만물이 그로 말미암은 이”(by whom are all things)라고 부른다. 만일 하나님이 부분적인 구원자를 보내셨다면, 그것은 그분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인간이 반은 하고, 그리스도가 나머지를 하는 식이라면, 그것은 창조주의 방식이 아니다. 태양을 보라. 하나님이 태양에게 “세상을 비추라”고 명하실 때, 어둠에게 “너도 빛을 좀 도와주어라”고 말씀하셨는가? 밤에게 “너의 어둠 속에도 낮의 밝음에 기여할 무언가가 있지 않느냐?”라고 물으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태양은 아침에 거인처럼 일어나 하늘을 달리며, 그 빛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둠 같은 죄인에게 “너도 구원의 빛에 무언가를 보태라”고 말씀하시겠는가? 결코 아니다. 의로운 해(Sun of Righteousness), 곧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떠오를 때, 그의 날개 아래에는 치유가 있다(말 4:2). 그분이 오시면 어둠은 곧 빛으로 변한다. 또한 비를 생각하라. 땅이 갈라지고 메말랐을 때, 하나님이 구름에게 말씀하시기를 “잠시 기다려라. 땅이 스스로 도와 비옥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라” 하셨는가? 아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고, 목마른 땅 위에 단비가 내린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신다. 인자의 도움을 구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의 풍성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다. 그분은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자이시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분은 복음이다. 그분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모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이 자녀로 변화된다.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승리의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느냐 아니냐 여부로 결정된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1. 5.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043-88-4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Learning Jesus Christ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여관에는 그리스도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No Room for Christ in the Inn)
여관에는 그리스도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No Room for Christ in the Inn)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였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 누가복음 2:7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에서 나셨음이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히 증명되어야 했다. 또한 그분은 주께서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베들레헴 에브라다(미 5:2)에서 태어나셔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한 무명의 목수와 알려지지 않은 처녀의 족보를 공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한 비천한 두 사람에게 호적 관리인들이 무슨 관심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두 번째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었으며, 모든 상황으로 볼 때 그곳에서 해산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해산의 시기가 임박하였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남쪽의 유대 지방으로의 먼 여정을 감행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일이 어떻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섭리는 한 번의 수레바퀴 회전으로 두 목적을 이루신다. 그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었다.
로마 제국의 공식 명령이 다가올 다윗의 자손의 족보에 도장을 찍게 될 것이며, 베들레헴은 그의 탄생의 증인이 될 것이었다. 당시 작은 폭군 헤롯이 교만한 태도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더 이상 친구로 대하지 않고 속국으로 대하겠다고 통보하였다. 비록 헤롯이 가장 비굴한 자세로 사과하고, 그의 친구들이 로마 궁정에서 중재했으나, 황제는 불쾌함을 보이기 위해 온 유대 민족에게 인구 조사 명령을 내렸다. 이는 훗날 세금 부과를 위한 준비였으며, 실제로 과세는 약 10년 후에 시행되었다.
폭군의 뜻은 바람과 파도보다도 변덕스럽지만, 풍랑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군왕들의 패역한 영을 다스릴 줄 아신다. 주 우리 하나님은 가장 거친 전마(戰馬)에게 재갈을 물리시고, 가장 사나운 리워야단(히브리어 리위야탄, “꼬인 자”)에게도 갈고리를 거신다. 전제 군주인 케사르조차 만왕의 왕의 손에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투스는 반드시 헤롯에게 분노해야 했고, 그는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했으며, 인구 조사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야 했다. 마침내 불편하고 가혹하며 폭력적인 행정 명령이 공포되었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조상들의 본향으로 가서 호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인도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예정된 대로 그곳에서 탄생하셨다.
더욱이, 마리아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베들레헴에 와서 호적에 참여하고, 아무의 이의도 받지 않은 채 다시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사실로 인해, 그분이 다윗의 혈통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는 당시 메시아의 출생이 예언에 따라 다윗의 가문 여성에게 국한되어 있다고 믿던 사람들의 질투심을 자극할 만한 일이었기에, 만약 그녀가 다윗의 후손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문제로 제기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를 깊이 주목하라. 모든 일은 잘 정돈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다윗의 집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베들레헴으로 몰리자, 그 작은 마을의 숙소는 곧 다 차버렸다. 사람들은 각자의 친구를 자신의 집에 들였으나, 요셉에게는 그렇게 도와줄 친척이 없었다.
마을마다 있었던 공공 숙소인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 즉 나그네를 위한 여관도 이미 만원이 되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먼 길을 천천히 걸어왔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넓은 벽돌 건물 안의 방들은 모두 가족들로 가득 찼고, 마리아는 해산이 임박했음에도 짐승들이 머무는 가장 초라한 공간밖에 얻을 수 없었다.
나귀의 마구간이 아기가 태어날 유일한 장소였다. 아마 그들은 그 입구에 천을 걸어 가리거나, 나귀를 바깥쪽에 매어 두어 통로를 막음으로써 간신히 사적인 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영광의 왕이 태어나셨으며, 그분은 구유에 누이셨다.
오늘 아침 내가 여러분의 묵상을 인도하고자 하는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여러분을 데려가, 그곳에서 “구유에 누이신 구주”를 바라보며, 왜 그분께서 그러한 낮은 자리에 누이셨는지, 곧 “여관에는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눅 2:7)는 이유를 깊이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다.
1. 나는 그리스도께서 구유에 누이셔야만 했던 또 다른 이유들이 있었음을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그것은 그분의 낮아지심(케노시스, ‘자기를 비움’)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예언의 말씀대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받은 자, 간고를 많이 겪은 자요 질고를 아는 자”(사 53:3)로 오셨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사 53:2),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사 53:2) 같으신 분이었다.
그러므로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겨 죽으실 그분이 그 탄생의 순간에 자색 옷을 입으셨다면 과연 합당하였겠는가? 빌려 쓴 무덤에 묻히실 구속주께서 가장 비천한 헛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나셨다면, 그것은 오히려 부적절한 일이었을 것이다. 구유와 십자가! 이 두 장면은 구주께서 이 땅에서 걸으신 생애의 양끝에 서 있으며, 서로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그분은 평생 농부의 옷을 입고 사셨으며, 어부들과 교제하셨다. 낮은 자들이 그분의 제자가 되었고, 찬 바람 부는 산이 그분의 유일한 잠자리였던 때도 많았다. 그래서 그분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영광을 모두 내려놓고 종의 형체를 입으사(빌 2:7) 가장 낮은 자의 자리까지 내려오셨을 때, 구유에 누이신 것은 그분의 겸비와 비천함을 보여주는 가장 합당한 일이었다.
또한 구유에 누이심으로써, 그분은 가난한 자들의 왕이심을 나타내셨다. 아마 목자들은 그분이 누워 계신 그 자리를 보고 곧바로 자신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깨달았을 것이다. 천사가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2)고 말했을 때, 그 말은 목자들의 마음속에 가장 따뜻한 형제애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가난한 자의 눈에는 제왕의 옷자락이 결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과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즉시 신뢰와 친근함을 느낀다. 노동자들이 자기 계층의 지도자에게 끈질기게 충성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수고를 알고,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그들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위대한 장군들이 병사들의 고난을 함께하며 마음을 얻었던 것처럼, 베들레헴에서 나신 인류의 왕도 가난한 자의 비참함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셨다. 아니, 오히려 그분의 처지는 그들보다도 더 비참하였다. 나는 마치 목자들이 구유의 아기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아! 그분은 헤롯 같은 폭군이 아니실 것이다. 그분은 구유를 기억하시며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이 불쌍한 아기여, 벌써 내 마음이 그대를 사랑하는구나. 세상이 자기 구주를 위해 내어주는 이 초라한 자리를 보라! 오늘 태어난 이는 케사르가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밭을 군대로 짓밟지 않으시고, 우리의 양떼를 신하들에게 잡아먹히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가난한 자의 친구, 백성의 왕이 되실 것이다. 우리 조상 다윗이 말한 대로, ‘그는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녀를 구원하실 것’(시 72:4)이다.”
실로 목자들과 같은 세상의 가난한 자들은 즉시 깨달았을 것이다. 여기야말로 민중의 왕, “백성 가운데서 택함 받은 자”(시 89:19)가 있음을 말이다.
평강의 왕이여! 구유가 곧 당신의 왕위였나이다. 거기서 당신은 모든 민족 앞에 우리 인류의 왕자로 드러나셨나이다. 당신 앞에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없고, 오직 모든 이의 주(主)이나이다(골 3:11).
왕들이여, 만일 너희가 영광의 주를 알았다면 그분께 금과 은을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그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분을 통해 가난한 백성의 증인과 인도자로 세우셨도다.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것들이 그분 안에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며, 멸시받는 자들이 그분의 통치 아래 인간의 교만과 위엄을 부수게 될 것이다(고전 1:28).
더 나아가, 그분이 구유에 누이신 것은 가장 겸손한 자들에게 오라 초청하신 것이었다.
“우리는 왕좌를 보고 나아가기를 두려워할 수 있지만, 구유 앞에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처음부터 그분을 예루살렘 거리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행차하시며, 길에는 겉옷이 깔리고, 종려나무 가지가 흩뿌려지고, 무리가 “호산나!”를 외치는 장면으로 맞이했다면, 그분께 다가가기를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조차 옳지 않은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분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조차 “온유하고 겸손하신”(마 21:5) 분이셨기에, 어린아이들조차 그분 주위에 모여 “호산나!”를 외칠 수 있었다.
그 어느 존재도 그리스도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분은 없었다. 귀찮게 여겨지는 과부를 막거나, 병든 아들을 고쳐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을 내쫓는 오만한 수행원들의 장벽도 그분에게는 없었다. 그분의 옷자락은 언제나 병든 자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며, 그분 자신은 언제나 병자를 만질 손을 내밀고, 고통의 신음조차 들으시는 귀를 가지셨다. 그분의 영혼은 태양의 빛이 사방으로 흘러나가듯, 어디서나 자비의 광선으로 세상에 비추셨다.
그분이 구유에 누이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사람들 가운데서 취하신 대제사장(히 5:1)임을 나타내셨다. 우리 성도처럼 고난을 겪으셨기에, 우리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히 4:15)이다. 사람들은 그분에 대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마 9:11),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먹는다”(눅 15:2)라고 말하였다. 아기이셨을 때조차, 구유에 누우심으로써 이미 죄인의 친구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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