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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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42』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736579
• 전자책 ISBN: 9791124736562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우리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을 때 하나님의 생각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함께 떡을 먹던 사람이 우리를 배반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언제나 신실하신 친구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시는 생각에는 결코 거짓이나 배신이 없다는 사실을 기뻐한다. 하나님은 형제보다 더 가까이 함께하시는 친구이시다. 다른 모든 사람이 거짓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참되시다. 사람은 우리를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아히도벨(Ahithophel)은 자기 왕을 버렸다. 가룟 유다(Judas)는 자기 주님을 배반하였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버림받고 배신당하는 아픔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시는 생각은 언제나 사랑과 신실함의 생각이다. 때로는 우리를 떠난 사람들을 믿었던 것이 헛된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생각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에게 더욱 귀하다.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우리를 잊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도 하나님의 생각은 더욱 귀하다. 마땅히 우리를 존중해야 할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따뜻한 말 한마디나 격려의 미소를 보내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가정에서 종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는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다. 그러나 집안의 주인들에게서 격려의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충성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은 외진 지역에서 성경을 전하는 여성 사역자일 수 있다. 또는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일 수도 있다. 진심을 다해 섬기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가 너무 적을 수 있다. 그래서 책임자조차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런 일은 마음이 여린 사람에게 매우 큰 아픔이 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의 생각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그래도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주님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귀하다. 주님은 내 마음을 살피실 수 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힘을 다해 일한다는 사실도 아신다. 사람들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직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주님이 이 사실을 아시고 내가 온 힘을 다해 충성스럽게 섬긴다고 인정해 주신다면, 주님의 생각은 나에게 얼마나 귀하겠는가!” 또한 우리 말과 행동이 오해받고 왜곡될 때에도 하나님의 생각은 더욱 귀하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시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아무런 이기심 없이 행동하려고 애썼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에게 나쁜 속셈이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주 솔직하고 꾸밈없이 말했는데도 오해받을 때가 많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일부러 우리 말을 왜곡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 아버지는 우리 동기가 진실하다는 것을 아신다. 또한 우리가 한 말의 뜻도 모두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며 시끄럽게 떠드는 이 낮은 법정에서 사건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가장 높으신 하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그 사건을 맡긴다. 우리 기도는 이것이다. “오 하나님, 이 사건을 판결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누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려고 했는지 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진리를 담대하게 전하려 했는지도 아십니다. 아무도 뒤집을 수 없는 의로운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사실은 특별히 귀한 위로가 된다. 사람들은 우리를 오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아신다. 사람의 판단은 잘못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의롭다. 우리가 깊은 혼란과 당혹함에 빠졌을 때에도 하나님의 생각은 매우 귀하다. 존 번연(John Bunyan)이 말한 것처럼 우리 생각이 “이리저리 뒤엉켜 버린” 때가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도 아마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의지할 수 있는데도 너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그 능력을 어떻게 의지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할 때가 있다. 마치 두 바다가 만나는 곳에 서 있는 사람과 같다. 큰 파도가 연달아 밀려와 금방이라도 삼켜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 어려움에서 빠져나갈 길도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억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 그 문제를 계속 붙들고 생각하는 일도 멈추라. 모든 것을 위대한 생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은 악에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신다. 또한 혼란 속에서 질서를 세우신다. 우리가 길을 찾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길을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을 의지해야 한다. -34-36쪽 중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택하신 백성인 우리를 생각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서 우리와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생각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능력을 베풀지 않으시면 피가 우리 혈관을 흐르지 못하며 숨을 쉴 때 폐도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작용도 계속될 수 없다. 더욱이 우리 존재의 더 높은 영역에서는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를 생각하셔야 한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돌보심이 없다면 그것들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시면 우리에게 기도의 영이 있을 수 없다. 성령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를 가르치지 않으시면 자녀의 영도 있을 수 없다. “아빠 아버지”(롬 8:15).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햇빛 안에서만 살아가는 식물과 같다. 모든 빛의 크신 아버지가 물러가신다면 이 모든 것은 죽고 말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이 말씀은 악한 행실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도 분명한 진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므로 하늘 아버지가 우리를 생각하고 계심을 확신한다. 여러분의 생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러분 안에서 함께 작용하는 모든 은혜로운 영향들을 생각해 보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생명은 영적인 생명이며 여러분의 거룩함과 위로와 기쁨을 뜻한다. 또한 여러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그 계획들을 통해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빛 안에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세우신 이 위대한 계획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생각하시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실제로 여러분을 생각하신다. 다음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매우 많을 수밖에 없다. 본문에 따르면 그 생각의 총수는 매우 크다. 얼마나 큰지는 시편 기자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각은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여러분이 바닷가의 모래를 셀 수 있다 해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다 셀 수 없을 것이다. 오,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보잘것없는 피조물인 우리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가! 나는 여러분이 잠시 조용히 앉아서 이 놀라운 진리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왕이 자신을 한 번 바라보기만 해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평생 동안 조지 4세(George IV)가 자기에게 한 번 말을 걸었다고 자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참으로 대단한 미남이었던 조지 4세가 말이다! “길에서 비켜라.” 왕이 그에게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사람이 왕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과 나는 왕들도 그 앞에서는 메뚜기와 같은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를 생각하시며 자주 생각하신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 많으므로 한두 번의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이 이따금씩만 우리를 생각하신다면 그 사이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생각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자신의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표현이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시 40:17). 또한 우리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미 그들을 생각하셨으며 세심한 눈으로 그들을 살피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보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신의 백성을 생각하신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매우 많다. 또한 하나님의 생각은 매우 다정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결코 모질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자녀 중에서 가장 많이 잘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불친절한 생각을 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바라보듯 깊은 사랑으로 그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때 불쌍히 여기신다. 때로 하나님이 그들의 잘못을 꾸짖으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의 목적을 잠시 가리실 뿐이다. 그 사랑의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장 좋은 건강과 가장 참된 부요함과 마침내 이루어질 온전함을 목표로 삼으신다. 때로는 우리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구름이 끼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빛나고 있다. 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다정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땅만 버리는 자처럼 이미 오래전에 베어 버리셨을 것이다. “우리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셨으며 우리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시 103:10). 하나님이 얼마나 자주 우리를 환난에서 지켜 주셨는가! 시련이 닥치기 전에 얼마나 자주 우리를 준비시키셔서 그 시련이 우리를 짓눌러 버리지 못하게 하셨는가! 얼마나 자주 심각한 위험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는가! 얼마나 자주 밤중에 우리를 찾아오셔서 슬픔 중에도 노래하게 하셨는가!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 다윗이 이렇게 말했으며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도 같은 고백을 했다. 가난하고 연약하며 자주 잘못하는 자신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다정하심과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이처럼 다정하지만 또한 매우 지혜롭다. 다양한 종류의 광학 기구를 만들던 사람들이 앞에 놓인 물체를 색의 왜곡 없이 비추는 유리를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노력했지만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마침내 어떤 사람이 무색 렌즈(achromatic lens)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다. 보라! 그 사람이 자신의 계획을 모든 세부 사항까지 완전하게 생각해 낸 뒤에는 정확히 그런 유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자주 보았던 어떤 곤충의 눈과 꼭 같은 구조였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바르게 생각했을 때, 그는 하나님이 생각하신 것과 똑같이 생각한 것이다. 그는 아주 먼 길을 돌아간 뒤 마침내 올바른 결론에 도달했으며 결국 하나님이 이미 계셨던 바로 그곳에 이르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내가 우리 인생 문제를 스스로 풀어 보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라. 또 우리가 천국에 이르는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낼 만큼 지혜롭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정해 놓으신 바로 그 길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행하시는 바로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행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지혜롭다면 결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무한한 지혜가 주어진다면 지금 우리를 괴롭게 하는 바로 그 일들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피하려고 하는 구름과 어둠도 기꺼이 통과할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시작뿐 아니라 끝까지 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인생 전체를 내다보는 지혜로운 생각이다. 하나님은 단지 오늘 우리를 어떻게 가장 행복하게 하실지만 생각하지 않으신다. 또는 한 주 동안 어떻게 가장 많은 즐거움을 주실지만 생각하지 않으신다. 지나치게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지혜롭지 못한 어머니들이 아들을 위해 생각하고 계획하는 방식은 이와 같다. 그런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물오리처럼 만들어 놓고 결국 거위로 자라게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 결국 그들을 망친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의 행복을 생각하실 때에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아주 먼 앞날까지 내다보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 안에 영원까지 담으신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한 주나 한 달만을 생각하여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를 판단하지 않으신다. 이 땅에서 보내는 한평생만을 생각하지도 않으시며 영원을 저울에 올려놓으시고 영원한 세월을 위해 모든 일을 선하게 정하신다. 여러분과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작은 계산 중에도 금세 혼란에 빠지므로 너무 먼 앞날까지 내다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50가지 걱정을 한꺼번에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 많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은 하나씩 감당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며 더 좋게는 순간순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하루하루에 매여 살지 않으시고 영원 전체를 채우시는 분이 계신다. 그분이 시편 기자의 이 복된 말씀에 따라 우리를 위해 판단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 된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확실하고 많으며 다정하고 무한히 지혜롭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42)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구약 지혜서·시가서 명설교 완역본으로 깊은 영적 통찰을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42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42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10. 19.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736-56-2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he Gospel in The Book of Psalms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42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God’s Thoughts and Ours)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God’s Thoughts and Ours)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시편 139:17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에서 큰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생각하신다는 사실도 큰 복이다. 하나님이 우리 필요를 살피시고 채워 주신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추상적인 신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따로 떨어져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자연 법칙”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거대한 저거너트(Juggernaut)의 수레처럼 우리를 짓밟는 냉혹한 운명을 믿는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 믿음에는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참되신 인격적인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보존자이시고 구속자이시다. 또한 자기 백성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다. 그러나 창조에 관한 영감받은 성경의 기록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믿으라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고 말한다. 아니면 원숭이보다 지능이 낮은 어떤 존재에게서 진화했다고 말한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그런 믿음에서 아무런 위로를 얻을 수 없다. 오히려 그런 망상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고 가엾은 마음이 든다.
나는 성경이 계시하는 인격적인 하나님께 다시 돌아온다. 그 계시는 나 자신의 영적 경험으로도 확증되었다. 그 인격적인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가지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은혜로운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나는 놀라움 속에서 두 손을 들게 된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외친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39:17).
그렇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진실하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기쁨이 있다. 하나님이 언제나 자신들을 생각하신다는 사실이다. 또한 현재와 영원한 유익을 위하여 모든 일을 계획하신다는 사실이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다.
1.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시는 생각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생각해 보자
또한 그 생각을 묵상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도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귀하다. 그러나 여기 있는 어떤 사람은 다르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생각하신다는 사실이 오히려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말은 저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오직 두려움만 안겨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나는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법관처럼만 생각한다고 해 보자. 그 사법관이 여러분을 체포하려고 영장을 들고 찾아온다면 두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생각하신다는 사실도 참으로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떠하겠는가? 하늘 아버지가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하신다는 사실은 끊임없는 기쁨이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완전히 화목하게 되었다면 죄책감도 더 이상 양심을 짓누르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하여 품으시는 모든 생각이 사랑의 생각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은혜롭고 친절하게 여러분을 생각하신다는 사실을 기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큰 위로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생각하신다는 사실을 기쁘게 기억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을 다해 섬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큰 특권으로 여긴다. 선한 심부름을 맡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눈길은 두려움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큰 격려가 된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칭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님이 자신을 보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기억의 책에 기록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안다. 마지막 날에는 충성된 사람에게 충만한 상을 주실 것도 안다. 그 상은 하나님이 빚을 갚듯이 주시는 보상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충성된 사람에게 큰 격려가 된다.
나는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런 게으른 신앙 고백자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늘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 존재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게으른 시간을 지켜보고 계심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게도 가치도 없는 수많은 말을 들으시며 섬길 기회를 놓치는 모습도 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 모든 모습을 기록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태연하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언제나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게으른 신앙 고백자에게 엄중한 경고가 된다.
반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열심히 섬긴다고 해 보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언제나 힘써 섬긴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된다. 하나님이 언제나 여러분의 오른편에서 섬김을 도우신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더욱 달콤한 위로가 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분의 생각이 얼마나 귀한지 더욱 깨닫는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생각한다고 해도 그 생각이 실제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은 큰 유익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는 것은 이와 다르다. 가령 부유한 친구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해 보자. 가능한 한 빨리 평생 생계를 책임질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예배에 참석하는 동안에도 그 친구를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할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내 뒤에는 한 친구가 있다. 그는 내가 결코 궁핍하지 않도록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나를 생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는다.”
세상 친구의 약속도 이처럼 큰 위로를 준다. 그렇다면 하늘의 친구를 가진 여러분은 얼마나 더 큰 위로를 받아야 하겠는가? 그분은 모든 약속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 또한 그 약속을 기꺼이 이루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생각하신다. 오늘 필요한 것뿐 아니라 내일 필요한 것까지 미리 준비하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필요가 생기기 전에 먼저 예비하신다. 광야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엘림(Elim)과 같은 곳을 미리 마련하신다. 그곳에 샘과 종려나무도 준비해 두신다.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지 생각해 보라. 또한 어떻게 온전하게 하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하실지도 생각해 보라.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을 묵상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의 생각이 참으로 보배롭게 여겨질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자기 백성의 유익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시는 생각이 특별히 귀한 이유가 또 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상과 낮은 것들을 향하여 흩어지는 자신의 생각을 무거운 짐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사모한다. 우리 입술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기도가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더욱 가까이 가기 원하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 생각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 생각은 쉽게 약해지고 피곤해진다. 또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 자신처럼 강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 생각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줄과 같다. 그 줄은 우리를 단단히 붙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끈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사실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에게 가까이 이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 가까이에 있을 수 있도록 준비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의 생각은 더욱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우리가 아직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지 않더라도 어떠하겠는가? 우리가 여전히 육신에 속한 사람이 이더라도 어떠하겠는가? 우리는 아버지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작은 부스러기 하나도 귀하게 여길 것이다.
더 나아가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을 더욱 귀하게 여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나타나는 평범한 돌보심조차 금이나 루비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 하물며 우리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생각은 얼마나 더 귀하겠는가?
하나님은 머지않아 우리 성화와 영화까지 완성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깊고 영원하며 무한한 생각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 생각은 우리를 구원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붙들어 주는 생각이다.
2.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시는 생각을 더욱 귀하게 만드는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시는 생각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생각을 묵상하려면 시간의 경계를 넘어가야 한다. 모든 시대가 끝없이 펼쳐진 영원의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여러분을 사랑하셨다. 그렇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사랑의 생각을 품으셨다. 그렇다면 그 생각이 어찌 보배롭지 않겠는가?
그 생각은 영원 전부터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된다. 해와 달과 별들이 그 사명을 마치고 잊힌 뒤에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으로 여러분을 생각하실 것이다. 사람들이 지금 견고하고 영원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사라져도 마찬가지이다. 그 모든 것이 파도 위의 물거품처럼 사라져 영원히 없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여러분을 생각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생각은 피조물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자기 아들과 하나로 묶으셨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 생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 생명은 영원하다.
우주의 기둥이 무너진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창조 세계가 큰 굉음과 함께 무너진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여러분은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슬픔과 죄가 없는 세상을 떠나
영원히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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