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성령 하나님 누리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성령 하나님 누리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그레이스 변 (변길용 목사)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93755-99-0
• 전자책 ISBN: 979-11-93755-98-3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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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저자: 그레이스 변 (변길용 목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B.Th.)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신학 전공으로 신학석사(Th.M.)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 부산성덕교회 담임목사, 기독교문서선교회(CLC) 편집국장으로 섬겼으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부산장신대학교 외래교수로 학부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는 기독교 고전 연구가이자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대표이다. [주요 저서] 『마틴 루터와 복음적인 중세영성』, 『마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와 복음』, 『기독교 복음주의 영성』,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해설』, 『청교도와 평신도운동』, 『복음으로 읽는 교회사 강의노트 시리즈』(고대·중세·종교개혁·한국·현대), 『복음으로 읽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마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1535판) 해설 1·2』, 『마틴 루터의 로마서 강의(1516판) 해설 1·2』 등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과 『스펄전 복음설교 전집 시리즈』가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하나님의 은혜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성령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맛보는 영혼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복을 누린다.”
🌿 출판사 서평
서평자인 나는 스펄전의 설교를 읽으며 수십 년 동안의 불성실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회자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최고의 설교 모델이다. 미래의 목회자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좋은 교본이다. 평신도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더 깊은 은혜와 감동의 메시지이다.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성령 하나님을 누리는 삶을 가르쳐준다. 성령 하나님은 신자 안에 내주하실 뿐만 아니라 교제의 영으로 동행하신다. 그분과의 영적 교제를 통해 신자는 하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위대한 영적 삶을 거뜬히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성령 하나님을 얼마나 누리느냐 여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기도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성령 하나님을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성령 하나님 누리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서평자인 나는 스펄전의 설교를 읽으며 수십 년 동안의 불성실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회자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최고의 설교 모델이다. 미래의 목회자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좋은 교본이다. 평신도들에게 스펄전 설교는 더 깊은 은혜와 감동의 메시지이다.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성령 하나님 누리기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그레이스 변 옮김
판권
스펄전의 성령 하나님 누리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그레이스 변
1판 발행_ 2025. 10. 10.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93755-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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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영문 표지
Delighting in the Holy Spirit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Grace Byun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영적 종교(Spiritual Religion)
영적 종교(Spiritual Religion)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63
겉으로만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는 이 구절의 의미가 표면에 드러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을 주의 깊게 연구한 사람은 이 말씀의 정확한 해석에 관하여 여러 난제를 발견했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비평적 논쟁으로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예수님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 이 구절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단순하게 전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말한 후에는 성경을 부지런히 세밀하게 연구하지 않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의미로 다시 돌아가 살펴보려 한다. 그 의미 역시 진리이기는 하지만, 이 구절에서 특별히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는 아니기에 나는 간단히 그것을 덧붙여 말할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나는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영(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지적(知的)으로 정확한 개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영이 무엇이 아닌가를 말함으로써 정의하려 하지만, 과연 어느 누구라도 영이 무엇인가를 실제로 개념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종종 영을 보았다고 말한다. 무지한 자들은 옛날에, 또 지금도 어떤 어두운 시골 마을에서는 밤에 영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스스로 모순이다. 물질은 볼 수 있지만 영은 그렇지 않다. 만일 영이 어떤 가벼운 물질을 덧입는다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은 영이 아니라 단지 그 물질일 뿐이다. 영 그 자체는 결코 맛보거나, 만지거나, 보거나, 우리의 감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식별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영이 아니며, 물질 영역에 속한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모든 것을 물질과 영으로 구분한다. 그러므로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물질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영은 너무나 미묘하여 결코 눈으로 보거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다시 말하거니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영을 정확히 정의하여 “이것이 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단지 “영은 이것이 아니다”라고 부정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분명히 영들이 몸 없이 거하는 영역이 있다. 오는 세상, 곧 성도들이 죽은 후 부활의 날이 오기 전까지 거하는 그 상태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몸을 떠난 상태로 거한다. 즉 순수한 영으로서 어떠한 육체적 형상도 지니지 않은 존재이다. 확실히 보좌 앞에 있는 성도들은 어떤 육체적 모양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순수한 영이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본질을 가진 존재이다. 물질이 전혀 없는 자들이요 동시에 흠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런 순수한 영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육체 속에 거하는 영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혼이나 영을 볼 때마다 그것이 항상 육체 안에서만 발견되므로, 우리는 종종 육체와 영을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육체와 영은 전혀 다른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영을 지으실 때 반드시 그 영이 거할 집, 곧 몸을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나 몸이 곧 영은 아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이 말씀의 진리는 사람의 몸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의 몸속에서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외과의가 시체를 해부대 위에 올려두고 해부한다 해도, 그는 생명을 뇌에서든지 심장에서든지 찾아낼 수 없다. 그는 마음대로 그 몸을 잘라낼 수 있으나,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실제로 붙잡을 수 있는 생명은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생명의 모든 증거와 결과를 볼 수 있다. 그는 몸의 여러 부분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초자연적 무엇인가로 인하여 생명이 나타나는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 그 자체를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그의 지식 밖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탐구를 마치고 나서 결국 메스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으로 이 몸을 살리는 영이 있지만, 내가 생명을 찾으려 애쓴 이 육체에서는 아무 유익을 얻지 못하였다. 내가 돌이나 이 집을 떠받치는 기둥 속에서 영혼을 찾으려 하는 것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내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잡을 수 있으며, 맛이나 냄새나 그 어떤 감각으로 식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영이라 부르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비유가 우리 본문이 가르치는 진리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영이요, 혼이다. 동시에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육체는 곧 우리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거하는 집일 뿐이다. 과연 사람이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은 이와 같을 것이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 영이 어떤 본질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단지 그것을 느낄 뿐이다. 나는 그것이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 외적 발현을 느낀다. 나는 내가 존재함을 확신한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말씀하실 수 있다.”
하나님만이 스스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고 말하도록 허락하실 수는 있지만, 사람은 자신이 본래 무엇인지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우리 육체 속에 신비가 있는 것처럼, 복되신 하나님의 참된 종교 역시 우리와 같아지기 위해, 곧 우리에게 알맞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영의 종교이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종교 역시 몸을 입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설명하고 싶다. 혹 지금 당장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내가 설교를 끝낼 즈음에는 알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몸 안에 거하는 영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합당하도록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려면 그것은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여러분이 귀로 들을 수 있으려면, 그 영적인 것이 몸을 입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곧 그것이 전적으로 영적인 것만이라면, 내가 영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영이 거할 몸이 전혀 없고,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육체도 없다면 영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내가 이 진리를 분명히 드러내 보이려 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 외적 몸만을 중요하게 여기느라 종교의 영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구절에서 의도하신 바가 바로 이것이라고 믿는다.
“종교의 단순한 외형은 아무 유익도 없으니, 그것을 살리는 것은 영이다.”
다시 내 비유로 돌아가서 말하면, 어떤 일을 행할 때 단순히 살과 피, 팔과 다리만으로는 아무 유익도 없고, 뼈들을 살리고, 신경을 움직이며, 힘줄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것은 영이듯, 종교에도 외적 형태가 있다. 예식이 있고, 외적으로 보이는 발전이 있다. 곧 종교의 몸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외적 몸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직 내적인, 보이지 않는 영이 그것을 살려야 한다.
1. 주께서 이 말씀을 처음 하실 때 의도하신 의미를 먼저 보려고 한다
우리 주님 당시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예수님을 사람으로서 존경하였다. 그리고 그의 살과 피에 어떤 놀라운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주님은 본문과 거의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내 살조차도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라.”
나는 이 진리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반복해서 말하거니와, 어떤 사람들은 단지 그의 외모를 존경하였다. 여러분은 어떤 여인이 주님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젖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을 때, 주님이 책망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눅 11:27-28). 주님은 사람들이 단순히 그의 육체를 찬미하고 단순히 그의 인성만을 높이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눅 11:28).
또 다른 무리는 주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사실상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가 내 육체를 높여 보좌에 앉힌다 해도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나는 너희가 단순히 내 육체 앞에 절하며 그것을 숭배하도록 온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나의 죽을 몸을 감탄하는 것이 곧 참된 종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를 유익하게 하려고 온 것은 영, 곧 내가 전하러 온 복음이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외적인 모양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나의 말씀과 나의 행위이다. 그것들이 너희를 복되게 할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라.
“너희가 내 육체를 감탄하는 것이 너희에게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내 육체는 무익하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라. 만일 너희가 나의 성육신의 영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내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너희가 내 살과 피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소유하기를 바라는 종교의 심장부요, 그 영혼이다.”
그러나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지한 유대인들이 주님이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 하셨을 때,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들이 식인종이 되어 예수님을 먹어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런 어리석은 생각에 미소를 짓겠지만, 사실 이 생각은 오늘날도 여전히 로마 가톨릭교회 안에서 만연해 있다. 로마 가톨릭의 제사장은 엄숙하게 이렇게 가르친다. 빵과 잔을 먹고 마시는 자들이, 혹은 그들이 빵과 잔이라고 부르는 것을 먹는 자들이, 실제로 식인종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고 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묻는다.
“존경하는 신부님, 그 말씀이 비유적으로, 곧 영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의미이지요?”
그는 대답한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그 빵 위에 선포하면 그것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이 되고, 어떤 기도를 그 잔 위에 드리면 그것은 실제로 그의 피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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