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성숙함을 아는 지식』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성숙함을 아는 지식』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043103
• 전자책 ISBN: 9791124043103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우리의 양식과 음료는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요 4:34). 우리의 규범은 우리의 판단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의 기호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의 법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간다. 우리가 묻는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혹은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어떻게 하셨을까?” 나의 욕망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인가가 문제이다. 나를 기쁘게 할 것이 아니라 그분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가 문제이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그리스도인의 성숙함을 가르쳐준다. 성숙함이란 다른 말로 경건함의 무르익음. 성결함, 성화, 혹은 거룩함과 동의어다. 성숙함은 영적 자라남이다. 태어난 아기는 반드시 자라나듯,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반드시 자라난다. 본서는 그 성장과 성숙의 핵심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성숙해가느냐 아니냐 여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성숙을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성숙함을 아는 지식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성숙함을 아는 지식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성숙함을 아는 지식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5. 11. 24.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043-10-3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Knowledge of spiritual maturity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거룩, 하나님의 집의 율법(Holiness, the Law of God’s House)
거룩, 하나님의 집의 율법(Holiness, the Law of God’s House)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에스겔 43:12
나는 지금 에스겔의 환상의 직접적인 의미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에스겔이 말한 그 집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예표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나는 가시적인 교회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이며 신비로운 교회를 본다. 그 교회는 그분이 거하시는 유일한 처소이다. 이 땅에서는 은혜의 상태로 존재하며, 하늘에서는 영광 가운데 완전하게 존재한다. 땅에는 거룩한 교회인 전투하는 교회가 있고, 하늘에는 거룩한 교회인 승리한 교회가 있다.
교회는 땅 위에서 하나님의 집이라 불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건축물도 결코 신성을 모실 합당한 성소가 될 수 없다.
저 푸른 하늘을 보라. 별들이 수놓은 밤하늘을 보라. 끊임없이 출렁이며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라. 인간의 어떤 솜씨가 자연의 성전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끝없는 공간을 바라보라. 이미 세워진 성전이 얼마나 광대하고 웅장한가? 그 무한하신 여호와를 감히 어떤 벽 안에 가둘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시온을 택하시고, 그곳을 자신의 처소로 원하셨다. 성도들은 함께 세워져 영적 집이 되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처가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 그 약속대로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리라”(고후 6:16).
그러므로 교회는 위대한 아버지의 집이다. 그분은 가족의 한가운데 거하시며 안식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 132:14).
사람이 자기 집에서 평안을 누리고 즐거워하듯, 하나님도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 안에서 기뻐하신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문들을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사랑하시는도다”(시 87:2).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며,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유다에 하나님이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시 76:1).
하나님의 백성은 다 여호와께 배우므로 그를 안다. 누구도 자기 이웃에게 “여호와를 알라”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그분을 아버지로 알기 때문이다(렘 31:34). 교회 안에는 얼마나 달콤한 친밀함이 있는가! 위대한 아버지와 그의 자녀 사이에는 얼마나 거룩한 교제가 있는가! 그분은 친히 마음을 여시며, 여호와의 비밀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함께 있다(시 25:14).
성도는 하나님과 가까운 백성이며 언제든지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교회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시 46:5).
주의 집, 곧 참된 교회 외에 다음 말씀이 어디에 적용될 수 있겠는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집을 돌보시는 것처럼 교회를 돌보신다. 한 사람이 자기 집을 위해 힘을 다하고, 지혜를 쏟으며, 늘 마음을 쓰듯이, 하나님도 그의 백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다. 이를 위해 그의 아들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하늘의 뜻을 세우시며,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신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신 32:9).
하나님은 자신의 영적 집이 쇠퇴하지 않도록, 또 위로와 안전과 영광에 필요한 것을 부족함 없이 채우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교회와 결합시키신다. 사람이 자기 집과 이름을 연결하듯이 말이다. 그 교회는 여호와의 집이며, 하나님은 그 집의 주인이시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집안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다. 세상에는 오래된 가문과 황제의 권세를 자랑하는 위대한 집안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찌 하나님의 집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은 예수의 이름을 따라 불리며, 모든 군왕들의 집안보다 참된 영광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나는 가장 미천한 성도가 되는 것이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광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되는 특권을 받았다면, 반드시 그 집의 율법을 알아야 한다. 입장할 때뿐 아니라 주의 집에 머무르는 내내 그 율법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한 것도 바로 이 목적 때문이었다.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 3:15).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에스겔을 보내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 집의 모양과 출입하는 법과 모든 규례와 법도를 보이게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 앞에 기록하게 하여, 그들이 그 모든 모양과 법도를 지켜 행하게 하신 것이다(겔 43:11).
하나님의 집은 자유의 거처이지만 방종의 처소는 아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그분의 임재 앞에 있으며,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시다(히 12:29). 세 번 거룩하시다(히브리어 카도쉬 카도쉬 카도쉬[거룩, 거룩, 거룩의 뜻]) 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는 반드시 거룩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가까이 나아오는 자 중에서 자신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
(레 10:3).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 함부로 행동한다면, 그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다(벧전 4:17).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 3:17).
그러므로 이제 본문을 깊이 주의하여 살펴보자.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집의 법을 알려준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하시고 또한 순종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첫째, 우리는 이 집의 법을 해석해 보아야 한다. 둘째, 우리가 이 집의 법을 지켜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셋째, 이 법이 갖는 의미를 보아야 한다. 넷째, 이 법을 반드시 지켜 행할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본문은 같은 말로 시작하고 끝난다.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겔 43:12).
이 말씀은 율법을 감싸는 틀과 같다. 마치 양쪽에 손가락을 두고 “보라, 이것이 바로 성전의 법이다”라고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이 두 번 반복되었을까? 아마도 우리가 너무 고집스럽고 미련하여 같은 것을 최소한 두 번은 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둔하고 눈이 어두워, 반복되지 않으면 주목하지 않거나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일까? 혹은 이것이 성전 출입과 관련된 특별한 법 때문일까? 우리는 46장 9절에서 이렇게 읽는다.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백성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겔 46:9).
곧 예배자가 북문으로 들어올 때, 그 문 위에는 “이것이 성전의 법이니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문으로 나갈 때, 문을 뒤돌아보면 역시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혹은 이 말씀이 생애의 시작에서나 끝에서나, 곧 새로 회심한 신자에게나 존귀한 연로한 성도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슨 이유든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행실의 알파와 오메가가 이 성전의 법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법을 넘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 도리어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39:17).
우리가 아무리 성장한다 해도, 이 법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는 성전의 법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계명은 지극히 넓기 때문이다(시 119:96).
그렇다면 이 집의 법은 무엇인가? 바로 교회의 모든 것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의 모든 것은 깨끗하고 정직하며 은혜롭고 칭찬할만하며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와 관련된 모든 것은 반드시 거룩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산 꼭대기 지점의 주변이 지극히 거룩하리라”(겔 43:12).
모든 것이 거룩해야 할 뿐 아니라 지극히 거룩해야 한다.
옛 성전에서는 중심부의 아주 작은 방 하나만이 지성소였다. “지성소”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거룩 중의 거룩”(가장 거룩한 곳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모든 방과 홀과 뜰이 다 지극히 거룩해야 한다. 과거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고, 그도 일년에 단 한 번, 피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던 그 엄숙한 장소만큼이나, 이제는 교회의 모든 지체와 모든 예배가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집의 법은 단지 등급상 ‘최상급’의 거룩함에 이르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범위도 넓고 포괄적이다. 본문은 말한다.
“산 꼭대기 지점의 주변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이 세워진 산에 속한 모든 부분, 곧 외부 뜰, 이방인의 뜰, 성벽, 성벽 밖의 회랑, 언덕의 경사면, 모든 것이 다 지극히 거룩해야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단지 목회자만이 거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평신도도 지극히 거룩해야 함을 뜻한다. 단지 성례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식사도 거룩해야 한다. 단지 안식일만이 아니라 평일도 거룩해야 한다. 단지 예배만이 아니라 일상의 노동도 거룩해야 한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또한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세속적 일조차도 경건하게 바뀌어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대제사장의 옷자락에 달린 방울에만 “여호와께 성결”(출 28:36)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말들의 방울에도 똑같이 새겨져야 한다(슥 14:20). 우리의 부엌에서 쓰는 질그릇조차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단에서 쓰이는 금 그릇만큼 거룩해야 한다. 거룩함은 멀리까지 퍼져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덮어야 한다. 그는 영과 혼과 몸(살전 5:23)까지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야 하며, 모든 일에서 자신이 여호와께 구별된 자임을 증거해야 한다. 바울이 기도한 대로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아멘,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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