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성숙의 영성 맛보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성숙의 영성 맛보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043127
• 전자책 ISBN: 9791124043127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그러나 성경 계시 안에는 반드시 본질로 붙들어야 하는 교리들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으며, 고의로 거부하는 자들은 배교에 대한 무서운 저주의 경고를 피할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모든 교리를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겠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예를 드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언제나 “문제의 뿌리”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 잘못되기 시작한 사람은 머지않아 모든 영역에서 그릇되게 된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하여 흔들리는 기미가 보이는 즉시, 곧 다른 모든 교리에서도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존 뉴턴(John Newton)이 잘 표현했다. “그리스도에 대해 그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대 신앙과 교리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그분에 대해 바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도 옳을 수 없다.” 닥터 도드리지를 비롯하여 몇몇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을 부정하기 시작했던 이후로 등장한 거의 모든 이단적 오류들은, 겉으로는 기독교 신학의 여러 다른 영역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구속자의 신성 자체를 찌르는 것에 불과했다.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자연종교와 계시종교를 구분하는 참된 경계선임을 그들의 왜곡된 본능조차 알아차린 것 같다. 그들은 영화로우신 주께서 “넓은 강과 하수의 장소”(사 33:21)가 되시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그분 없이 살려 하지만, 결국은 돛줄이 풀리고, 돛대를 단단히 세울 수도, 돛을 펼 수도 없게 된다.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곧 삼위일체(三位一體, “셋이면서 하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복음은 모래줄과 같다. 피라미드를 그 꼭대기에 세우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시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실재적 신성과 인격을 의심하거나 논쟁거리로 남겨두는 한, 진실하고 견고한 복음을 세울 수 없다. 나는 특히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분의 인격적 사역을 간과하는 설교의 모순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적게 알려져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를 알고, 성령 하나님을 받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의견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이 곧 참되신 하나님과 영생을 아는 것이다(요 17:3).”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영적 성숙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영적 성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영적 성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이 땅에 실현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영광을 맛보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영적 성숙을 통해 하늘의 영광을 맛보느냐 아니냐 여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영적 성숙을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성숙의 영성 맛보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성숙의 영성 맛보기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성숙의 영성 맛보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5. 11. 24.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043-12-7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A taste of mature spirituality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II 몰약 한 묶음 47
III IV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교제 98
V 스펄전의_성숙의_영성_맛보기255(ebook_출판용)-19
VI VII 내가 무엇을 하였는가 168
VIII IX 역경의 달콤한 유익 216
I 뿌리(The Root of the Matter)
뿌리(The Root of the Matter)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욥기 19:28
지난 석 달 동안 주일 저녁마다 나는 아주 촘촘한 그물로 고기를 잡으려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해 왔다. 곧 “많이 두려워하는 자들”(Much-Afraids),
“겁내는 자들”(Fearings), “낙심하는 자들”(Despondencies), 그리고 “적은 믿음을 가진 자들”(Little-Faith)”, 자신이 과연 하나님의 백성일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끌어모아 위로하고자 애써 온 것이다.
나는 그 설교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의 은혜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안다. 강한 믿음을 가진 이스라엘의 장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그리스도인의 증거들을 붙잡아 내린 설교였기에, 전에는 고통과 낙심 속에 짓눌려 있던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오늘 저녁 역시 같은 목적을 따라 본문의 표현을 붙들고자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히 그들의 마음에 뿌리내려 있으나, 꽃은 거의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적은 이들에게 말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뿌리가 그 속에 있다”라는 증거가 분명하다면, 그것이 큰 위로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주님의 동산에 막 심겨진 어린 묘목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다. 아름드리 큰 나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익하다. 왜냐하면 때때로 그 가지가 무성한 잎을 내지 못할 때가 있으며, 그럴 때는 오직 감추어진 생명만이 그 나무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1. 우리는 참된 경건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 곧 뿌리나 기초라기보다는 “가지”로 여겨야 할 것들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나무는 몇몇 가지들을 잃어버려도 여전히 살 수 있다. 물론 그 상실은 상처와 해를 끼친다. 그러나 뿌리를 잃으면 나무는 결코 살 수 없다. 뿌리는 필수적이다. 뿌리를 뽑아버리면 나무는 반드시 시든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도 본질적인 것들이 있다. 곧 본질적인 교리들, 본질적인 체험들, 그리고 본질적인 행위들이다.
먼저 교리에 관하여 보자. 믿음 위에 굳게 세워지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교도들을 위로했던 견실한 교리들, 루터와 칼빈의 심령을 복되게 했던 교리들,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의 열정을 불태웠던 교리들, 그리고 바울의 입술에서 번개처럼 터져 나온 교리들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처럼 올바른 훈련은 우리를 수많은 의심과 혼란에서 구해낸다. 왜냐하면 잘못된 신학 체계는 반드시 수많은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진리의 교리에 굳게 서고, 하나님의 계시에 담긴 숭고한 교리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깊은 위로의 샘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는것은. 곧 어떤 교리들은 지극히 귀중하지만, 본질적이지 않아서 그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은혜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택 교리(히브리어: 바하르, “선택하다”)를 보자. 이 교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기초로서 은혜의 큰 틀 속에서는 분명히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교리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곧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코 이 교리를 구원의 절대적 시험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의심할 여지없이,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귀한 진리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도 성도의 견인 교리(헬라어: 히포모네, “끝까지 머무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성도들은 끝까지 보존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끝까지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연약함과 시험에만 몰두하여, 구원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다.
칼빈주의 교리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위해 목숨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구원 상태를 판별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성도들이 우리와 같이 보기를 원하나,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다. 시력이 약하고 불완전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사실 두 눈을 가지고 교리에 정통하면서도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한쪽 눈만 가지고서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나 성경 계시 안에는 반드시 본질로 붙들어야 하는 교리들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으며, 고의로 거부하는 자들은 배교에 대한 무서운 저주의 경고를 피할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모든 교리를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겠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예를 드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언제나 “문제의 뿌리”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 잘못되기 시작한 사람은 머지않아 모든 영역에서 그릇되게 된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하여 흔들리는 기미가 보이는 즉시, 곧 다른 모든 교리에서도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존 뉴턴(John Newton)이 잘 표현했다.
“그리스도에 대해 그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대 신앙과 교리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그분에 대해 바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도 옳을 수 없다.”
닥터 도드리지를 비롯하여 몇몇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을 부정하기 시작했던 이후로 등장한 거의 모든 이단적 오류들은, 겉으로는 기독교 신학의 여러 다른 영역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구속자의 신성 자체를 찌르는 것에 불과했다.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자연종교와 계시종교를 구분하는 참된 경계선임을 그들의 왜곡된 본능조차 알아차린 것 같다. 그들은 영화로우신 주께서 “넓은 강과 하수의 장소”(사 33:21)가 되시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그분 없이 살려 하지만, 결국은 돛줄이 풀리고, 돛대를 단단히 세울 수도, 돛을 펼 수도 없게 된다.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곧 삼위일체(三位一體, “셋이면서 하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복음은 모래줄과 같다. 피라미드를 그 꼭대기에 세우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시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실재적 신성과 인격을 의심하거나 논쟁거리로 남겨두는 한, 진실하고 견고한 복음을 세울 수 없다.
나는 특히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분의 인격적 사역을 간과하는 설교의 모순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적게 알려져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를 알고, 성령 하나님을 받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의견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이 곧 참되신 하나님과 영생을 아는 것이다(요 17:3).
또 하나 본질적으로 붙들어야 할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적 희생 교리이다. 이 교리에 대하여 불분명하게 울리는 종은 차라리 즉시 녹여 버리는 것이 낫다. 우리 교단 안에도 혹 명확하지 않은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실제 대속적 대리(代替)를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곳에는 그러한 자들이 많다. 내가 특정 지역을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지역 교단에서는 다행히 한 열정적인 설교자와 한 부지런한 필자가 있어서, 언제든 준비된 혀와 펜으로 이 악한 자들을 폭로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보혈만이 죄 사함의 원인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버림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를 해하고 있는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만일 우리가 이 “영원한 언약의 인(印)”, 곧 우리의 모든 소망이 걸려 있는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부인한다면, 우리에게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자리에 우리 몫으로 죽으셨다는 교리를 부인하다니! 차라리 우리 모두가 하나의 큰 번제물처럼 한 불 위에 올려져 하나님께 드려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은, 곧 세상의 소망을 거부하는 것이며, 하늘의 기쁨을 짓밟는 것이며, 지옥의 공포를 부인하는 것이며, 영원한 찬송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정하거나, 심지어 그 속죄를 이루신 분의 신성까지 거스르는 자들이 강단에 서서 설교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가? 네덜란드 교회, 프랑스 교회, 독일 교회에는 그러한 자들이 공인된 목사로 서 있다. 기독교처럼 자기 교리를 배반한 종교는 세상에 없다. 무함마드를 부정하는 무슬림 설교자가 모스크 강단에 서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겠는가? 단 한 순간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브라만이 브라마를 부정하면서 힌두 사원에서 설교할 수 있겠는가?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무신론 강사가 무신론을 전파하기 위해 고용되었는데, 만약 그가 무신론을 반박하는 주장을 설파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곧바로 그 보수는 끊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된 일인지, 가장 합리적이고 일관적인 본성조차 배반하면서, 기독교의 마지막 흔적까지 배신한 자들이 여전히 “그리스도인 목사”라 불리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짓밟고, “경건의 신비를 도덕 체계로 격하시켜”(지난 세기의 한 신학자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철학 학당으로 격하시키며, 구속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자비가 가장 밝게 드러난 계시를 흐리게 하며, 실제 신앙의 주된 기둥을 무너뜨리고, 영원한 우리의 소망을 난파시키며, 결국 구원의 반석에 몸을 던져 파멸에 이르는 자들”이 어떻게 예수의 참된 제자라 스스로 고백하는 이들에게 거룩한 일을 섬기는 자로 용납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속죄 교리를 가져야 한다. 그것도 은밀히 인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사랑(사랑의 정신, 곧 카리타스)이 많은 것을 덮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회막문에서 제단을 제거하거나, 속죄의 피 없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교리 또한 문제의 뿌리 중 하나이다. 루터의 말을 여러분도 아실 것이다. 반복할 필요가 없다. 곧 “교회의 흥망을 결정하는 조항”이 바로 이 교리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여러분은 이 교리를 전파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손과 나의 마음이 당신에게로 뻗어 있다. 그러나 이 교리를 부인하는가? 우물쭈물하며 더듬는가? 혹은 두려워하여 반쯤만 믿는가? 그렇다면 나는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 당신은 주님의 사람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분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는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선언한다.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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