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식하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식하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043448
• 전자책 ISBN: 9791124043448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나는 지금까지 교회의 여러 모습을 지켜보며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았다. 모든 피가 심장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몸 전체가 곧 병에 걸린다. 생명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안으로만 머물며,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으려는 교회는 곧 영적으로 혼잡해지고 병든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만일 여러분이 이곳보다 다른 곳에서 더 큰 유익을 끼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그곳으로 가라. 나는 여러분이 떠난다고 해서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쁘다.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을 위해 담대히 나아가기를 기뻐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가까운 지역의 작은 모임이나 교회에서 더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리로 가라. 스스로 교회를 세워 하나님의 이름이 더 크게 영광 받게 된다면, 나는 오히려 그 일로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분은 복음이다. 그분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모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이 자녀로 변화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삶이다. 이것이 승리하는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느냐 못하느냐 여부로 결정된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식하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식하기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식하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1. 30.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043-44-8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이 책은 부분은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Finding Rest in Jesus Christ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예수님에게 죄를 담당시키심(Sin Laid on Jesus)
예수님에게 죄를 담당시키심(Sin Laid on Jesus)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6
이 구절은 본문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죄 고백으로 시작한다. 내가 볼 때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백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 모두 타락했으며, 어린 신앙인부터 성숙한 나이에 이른 자들 모두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하늘에 처음 들어간 자로부터 마지막으로 들어갈 자들까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였도다.”
그러나 이 고백은 진심 어린 공통적인 고백일 뿐 아니라 또한 특별히 개별적이다.
“각기 제 길로 갔거늘.”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독특한 죄악이 있다. 모두가 죄인이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악화 요인이 각 개인에게 있다. 참된 회개의 표지는, 그것이 다른 회개자들과 자연스럽게 연합되면서도 동시에 홀로 서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 데 있다.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는 고백은 각 사람이 자신에게만 주어진 빛을 거스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찾기 어려운 악한 형태로 죄를 지었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처럼 이 고백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며, 그 외에도 여러 탁월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다 말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것이 숨김없고 솔직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 변명 혹은, 고백의 힘을 약화시키는 어떤 단어도 없다. 또한 이 고백은 매우 사려 깊다. 생각 없는 사람은 본문처럼 이렇게 적절한 비유를 사용할 수 없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였도다.”
우리는 주인을 아는 소 같지도 않다. 주인의 구유를 기억하는 나귀 같지도 않다. 심지어 하루 종일 떠돌다가 밤에는 먹이를 찾아 돌아오는 돼지 같지도 않다. 우리는 양 같이 그릇 행하였다. 돌봄을 받으나 돌보는 손에 감사할 줄 모르는 피조물, 울타리의 틈을 찾아 나갈 지혜는 있으나 돌아올 의지도 능력도 없는 어리석은 존재, 늘상, 고집스럽고 어리석게, 스스로 돌아올 힘이 없이 길을 잃은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이다.
나는 우리의 죄 고백이 이처럼 사려 깊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참한 죄인입니다”라는 말을 아무런 느낌 없이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죄를 더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진정으로 함께하지 않은 형식적인 회개의 말만 반복하는 것은, “다시 회개해야 할 회개”이며, 하늘을 모독하는 일이다.
나는 본문 속 고백을 사랑한다. 자기 의의 모든 구실을 내려놓은 고백이기 때문이다. 이 고백은 죄를 지은 무리, 그래서 죄를 자각하고 있으며, 변명할 수 없는 죄책을 인정하는 무리의 선언이다. 그들은 반역의 무기를 다 부숴버리고 이렇게 한 목소리로 서 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그러나 이 죄의 고백에는 슬픈 통곡이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다음 구절이 곧 그것을 노래로 바꾸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은 이 본문에서 가장 비통한 문장이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답고 위로로 가득 찬 말씀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고통이 가장 짙게 모인 그곳에서 은혜가 다스렸고, 슬픔이 절정에 이른 그 자리에서 피곤한 영혼이 가장 달콤한 쉼을 얻는다. 상하신 구주께서 상한 마음들의 치료자이다.
이제 나는 이 고백에 공감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본문이 제시하는 복된 교리,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다는 진리로 이끌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본문을 세 단계로 살필 것이다. 첫째, 본문의 해석적 의미를 살피고, 둘째, 그 적용, 셋째, 진지하고 유익한 묵상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첫째, 본문의 여백 주석 번역을 보면 이렇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만나게 하셨도다.”
여기서 주목할 첫 번째 생각은 죄의 만남이다. 죄는 마치 어떤 악한 태양 광선과도 같다. 죄는 세상에 빛처럼 널리 흩어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모든 악의 광선을 집중적으로 받으셨다. 마치 하나님이 불타는 렌즈로, 세상에 흩어진 모든 광선을 한 점으로 모아 그리스도 위에 집중시키신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의미이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집중시키셨도다.”
이전에 온 세상에 흩어져 있던 죄가 이제 무시무시하게 집중되었다. 복되신 주의 머리 위에 모든 백성의 죄가 한데 모였다.
큰 폭풍이 다가올 때 하늘이 검게 변하고 바람이 울부짖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하나님의 모든 무서운 전병기(戰兵器)가 전장으로 모여드는 듯하다. 폭풍의 중심에서, 하늘의 번개가 천공을 찢어버릴 듯하고, 검은 구름이 겹겹이 빛을 가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위에 모든 죄가 모여든 장엄한 비유를 본다.
과거의 죄와 미래의 죄, 이방인 중 택함 받은 자의 죄와 유대인 중 택함 받은 자의 죄, 젊은 자의 죄와 늙은 자의 죄, 원죄와 자범죄, 모든 죄가 다 그분께로 모였다. 모든 검은 구름이 하나의 거대한 폭풍으로 집중되어, 구속자이며 대속자이신 그리스도 위에 몰아친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 수천 개의 시냇물이 산비탈을 따라 쏟아져 내려와 하나의 깊고 넘치는 호수로 모이는 것과같다. 그 호수는 곧 구주 예수의 마음이며, 그 폭포수 같은 흐름은 곧 여기서 죄를 고백하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다. 혹은 자연이 아니라 상업에서 비유를 취하자면, 많은 사람들의 채무가 모두 한 사람에게 모이는 것과 같다. 각기 다른 날에 상환해야 할 여러 어음과 차용증이 모두 모여, 다른 한 사람의 도움도 없이 그것을 한 사람이 도맡아 모든 채무를 갚기로 약속한 것처럼 말이다.
구주께서 처하신 형편이 바로 그러하였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모든 빚을 그분께 담당시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 그 누구의 빚이든 그 모든 책임을 홀로 지셨다.
만약 이런 비유들로도 본문의 뜻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성경 번역 그대로를 취하라.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는 곧 짐이 사람의 등에 지워지듯, 모든 백성의 짐이 그분께 지워졌다는 뜻이다. 또 옛날 대제사장이 속죄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백성의 죄를 전가하였듯, 예수님이 친히 사랑하는 자들의 죄를 당신 머리에 지셨다는 의미이다. 두 번역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모든 죄가 한곳으로 모였고, 그것들이 결박되어 한 덩어리의 무거운 짐이 된 후, 마침내 그 전체가 그분께 지워졌다는 것이다.
둘째로 죄가 무죄한 대속자의 고난당하는 몸 위에 모였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내가 “고난당하는 몸”이라 한 것은 본문의 문맥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바로 이 문맥 속에서, 그리고 그 모든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며 덧붙여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죄인이셨다면, 결코 백성의 죄를 대신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신성에 있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 찬양받기에 합당하셨고, 인성에 있어 기적적인 성령 하나님의 잉태로 원죄가 전혀 없으셨으며, 또한 그의 삶의 거룩함은 흠과 티가 없고, 점도 주름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같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면에서 죄인의 자리에 서실 수 있는 자격이 있으셨다.
본문이 가르치는 교리는 이러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어머니의 살과 피를 취하여 사람이 되셨고, 동시에 참 하나님이신 참 하나님, 곧 지극히 참되시고 영광스러운 창조주요 보존자이다. 그분께서 그와 같은 신성과 인성을 지닌 채, 여전히 죄 없으신 상태에서 모든 백성의 죄악을 자신에게 지셨다. 그분에게는 개인적 죄가 전혀 없었으며, 죄를 지을 가능성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인의 죄를 자신에게 짊어지셨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보통 ‘전가’(imputation)라 불러왔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하지 않지만, 이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었다”고 믿지만, 본문이 말하는 바는 단순한 전가 이상의 신비한 차원을 포함한다고 본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스도는 단지 죄인으로 취급되신 것이 아니라 그 죄 자체가 실제로(어떻게 되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그의 머리 위에 놓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는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기록된 바, “그가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리라” 하였으니(사 53:11), 이는 단지 죄의 형벌이나 죄의 전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신 것은 그보다 더 깊고 실재적인 의미에서였다. 나는 그 신비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결코 죄인이 아니셨고, 될 수도 없으셨다. 그럼에도 그의 백성의 죄는 참되게, 실제로 그분께 지워졌다는 사실이다.
셋째로, 누군가 묻는다.
“그렇다면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된 것이 과연 의로운 일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것은 반드시 옳은 분께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즉 우리가 범죄한 대상인 여호와께서 친히 명하셨고, 그리스도께 죄를 지우셨다. 그러므로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은 곧 여호와의 공의를 문제 삼는 일이다. 나는 우리가 감히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 질그릇이 토기장이와 다툴 수 있겠는가? 창조물이 창조주께 도전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께서 이것을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사람들이 여호와의 행하심을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자원하여 이 죄를 지셨다. 그것은 그분께 강요된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타인의 죄 때문에, 또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이 아니다. 그는 친히 나무 위에서 우리의 죄를 그 몸에 지셨으며, 그 고난 중에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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