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받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받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043462
• 전자책 ISBN: 9791124043462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 문이 열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즉시, 두드리던 여러분이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진실하게 두드렸다면,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보는 순간,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 보라, 그분께서 여러분 앞에 열린 문을 두셨기에,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다(계 3:8). 이제 머뭇거리지 말라. 지금까지 여러분은 길에 많은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믿으라, 그리고 살라. 여러분의 두드림에 응답하여 문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면, 곧 일어나 지체하지 말라. 그 문이 열리는 것은 단순한 입장이 아니라, 영원한 안전을 의미한다. 한 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영원히 안전하다. 피로 뿌려진 그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사랑받는 자의 집 안에서 영원히 쉼을 누리게 된다. 그분이 주시는 생명은 영생이므로, 여러분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멸망시키는 천사가 날아다니더라도, 그 피 아래 있는 자는 반드시 넘어가게 된다(출 12:13). 믿기만 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그러면 구원이 여러분의 집에 임할 것이며, 여러분은 구원의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은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될 것이다. 한 번 들어간 자는 은혜의 집에 거하며, 더 이상 낯선 손님이 아니라 집의 자녀처럼 머물게 된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식탁에 앉아 아들과 상속자,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상속자로서 먹고 마시게 될 것이다 (롬 8:17). 그 사랑의 큰 집에는 자유와 풍성함과 기쁨이 넘친다. 하나님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으며(시 16:11), 이것이 여러분의 기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사랑의 집 안으로 들어간 자는 그 집의 내실에도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집 현관에만 있어도 안전하지만, 이후에 주인 되신 주께서 여러분을 더 깊은 방으로 인도하시며 자신의 보화를 보여주시고, 은혜의 창고를 열어주실 것이다. 여러분은 은혜에서 은혜로, 지식에서 지식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요 1:16; 고후 3:18). 이러한 일은 오직 경험으로만 알 수 있으며, 그 경험은 오직 ‘두드림’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분은 복음이다. 그분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모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이 자녀로 변화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 속에서 사는 삶이다. 세상과 마귀와 죄의 공격으로 상처 입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를 놀랍게 위로하신다. 이것이 승리하는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여부로 결정된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받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받기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받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1. 30.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043-46-2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이 책은 부분은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Receiving Comfort from Jesus Christ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그가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Supposing Him to Have Been in the ...
그가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Supposing Him to Have Been in the Company)
“그가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누가복음 2:44
여러분은 이전에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생각하더라”라는 말씀을 묵상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추측이었고 분명한 오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익한 깨달음을 주었다. 오늘 본문에도 또 하나의 추측이 나온다. 이것 역시 잘못된 추측이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깊은 슬픔을 겪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어린 예수께서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무리 중에 계셨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해마다 각자의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 처음에는 가족 단위로 모여 길을 떠났다. 조금 더 나아가면 여러 가족들이 합쳐 더 큰 무리를 이루었고, 예루살렘이 가까워질수록 큰 행렬을 형성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함께 올라갔다.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때였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편)를 부르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경건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곧 위대하신 왕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간다는 기대감으로 그들은 행복한 순례의 무리를 이루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예수께서 부모와 함께 귀향길에 올랐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 부모가 돌아가는 때를 아셨던 그분은 그들과 함께 출발할 준비를 하셨을 것이며, 혹시 부모를 만나지 못했더라도 자신이 왔던 무리에 합류하여 나사렛으로 돌아가셨으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의 부모도 예수께서 혼자 떨어졌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연히 그가 무리 중에 있으리라 여겼다.
예수님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사랑하셨다. 그분은 냉정하게 자신만을 고립시키는 분이 아니셨으며, 또한 사람들을 피하는 침울한 분도 아니셨다. 그는 특이함을 인위적으로 드러내지 않으셨다. 물론 가장 높은 의미에서 그는 “거룩하고, 해가 없고, 더럽혀지지 아니하고, 죄인들과 구별된”(히 7:26) 분이셨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는 옷차림, 음식, 말투, 행동에서 일부러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려 하지 않으셨다. 그는 인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라셨으며, 결혼식과 장례식에도 참여하셨다. “그리스도 예수”만큼 인간적인 분은 없었다.
어린 시절에도 예수는 죄를 제외하고는 다른 아이들과 같으셨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악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매너가 나빠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아이가 아니셨다. 오히려 그의 온화한 성품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와 함께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가 “그가 무리 중에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의 부모보다 그분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추측이 더욱 타당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창세 전부터 그분의 즐거움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었음을 알고 있다(잠 8:31 참조). 그분은 성육신 이전에도 종종 천사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세상에 오신 목적도 사람들을 찾고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계실 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실 때, 굶주린 무리를 먹이실 때 가장 기뻐하셨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무리 가운데” 계시기를 즐거워하셨다.
이처럼 수많은 인파로 가득한 도시에서 그분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가 여전히 이 무리들 중에 계셔서 그들을 축복하시리라는 소망이 달콤하게 다가온다. 병든 자들이 넘쳐나는 이 거대한 병원 같은 세상에 참 의사가 필요하다면, 바로 지금이다. 길 잃은 양떼가 너무나 많은 이 세상에 목자가 필요하다면, 바로 지금이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며 여전히 그들을 당신께로 모으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지금도 우리 안에 계시리라 확신한다. 그는 이미 높이 들리셨고, 이제는 모든 사람을 끌어당기신다(요 12:32).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 속으로 나아갈 때, 그 예수께서 능력 있게 함께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라. 그러면 그는 그 무리 중에 계실 것이다.
그의 부모가 예수를 찾으며 “그가 무리 중에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그의 다정함과 교제의 성품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다. 그들은 그가 잘못된 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에는 분명 죄악과 헛된 오락이 있는 장소들이 있었지만, 예수께서 그런 곳에 계실 것이라고는 한순간도 상상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분이 잃어버린 남녀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 무리 중에 계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끄러운 웃음과 방탕한 즐거움이 가득한 곳에서는 그분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예수를 연극 무대나 술집에서 찾지 않는다. 거기서 그를 상상하는 것은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더럽혀지지 아니하신 분”이므로,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장소에는 계시지 않는다.
우리는 예배하는 무리 가운데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혹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 가운데서 그를 찾는다. 그러나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지배하는 자리에서 그를 찾으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본을 따라야 한다. 우리 주께서 가시지 않았을 곳에는 우리도 결코 가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계셨으리라 상상할 수 없는 장소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그런 곳에 있다는 상상조차 가능하지 않게 하자. 우리가 가는 곳은 오직 우리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는 곳이어야 하며, 그분이 갑자기 자기 나라의 영광 가운데 오신다 해도 우리가 부끄럽지 않을 만한 자리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곳에 갈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물어야 한다.
“예수께서 그곳에 가셨을까?”
만일 주께서 그곳에 가지 않으셨을 것이라면, 우리의 발도 그 길을 향해 움직이지 않게 하라.
이 일에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떤 것도 추측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함을 배운다. 예수께서 “무리 중에 계시리라” 생각했던 그 추측 때문에, 부모는 그를 놓쳤고 사흘 동안 근심하며 그를 찾아야 했다.
왜 그들은 예수를 놓쳤는가? 왜 그와 함께 머물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주님도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예수에 대해 ‘추측’했기 때문에 고통의 날들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예수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추측하지 말라. 그의 인격, 교훈, 사역에 대해 막연히 짐작하지 말고, 확실한 진리를 붙잡으라. 어떤 독일 학자가 자기 머릿속 생각만으로 낙타를 ‘창조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낙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자기 상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과는 전혀 닮지 않은 허상의 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 곧 우상화된 그리스도를 만들게 된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결코 우리의 구주를 고안해낼 수 없다.
복음서 기자들의 영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복음을 써보라. 혹은 복음서의 다른 이야기들과 조화를 이루는 예수의 행적을 하나라도 상상해보라.”
아무도 할 수 없다. 예수의 전 생애는 완전히 독창적이며,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발한 상상력조차도 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생애에 어울릴만한 새로운 사건 하나조차 더 추가하지 못한다. 만일 여러분이 가짜 복음서들, 곧 “야고보 원복음서”(Protoevangelion)나 “유년기 복음서”(Gospel of the Infancy) 같은 책들을 읽는다면, 곧바로 그것을 불태워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진정한 복음서의 기록들과 전혀 맞지 않으며, 예수의 어린 시절을 우스꽝스럽게 왜곡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가장하는 책들은 사복음서를 잘 아는 단순한 독자에게도 곧바로 가짜로 판명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에 관해 추측하지 말고, 성경이 그에 대하여 계시한 바를 그대로 읽고 믿으라. 하나님의 왕의 화폐를 깎지 말고, 그것이 주조된 그대로의 순전함과 귀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에 덧붙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더해질 것이다(계 22:18 참조). 성령 하나님이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곧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기록하신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되, 신학 속에 추측을 끼워 넣지 말라.
교회가 여러 교파로 나뉜 이유는 계시된 진리가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이론들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이론을,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이론을 만들어내 서로 싸운다. 성경의 정신이 아니라 문자를 붙들고 세운 가설들이 다툼과 분열을 낳았다. 그러므로 모든 추측을 버리라. 그것들은 결국 슬픔만 가져올 뿐이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참된 예수를 믿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이 말씀의 거울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보게 하신 그대로의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가 무리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이 추측은 그들에게 큰 슬픔을 주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예수에 대하여 아무것도 막연히 짐작하지 말라. 이 진리를 여러분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에도 적용해야 한다. 예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계시다고 추측하지 말라. “나는 어릴 때 세례를 받았으니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또 “나는 성인으로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으니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다”라고 단정하지도 말라. 세례의 물이 성령 하나님을 전해주는 것은 아니다.
성령 하나님을 받은 자가 세례를 통해 유익을 얻는 것은 복된 일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외적 의식에 묶여 있지 않다. “나는 성찬에 참여했으니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다”라고 말하지도 말라. 그분의 식탁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실 수는 있지만, 정작 그분을 알지 못할 수도 있고, 그분 역시 여러분을 모르실 수도 있다.
외적인 예식은 은혜 없는 사람에게 아무 은혜도 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에게 신자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은 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여러분 중 누군가가 교회 회원증을 곧 구원의 증명서로 착각하고 있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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