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4』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4』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476529
• 전자책 ISBN: 9791124476529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더 이상 죽어가는 자를 보지 말고 죽은 자 위로 몸을 굽혀 보라. 이제 다 끝났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고 지금 어두운 방에 혼자 누워 있다. 사랑하는 이가 몰래 들어와 떨리는 손으로 관 뚜껑을 들어 올려 소중한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작별 인사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일은 계속될 수 없다. 친구들이 모였고 조문객들은 거리로 나가 그를 무덤으로 옮겨야 한다. 저 장례식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다. 시신은 무덤으로 옮겨지고 길 위에서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침묵의 설교를 한다. 어느 날 아침 로버트 레이턴(Robert Leighton) 대주교는 친구로부터 설교를 들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요, 하지만 설교를 만났습니다. 매장되기 위해 나가는 죽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모든 장례식이 여러분에게 설교가 되게 하라. 짧은 시간 안에 우리 각자에게 관이라는 좁은 공간에 누워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다음에는 열린 무덤과 시신의 하관, 그리고 그 주위에 모인 조문객들의 모습이 우리를 위해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이다. 여러분의 관 뚜껑과 나의 관 뚜껑 위로 흙이 떨어질 것이다. “흙은 흙으로, 먼지는 먼지로, 재는 재로.” 푸른 언덕과 풀밭 사이에 핀 데이지 꽃, 그리고 친구들이 무덤에 뿌려 줄 시든 꽃 몇 송이가 남을 뿐이다. 묘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결국 이 상태에 이른다. “여기 그가 잠들다”라는 말은 우리 모두의 비문이다. 땅의 품에 여러분은 눕게 된다. 나 또한 그곳에 누울 것이다. 이 사실을 실감하라. 죽음은 매우 가깝고 확실하다. 몇 해가 지나면 우리는 수많은 죽은 자의 무리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조금 더 밀고 나가 보자. 몸을 떠나는 사람의 영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나의 부족한 말로는 마음속으로 느끼는 작은 실체조차 전달하기 어렵다. 영혼은 물질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신을 발견한다. 영혼이 육신의 껍질에서 풀려났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장막이라는 이 지상의 집을 사랑하며 마지못해 떠난다. “누가 망각의 제물이 되어, 이 즐겁고 근심 어린 존재를 포기하고, 활기찬 낮의 따뜻한 구역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지 않았겠는가?” 여러분이 얼마나 뒤를 돌아보든 상관없다. 우리의 영혼은 육체와 작별하게 된다. 잠시 동안 모든 물질에서 떨어져 거해야 한다. 영혼은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죽음 직후에 영혼의 상태는 의문의 여지 없이 밝혀진다. 순식간에 영혼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졌는지 알게 된다. 혹은 자신이 버림받고 정죄받았음을 소망도 없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식은 즉시 행복을 시작하게 하며 그 행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 반대로 그 지식은 즉시 고통을 시작하게 하며 그 고통은 영원히 깊어질 것이다. 영혼은 잠시 몸을 떠나 있다가 부활 나팔 소리가 울리면 다시 살아난 육체에 거하게 된다. 그 만남은 어떠하겠는가?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가 다시 결합하는 감각은 어떠하겠는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부활은 성도에게는 복된 소망이지만 경건하지 않은 자에게는 끔찍한 두려움이다. 영혼은 다시는 세상의 근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세상으로는 전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영혼은 다시 육체에 거하여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는 모든 인류의 재판장으로 세워진 그분의 입술로부터 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 그 판결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었는가? 이 엄중한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을 살아가라.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행위를 살피고 계신다. 하나님의 판결이 내려지면 영혼은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 받아들여졌든 정죄받았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가 복되다고 선언하신다면 하나님의 기쁨과 같은 말할 수 없는 복락 속에서 기뻐하며 나아가라. 만약 그리스도가 “저주를 받은 자들아”(마 25:41)라고 선언하신다면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러분이 상상만으로 자신을 그런 상태에 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분명히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이 육신의 집을 벗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 진실로 영원히 살게 된다. 심판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거나 정죄받기 위해 살 것이며, 그다음에는 행복이나 고통 속에서 영원히 거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여러분은 머지않은 시간에 알게 된다. 나는 여러분이 이 피할 수 없는 여행을 실감하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여전히 부족할까 두렵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를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본서는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욥기 설교문 총 87편의 완역본이다. 과거 설교전집에는 32편만이 실려 있다. 고로 본 설교집에 55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4)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4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4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6. 8.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476-52-9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he Gospel in the Book of Job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4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무로부터 나오는 무(Out of Nothing Comes Nothing)
무로부터 나오는 무(Out of Nothing Comes Nothing)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욥기 14:4
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신이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욥에 대해 진실을 말하자면 그는 매우 깨끗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시대나 다른 어떤 시대의 사람들보다 훌륭했다. 성경에는 욥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증언이 들어 있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마귀가 이 사실을 확인해 주는 장면도 있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욥을 주의해서 보았느냐고 물으셨다. 하나님은 욥처럼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마귀는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다만 마귀는 욥의 정직함 뒤에 나쁜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
때로는 친구의 칭찬보다 원수의 인정이 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욥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욥은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진실하며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더러운 자라고 불렀다.
사람이 진정으로 깨끗해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더 깊이 발견하기 때문이다. 부정한 사람은 거룩함에 대해 낮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그 기준에 거의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혹은 기준을 자신의 수준으로 낮추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마음이 진실로 청결한 사람은 거룩함에 대해 높은 이상을 품는다. 그 이상이 너무 높아서 자신이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그는 지금까지 이룬 성취보다 완벽함이라는 목표와의 거리를 더 크게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사도 바울(Paul)처럼 말한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스스로 자신을 아주 좋게 생각하는 태도는 나쁜 징조이다. 나는 자만 섞인 말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온전히 기뻐해야 한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성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슬퍼할 부분이 많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무리 많이 닮았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분을 닮아갈수록 완벽하지 못한 부분을 더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외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거룩함의 길에 들어선 것은 복된 일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한 모습은 비참한 일이다. 누가 나를 죄의 통제에서 완벽하게 해방하겠는가? 나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온전히 거룩하게 살고 싶다.
욥은 자신을 더러운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완벽한 깨끗함을 내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절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욥의 질문 또한 놀랄 일이 아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욥 14:4).
내가 이미 말했듯이 욥의 일상 모습은 사람 눈에 깨끗해 보였다. 그는 거짓된 비난으로부터 자신의 성품을 간절하고 진실하게 변호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이 깨끗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완벽함이 있다. 먼저 이웃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깨끗함이다. 이는 예언자 사무엘(Samuel)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당하게 말했던 것과 같다. 백성들은 사무엘이 누구도 속이거나 압제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증언하시며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도 오늘 증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이다 하니라”(삼상 12:4-5).
이런 정직함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눈처럼 하얗고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깨끗함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우리의 판단과 매우 다르다. 우리의 저울은 일상적인 목적에는 충분할지라도 거칠고 투박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저울은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져도 움직인다. 아주 미세한 먼지에도 반응할 것이다. 사실 이 비유도 완벽하지는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죄도 저울의 작은 먼지처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옳다. 하나님은 악이 적은 곳에서 억지로 많은 악을 찾아내지 않으신다. 그곳에는 처음부터 큰 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거룩하시다. 그래서 우리의 부정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발견하신다.
하나님의 완벽한 거룩함과 비교하면 우리 중 누구도 깨끗하지 않다. 욥의 친구 빌닷은 하나님의 눈에는 별이라도 빛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물며 구더기나 지렁이 같은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는 별이라도 빛나지 못하거든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지렁이 같은 인생이랴”(욥 25:5-6).
엘리바스도 하나님은 천사라도 미련하다고 하신다고 말했다. 하물며 흙집에 살며 하루살이 앞에서 무너질 사람의 상태는 어떻겠는가?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도 무너질 자이겠느냐”(욥 4:18-19).
하나님의 거룩함은 결코 더럽혀질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바라볼 때 절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결코 그분과 같은 완벽함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이제 본문을 통해 먼저 자연계에서 불가능한 일들, 즉 더러운 것 가운데서 깨끗한 것을 내는 일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 불가능한 일은 불결한 부모에게서 완벽하게 거룩한 성품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사람이 죄악 중에 잉태되고 죄 가운데 태어났다는 교리는 진리이다. 새로운 이론들이 무엇이라 말하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의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없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Adam)과 하와(Eve)는 깨끗한 자손을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타락한 남녀는 반드시 악으로 기우는 성향을 가진 아이를 낳는다.
모든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발견하는 아름다운 면이 많다. 하지만 자녀를 주의 깊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아이의 무서운 성질을 보게 된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성이 생기면 자신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악으로 향하는 성향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이 성향은 아이의 성격에 따라 조만간 겉으로 드러난다. 다윗(David)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시 58:3).
거짓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도 종종 무섭게 거짓말을 한다. 가장 좋은 본보기를 보고 자란 아이도 다양한 방법으로 속임수를 쓴다. 만약 자신의 아이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 안에는 부모와 똑같은 악이 숨어 있다. 그 악은 단지 드러날 적절한 기회를 기다릴 뿐이다. 죄는 나쁜 친구가 없어도 스스로 자라난다. 경건한 믿음의 가정에서도 죄는 잡초처럼 자연스럽게 아이 안에서 자란다.
땅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식탁에 올릴 채소가 자라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덕목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악은 사람의 마음속에 본래부터 들어 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밖으로 나오게 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사도 바울(Paul)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니고데모(Nicodemus)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7).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요 1:13).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 사람의 본성이 본래 악하기 때문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이것이 첫 번째 불가능한 일이다. 타락한 부모로부터 죄 없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은 개인의 타락한 본성에서 순결한 본성을 끌어내는 일이다.
부정한 본성을 교육한다고 해서 순결해지지는 않는다. 사람의 전체 체계가 타락했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발전시킬 수 없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여러분이 눈이 아플 정도로 해골을 지켜본다 해도, 그 죽음의 갈비뼈 사이에서 생명의 흔적이 솟아오르는 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은 굽이쳐 흐르는 더러운 시냇물을 바라보며 그 깊은 곳을 휘젓거나 물길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이 부정하다면 그곳에서 나오는 물도 역시 부정할 것이다. 물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도 마찬가지이다. 본성이 아무리 많은 과정을 거쳐도 여전히 인간의 본성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성령 하나님이 그것을 하나님의 본성처럼 변화시키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여전히 부정한 것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떤 깨끗한 것도 나올 수 없다.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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