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9』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9』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476628
• 전자책 ISBN: 9791124476628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우리는 죽음의 문들 앞까지는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을 엿볼 수는 없다. 성경 계시 외에는 우리에게 그 너머의 쓸쓸한 땅에 대한 정보가 없다. 우리에게 그 땅은 영원한 어둠 속에 싸여 있다. 우리는 이 두려운 신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우리 자신이 죽을지 알 수 없다. 언젠가 우리 곁에서 항아리가 깨질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하지만 그 소식이 언제 올지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울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더 멀리 있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의 이 땅의 삶은 공포스러웠던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동안 갇혀 있던 죄수와 같다. 죄수들은 도망칠 수 없도록 갇혀 있었다. 매일 아침 작은 종잇조각을 든 사람이 와서 희생자 이름을 읽어 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밖에서 기다리던 수레로 급히 옮겨져 죽음으로 끌려갔다. 이처럼 매일 아침 죽음의 천사가 세상에 와서, 사람들의 이름을 읽는다. 그리고 우리는 부름받은 동료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상에 너무 익숙해졌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동료를 잃은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각자도 자신을 부르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는 초원의 황소나 우리 안의 양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한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행위가 무엇인지는 안다. 하지만 영혼이 거처를 잃었을 때 느끼는 기이한 감정은 무엇인가? 마치 무너지는 집처럼 몸에서 버려졌을 때의 기분 말이다. 육체 안에 갇힌 영인 불멸과 필멸을 묶어 두는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그 기분을 말해 주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죽어 가는 이들의 곁에 서 보기도 했다. 우리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 문들이 우리에게 굳게 닫혀 있다는 사실만 안다. 우리는 저세상과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영원한 사귐을 누릴 뿐이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를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본서는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욥기 설교문 총 87편의 완역본이다. 과거 설교전집에는 32편만이 실려 있다. 고로 본 설교집에 55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9)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9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9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6. 8.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476-62-8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he Gospel in the Book of Job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9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죽음의 그림자 문들(The Doors of the Shadow of Death)
죽음의 그림자 문들(The Doors of the Shadow of Death)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욥기 38:17
지난 안식일에 우리 영혼은 심판의 날까지 멀리 날아갔다. 우리는 경외심에 찬 마음으로 서서 크고 흰 보좌를 바라보았다. 또한 땅의 곡식을 거두는 추수꾼의 머리에 둘러진 금띠를 보았다. 우리는 다른 천사가 예리한 낫을 들고 세상의 포도송이를 거두는 모습을 보며 떨었다. 천사는 그것들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졌다. 사람의 피가 격류처럼 흘러나오기까지 그것들은 짓밟혔다.
이번 여정은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먼 곳까지 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더 가까운 정거장에서 멈출 것이다. 우리는 부활의 때까지 여행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의 그림자 문들 앞까지만 갈 것이다. 질문은 “네가 사망의 그늘진 문을 보았느냐”(욥 38:17)이다. 이 질문에 담긴 대답은 “아니요”이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그의 무능함과 무지함을 보여 주려고 질문하신다. 하나님이 족장 욥에게 던지는 각 질문에는 부정적인 답변이 예상된다.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욥 38:16).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욥 38:17).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욥 38:18).
욥은 이 중 어느 것도 경험하거나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욥이여, “네가 사망의 그늘진 문을 보았느냐”(욥 38:17). 족장이 줄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이나 우리가 줄 수 있는 대답은 “아니요”이다. 우리는 죽음의 문들 앞까지는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을 엿볼 수는 없다. 성경 계시 외에는 우리에게 그 너머의 쓸쓸한 땅에 대한 정보가 없다.
우리에게 그 땅은 영원한 어둠 속에 싸여 있다. 우리는 이 두려운 신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우리 자신이 죽을지 알 수 없다. 언젠가 우리 곁에서 항아리가 깨질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하지만 그 소식이 언제 올지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울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더 멀리 있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의 이 땅의 삶은 공포스러웠던 프랑스 혁명 동안 갇혀 있던 죄수와 같다. 죄수들은 도망칠 수 없도록 갇혀 있었다. 매일 아침 작은 종잇조각을 든 사람이 와서 희생자 이름을 읽어 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밖에서 기다리던 수레로 급히 옮겨져 죽음으로 끌려갔다. 이처럼 매일 아침 죽음의 천사가 세상에 와서, 사람들의 이름을 읽는다. 그리고 우리는 부름받은 동료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상에 너무 익숙해졌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동료를 잃은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각자도 자신을 부르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는 초원의 황소나 우리 안의 양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한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행위가 무엇인지는 안다. 하지만 영혼이 거처를 잃었을 때 느끼는 기이한 감정은 무엇인가? 마치 무너지는 집처럼 몸에서 버려졌을 때의 기분 말이다. 육체 안에 갇힌 영인 불멸과 필멸을 묶어 두는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그 기분을 말해 주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죽어 가는 이들의 곁에 서 보기도 했다. 우리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 문들이 우리에게 굳게 닫혀 있다는 사실만 안다. 우리는 저세상과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영원한 사귐을 누릴 뿐이다.
“지상의 성도들과 이미 죽은 모든 이들이 오직 하나의 사귐을 이룬다.”
참으로 우리는 저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들의 거처를 가로질러 쳐 놓으신 휘장 뒤를 결코 엿볼 수 없다.
모든 시대에는 이 신비로운 영역에 침범하려던 강령술사(necromancer)가 있었다. 그들은 저세상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의 술수는 지옥처럼 혐오해야 한다.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은 철저히 혐오의 대상이다.
하나님이 휘장을 치고 문을 닫으신 곳에 사랑하는 여러분과 내가 참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죽은 자의 제물을 먹음으로써 마귀와 사귀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그들과 함께 파멸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욥 38:17).
우리는 욥처럼 대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문을 보지 못했다. 또한 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굳게 닫힌 철창 사이를 엿보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것만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의 신비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제 우리는 묵상 속에서 허락된 곳까지만 그 문으로 내려가 보자. 우리가 실제로 알 수 있는 사실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지식을 넘어서는 환상을 꿈꾸거나 집착하지 말자. 지옥의 하강을 노래한 시인들이 있었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장엄한 구상이나 존 밀턴(John Milton)의 상상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일은 훨씬 소박하다. 우리는 시를 짓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을 전하려 한다.
1. 우리는 묵상 속에서 죽음을 일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자
사랑하는 여러분이 죽음의 문에 최대한 가까이 가보기를 청한다. 환상 중에 이 끔찍한 관문들을 올려다보라. 이 문들은 항상 열려 있다. 낮이나 밤이나 죽음의 문은 결코 닫히지 않는다. 매 순간 그곳을 통과하는 행렬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Pharaoh)의 궁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한밤중에도 죽는다. 또한 “내 머리야, 내 머리야”라고 말하던 아이가 어머니 무릎에서 잠든 것처럼, 정오에도 죽는다. 사람은 봄에 죽기도 한다. 그러면 땅에서 깨어난 꽃들이 그들의 무덤을 장식한다. 여름에 죽는 사람은 공기를 채우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진다. 진혼곡을 부르는 겨울은 많은 사람을 데려간다.
죽음의 문 근처에서 귀를 기울여 보라.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벨이 길을 연 이후로, 죽은 자들은 끊임없이 오고 있다. 이것은 낮이나 밤이나 결코 멈추지 않는 영원한 흐름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미 그 철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 숫자는 도저히 셀 수 없다. 계산기조차 실패할 것이며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합계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대다수라고 부른다. 10억 이상의 인구가 사는 지구(현재는 85억 정도임-역자주)라 해도, 죽은 자들의 회중에 비하면 산 자들의 모임은 빈약할 뿐이다. 세상 첫날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무리가 그 문을 지났는가.
때로는 세상의 왕들 같은 죽음의 사자들이 전쟁을 통해 먹잇감을 몰아넣을 때도 있었다. 전염병이나 기근에 쫓긴 사람들이 떼를 지어 그 문들을 통과하기도 했다. 또한 인간의 약함이나 질병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으로 나아온다. 그들은 언제나, 언제나 그곳을 통과하고 있다.
죽음의 문을 지나는 이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또 계속된다. 사랑하는 여러분과 내가 여기 앉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그 기둥 사이를 지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그 문에 가까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도 분명 그 길 위에 있다. 모든 순간에 사람들은 결코 닫히지 않는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삼켜지고 있다.
잠시 멈추어 그 그늘 속에서 오는 이들을 구별해 보라. 지팡이에 몸을 기댄 노인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말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들도 노인의 곁을 지나간다. 갑자기 목숨을 잃는 강한 남자가 보인다. 오랫동안 죽음을 기다려 온 환자도 보인다. 그가 무덤으로 내려갈 때 여러분은 그의 뼈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앙상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저기 있는 남자가 보이는가?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는 그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한때 왕이었다. 지금도 그에게는 약간의 왕족다운 면모가 남아 있다. 다른 남자가 보이는가? 그는 한때 거지였다.
그는 이제 군주보다 조금도 더 거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 중 누구도 아무런 비축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빈털터리로 이곳에 오며 빈손으로 통과한다. 칭호, 장엄함, 재산, 지위, 명성 같은 모든 것이 뒤에 남겨진다.
그들은 죽음의 자유, 평등, 박애 속에서 거대한 군중으로 온다. 삶 속에서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공동의 형제애이다. 그들이 가는 것이 보이는가? 이 일반적인 평준화에 비추어 볼 때 여러분은 이 세상의 차별에 거의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덤을 넘어서 살아남을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추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밤 여러분은 많은 이가 생각 속에서 그 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았다. 기적으로 회복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음을 기억해 달라.
그 길을 통해 그들은 가지만, 뒤로 향하는 발걸음은 없다. 그들은 영원히 떠났다. 일단 숨이 몸을 떠나면 영혼은 예전의 근거지를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들이 옛 친숙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들은 떠났다. 그들은 돌아올 수 없다. 울며 그들이 다시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이다. 눈물의 홍수도 그들을 회복시킬 수 없다. 찍힌 나무라면 물 기운에 싹이 나겠지만, 우는 눈에서 나오는 소중한 물의 강도 이 죽은 자들을 다시 살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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