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476963
• 전자책 ISBN: 9791124476963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때때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왜 당신은 속죄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말하는가? 하나님이 넉넉하게 죄를 그냥 용서하시면 안 되는가? 왜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는가? 왜 큰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불쌍한 죄인이여, 여러분이 죄를 바르게 깨달았다면 결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여러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죄 안에서 여러분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추함을 보신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너무도 끔찍한 가증함이다. 죄는 너무도 중대한 악이며, 너무도 혐오스럽고 더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죄를 그대로 넘기셨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의심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대속의 희생 없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다면, 스랍들(Seraphim)은 그들의 노래를 멈추었을 것이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사 6:3). 죄를 보고도 눈감아 주는 재판관은 죄를 돕는 자이다. 최고의 통치자가 죄를 벌하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모든 죄악의 후원자가 된다. 그러면 죄는 그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안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죄인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천사들도 알기 원하시고, 마귀들도 알기 원하신다. 어떤 피조물이 죄를 가볍게 여기고 어리석은 사람이 죄를 장난처럼 다룬다 해도, 하나님은 죄가 얼마나 악한지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출 34:7).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주의 피로 가장 큰 죄인까지 완전한 용서를 선포하는 설교는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때가 그렇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생명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든 영혼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상처 입은 양심 위에 반창고를 붙여 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치유된 양심은 다시 죄를 짓도록 돕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이 말이 얼마나 사실과 다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단 하나의 죄도 대가 없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고 우리는 죄인에게 말한다. 또한 아담의 후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주께서 대신 겪으신 엄청난 고통이 없었다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율법의 모든 선포와 심판의 모든 경고가 아무리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해도, 죄의 악함을 이 한 가지 진리만큼 분명하게 보여 주지는 못했다고 믿는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6). 이것이 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정죄이다. 곧 구주의 죽음이다. 하나님이 죄를 자신의 독생자 위에 두시고 심판하실 때보다 더 찬란한 거룩함을 나타내실 때는 없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서 죄를 옮겨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다. 그러나 그 죄가 전가된 분이 존귀하다는 이유로 죄를 그냥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힘과 진노로 죄를 치시고 짓누르셨다. 마침내 고난받는 희생자가 이렇게 외칠 때까지 그렇게 하셨다. “보라 나의 고통 같은 고통이 있는가.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의 날에 나를 괴롭게 하셨도다”(애 1:12).”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17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17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7. 27.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476-96-3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he Gospel in The Book of Psalms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17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뒤섞인 가락(A Mingled Strain)
뒤섞인 가락(A Mingled Strain)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편 51:7
성찬 식탁에 나아올 때 우리는 어떤 마음 상태를 가져야 하는가? 이것은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 앞인 거룩한 예식에 어떤 태도로 나아가야 하는가? 성찬 자체의 성격은 우리에게 여러 감정이 함께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쓴맛과 단맛, 기쁨과 슬픔이 이곳에 함께 섞여 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드리신 희생은 슬픔의 주제인가, 아니면 기쁨의 주제인가?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죄 때문에 애통하지 않을 수 있는가? 또 피로 값 주고 사신 용서를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성찬 식탁에 나아올 때 가장 적합한 마음은 바로 이것이다. 곧 우리 죄를 슬퍼하면서도 위대한 구원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이 거룩한 예식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그것은 생명의 잔치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여기에 잔이 있다. 그 잔에는 포도주가 담겨 있다. 이것은 분명 기쁨을 나타낸다. 그러나 잘 들으라. 그 포도주는 피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분명 슬픔을 나타낸다.
내 손에는 떡이 있다. 먹기 위한 떡이며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하는 떡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사함으로 그 떡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떡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신 몸을 나타내기 위해 찢긴 떡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고난 때문에 슬퍼해야 한다.
유월절 식사에서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은 특별한 달콤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명령하셨다.
“쓴 나물과 아울러 그것을 먹을 것이니라”
이 식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기쁨으로 기념한다. 그러나 용서받았을지라도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죄를 떠올리며 깊은 슬픔 가운데 회개한다. 그 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쓰디쓴 회개를 하게 된다.
오늘 본문은 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 드린 고백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 그 죄를 완전히 없애실 수 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한 구절 안에는 두 줄기의 의미가 함께 흐르고 있다. 여기에는 깊은 슬픔이 있고, 그보다 더 깊은 소망의 기쁨이 있다. 마치 “깊은 바다가 깊은 바다를 부르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의 표현이 이 거룩한 절기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을 잘 인도해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본문을 세 가지 관찰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1. 죄인의 언어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언어가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시기에는 그것이 거의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는 마치 그 언어 안에 갇힌 것처럼 느끼며, 그것이 자기 입술에 안 울린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매우 어울리는 말이다. 아마 모든 사람은 이 시편에서 다윗이 사용한 언어가 그의 상태에 매우 적절했다고 동의할 것이다.
그가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기도했을 때, 그는 마땅한 기도를 드린 것이다. 누구도 이 간구를 두고 다윗에게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완전히 장담할 수 없다. 오늘날 성경을 다루는 방식은 이 부분을 고치고 저 부분을 수정하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은 유대인에게 주고, 어떤 부분은 이방인에게 주고, 또 어떤 부분은 교회에 주면서 성경을 조각내어 나눈다. 그리고는 옛 하나님의 종들이 때때로 큰 실수를 했다고 주장한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더 영적이며 구약과 신약의 영감받은 성도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도 다윗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일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이 시편은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그리고 이 시편 언어가 잘못되었다거나 다윗이 지나친 감정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맞지 않는 말을 했다는 암시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누구도 다윗이 하나님의 자녀였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가 자신을 더럽혔던 때에도 여전히 위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사랑받는 자였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 확신, 혹은, 아니, 내가 전적으로 확신하는 것은 다윗이 본 시편 51편의 언어로 기도한 것이 분명 옳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 51:1, 2).
그런데 바로 이것이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영혼이 드릴 수 있는 기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세리가 드린 기도인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를 더욱 풍성하게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죄인에게 매우 적합한 이 언어가 단지 신자일 뿐 아니라 성숙한 신자요, 경험 많은 신자요, 더욱이 영감받은 신자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에서 사용되었다고 해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윗에게 많은 허물이 있었지만 그는 우리가 다시 보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렇다. 가장 높은 수준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가장 낮은 죄인의 언어가 자신의 상태에 꼭 맞았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 어떤 사상(구원파-역자주)은 하나님의 자녀는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죄 용서를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미 용서받았으니 이런 종류의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죄인들에게만 적합한 표현이며, 성도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가? 다윗이 어떤 죄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 죄인처럼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 옳았다면, 나는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가? 어떤 특정한 죄만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가?
어떤 사람은 간음이나 다른 중대한 죄에 빠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이런 방식으로 기도해야 할 만큼 죄의 기준선이 따로 있는가? 그 기준보다 가벼운 죄는 너무 사소해서 특별히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가? 죄인처럼 기도할 필요도 없는가? 대부분의 죄에 대해서는 이미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우 담대하게 말해도 되는가? 잘못을 저지른 일이 다소 유감스러울 수는 있어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여겨도 되는가?
나는 누구도 그런 선을 그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설령 누군가 그 선을 긋는다 해도, 나는 그 선을 지워 버릴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런 선을 그을 권리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죄에는 이런 방식으로 기도하고, 그보다 가벼운 죄에는 다른 방식으로 기도하라는 암시는 전혀 없다.
나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이 언어가 다윗의 입에 분명 적절했다면, 더 이상 적절하지 않게 되는 지점을 아무도 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내가 선택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좋은 길은 이것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비록 다윗처럼 깊이 타락하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좋다.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가장 겸손한 간구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더욱 굳게 붙드는 것이 좋다. 자신에게 가장 큰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 하늘의 은혜 보좌 앞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서서 이렇게 부르짖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1)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은 용서받은 존재가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아닌가? 물론 그렇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롬 8:33)
이 말씀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의미에서 참된 말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인의 부르짖음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도 여전히 부르짖는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고 더 간절하게 부르짖는다. 그들에게도 죄를 고백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 고백은 다른 사람들의 고백보다 더욱 깊고 더욱 절실하다. 우리가 아무리 큰 확신을 지니고 있다 해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하나님, 나는 이미 용서받았으므로 고백할 죄가 없습니다. 더 이상 죄인처럼 주께 나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제자들의 입에 이런 말씀을 두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9, 12).
나는 주기도문이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늘 문턱에 서는 날에도 이 기도를 드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설령 내가 가장 높은 수준의 성화에 이른다 해도, 결코 구주께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주여, 이제 저는 주님의 기도를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이 말씀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주님의 기도보다 더 높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그런 생각은 내게 거의 신성모독처럼 들린다. 나는 결코 구주께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주여, 이제는 주의 보혈이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나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말씀을 들으라.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요일 1:7).
그러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가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 행할 때에도 여전히 그 보혈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자녀는 가장 거룩한 상태에 이르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죄를 자복하며 용서를 구하는 겸손한 기도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다윗이 사용했던 바로 그 언어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죄인에게만 적합한 것이 아니라 성도에게도 똑같이 적합하다. 우리는 하늘에 이를 때까지 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의 마음이 더 이상 이런 언어를 정직하게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믿음의 성장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음으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교만으로 부풀어 오른 것일 수 있다. 우리가 땅에 엎드려 구주의 발에 입 맞추지 않고, 눈물로 그 발을 씻지 않을 때도 우리는 그것이 은혜 안에서 자라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훨씬 더 가능성 높은 설명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높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거룩해질수록 더욱 겸손해진다. 참으로 성화될수록 자신의 죄 때문에 더욱 깊이 탄식한다. 그 죄가 무엇이든 그는 이렇게 외친다.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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