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 혜택: 결제 완료 즉시 마이페이지 및 주문 완료 페이지에서 영구 보관 & 다운로드 가능
때때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왜 당신은 속죄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말하는가? 하나님이 넉넉하게 죄를 그냥 용서하시면 안 되는가? 왜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는가? 왜 큰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불쌍한 죄인이여, 여러분이 죄를 바르게 깨달았다면 결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여러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죄 안에서 여러분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추함을 보신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너무도 끔찍한 가증함이다. 죄는 너무도 중대한 악이며, 너무도 혐오스럽고 더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죄를 그대로 넘기셨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의심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대속의 희생 없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다면, 스랍들(Seraphim)은 그들의 노래를 멈추었을 것이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사 6:3). 죄를 보고도 눈감아 주는 재판관은 죄를 돕는 자이다. 최고의 통치자가 죄를 벌하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모든 죄악의 후원자가 된다. 그러면 죄는 그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안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죄인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천사들도 알기 원하시고, 마귀들도 알기 원하신다. 어떤 피조물이 죄를 가볍게 여기고 어리석은 사람이 죄를 장난처럼 다룬다 해도, 하나님은 죄가 얼마나 악한지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출 34:7).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주의 피로 가장 큰 죄인까지 완전한 용서를 선포하는 설교는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때가 그렇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생명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든 영혼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상처 입은 양심 위에 반창고를 붙여 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치유된 양심은 다시 죄를 짓도록 돕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이 말이 얼마나 사실과 다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단 하나의 죄도 대가 없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고 우리는 죄인에게 말한다. 또한 아담의 후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주께서 대신 겪으신 엄청난 고통이 없었다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율법의 모든 선포와 심판의 모든 경고가 아무리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해도, 죄의 악함을 이 한 가지 진리만큼 분명하게 보여 주지는 못했다고 믿는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6). 이것이 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정죄이다. 곧 구주의 죽음이다. 하나님이 죄를 자신의 독생자 위에 두시고 심판하실 때보다 더 찬란한 거룩함을 나타내실 때는 없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서 죄를 옮겨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다. 그러나 그 죄가 전가된 분이 존귀하다는 이유로 죄를 그냥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힘과 진노로 죄를 치시고 짓누르셨다. 마침내 고난받는 희생자가 이렇게 외칠 때까지 그렇게 하셨다. “보라 나의 고통 같은 고통이 있는가.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의 날에 나를 괴롭게 하셨도다”(애 1:12).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때때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왜 당신은 속죄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말하는가? 하나님이 넉넉하게 죄를 그냥 용서하시면 안 되는가? 왜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는가? 왜 큰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불쌍한 죄인이여, 여러분이 죄를 바르게 깨달았다면 결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여러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죄 안에서 여러분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추함을 보신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너무도 끔찍한 가증함이다. 죄는 너무도 중대한 악이며, 너무도 혐오스럽고 더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죄를 그대로 넘기셨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의심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대속의 희생 없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다면, 스랍들(Seraphim)은 그들의 노래를 멈추었을 것이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사 6:3). 죄를 보고도 눈감아 주는 재판관은 죄를 돕는 자이다. 최고의 통치자가 죄를 벌하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모든 죄악의 후원자가 된다. 그러면 죄는 그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안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죄인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천사들도 알기 원하시고, 마귀들도 알기 원하신다. 어떤 피조물이 죄를 가볍게 여기고 어리석은 사람이 죄를 장난처럼 다룬다 해도, 하나님은 죄가 얼마나 악한지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출 34:7).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주의 피로 가장 큰 죄인까지 완전한 용서를 선포하는 설교는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때가 그렇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생명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든 영혼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상처 입은 양심 위에 반창고를 붙여 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치유된 양심은 다시 죄를 짓도록 돕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이 말이 얼마나 사실과 다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단 하나의 죄도 대가 없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고 우리는 죄인에게 말한다. 또한 아담의 후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주께서 대신 겪으신 엄청난 고통이 없었다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율법의 모든 선포와 심판의 모든 경고가 아무리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해도, 죄의 악함을 이 한 가지 진리만큼 분명하게 보여 주지는 못했다고 믿는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6). 이것이 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정죄이다. 곧 구주의 죽음이다. 하나님이 죄를 자신의 독생자 위에 두시고 심판하실 때보다 더 찬란한 거룩함을 나타내실 때는 없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서 죄를 옮겨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다. 그러나 그 죄가 전가된 분이 존귀하다는 이유로 죄를 그냥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힘과 진노로 죄를 치시고 짓누르셨다. 마침내 고난받는 희생자가 이렇게 외칠 때까지 그렇게 하셨다. “보라 나의 고통 같은 고통이 있는가.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의 날에 나를 괴롭게 하셨도다”(애 1:12).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검은지 알고 싶다면 이 사실을 생각해 보라. 온 우주의 모든 피조물이 모인다 해도 여러분의 죄 하나조차 없앨 수 없다. 하늘의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을 드린다 해도, 여러분의 죄 하나를 제거할 수 없다. 만일 위대한 천사장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곁을 떠나 깊은 고통의 구렁에 던져진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죄 하나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것과 비교하면 한 방울의 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죄는 너무나 엄청난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도 죄를 제거할 수 없다. 또한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해도, 그들의 모든 찬양 속에는 한 죄인의 단 한 가지 범죄를 지울 만한 공로조차 없다. 아니,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겠다. 여러분의 눈물과 모든 피조물의 눈물이 결코 마르지 않고 흐른다 해도, 그 눈물로는 죄를 씻어 낼 수 없다. 그 수많은 눈물방울은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영원토록 흐른다 하여도 죄를 속하기에는 결코 부족하다.” 아니,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겠다. 지옥에 있는 정죄받은 자들의 고통조차 죄를 위한 속죄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죄의 결과로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으로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겪은 모든 고통도 앞으로 받아야 할 형벌을 조금도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만 번의 만 년이 그 저주받은 머리 위로 흘러간다 해도, 그들은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데서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죄는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비록 도벳(Tophet)에 “불과 많은 나무가 쌓여 있고”,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시내같이 그것을 사르신다”(사 30:33) 하여도, 그 불이 죄를 태워 없앨 수는 없다. 죄는 그 불 속에 던져지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게헨나(Gehenna)의 모든 불길도 단 하나의 죄를 태워 없앤 적이 없다. 앞으로도 결코 그럴 수 없다.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라. 땅도 하늘도 지옥도 한 영혼에게서 단 하나의 죄조차 제거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도 사람이 되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실 수 없었다.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대속자는 반드시 범죄한 사람과 같은 본성을 지니셔야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사람이 되셔야 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람이 고난을 받아야 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모든 사람이 살아나려면 다른 아담 안에서 살아나야 했다. 사람들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넘어졌으므로, 또한 다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설 수 없었다. 그러나 신성을 지니신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도 죽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죄를 제거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성경 어디에서도 그분의 생애 자체가 죄를 없애 주었다고 읽어 본 적이 없다. 구주의 생애는 그의 백성을 덮는 의의 옷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씻음을 받는 목욕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 곧 산 위에서의 모든 설교와 광야에서의 모든 금식, 영혼들을 위한 모든 수고와 해산의 고통 같은 섬김, 심지어 그의 피땀과 채찍 맞으심과 수치, 침 뱉음을 당하심까지도 그것만으로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죄 하나를 제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죄인이여, 이 사실을 생각해 보라. 여러분에게 죄가 단 하나만 있다 해도, 그 죄를 제거하기 위해 무한하신 분이 아기가 되셔야 했다. 또한 죽지 않으시는 분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입으셔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리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셔야”(빌 2:8)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죄 하나도 영혼에서 제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죄인이 “나를 씻어 주소서”라고 부르짖을 때에는 그가 눈보다 희게 씻김 받을 수 있는 정결의 샘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샘이 있다. 죄의 붉은 얼룩을 씻어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Jesus)의 붉은 피뿐이다.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게 하는가?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그리고 깊이 묵상해야 할 주제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속죄의 위대함을 이해하려고 힘쓰라. 십자가의 그늘 아래 오래 머물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배우라. “흘러내리는 구주의 보배로운 피를 바라보라. 하늘의 확신으로 알게 되리니 그분이 하나님과 여러분을 화목하게 하셨음이라.” 그리스도의 피가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흘려졌음을 느끼라. 참으로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흘려졌음을 믿으라. 주님의 다섯 상처의 신비를 배우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말라. 또한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말라(엡 3:18-19).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능력은 먼저 그분의 위대한 인격에 있다. 아무리 거룩하고 위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지 한 사람의 고난만으로 하나님이 택하신 수많은 백성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를 이루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하늘의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격이셨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다. 사시고 수고하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그분이 곧 위대한 창조주이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없이는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피에는 이런 능력이 있다. 가장 검은 죄인이라도 씻어 눈보다 희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훌륭한 사람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죄조차 속죄할 수 없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속죄할 수는 더욱 없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하셨을 때, 그분이 이루신 속죄의 가치를 제한할 수 있는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특별 구속(Particular Redemption)의 교리를 매우 굳게 붙든다. 곧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진리를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보배로운 피의 가치가 제한되어 있다는 교리는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이신 분이 드리신 속죄에는 무한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속죄의 유일한 제한은 그 목적에 있다. 그 목적은 아버지 하나님이 그분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죄 자체의 능력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 만일 인류 전체가 예수를 믿게 될 수 있다면 그분의 보배로운 피 안에는 충분한 효력이 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모든 사람을 그들이 범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씻어 낼 능력이 있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7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4-11-20 |
| 쪽수 | 266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476963 |
전자책 ISBN | 9791124476963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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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유와, 계절의 끝에서 맺히는 결실처럼 풍요로운 문장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