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표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찰스 H. 스펄전 저 · 나무와열매 번역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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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736067
• 전자책 ISBN: 9791124736067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PREFACE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저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보라. 그의 발 아래에는 악한 영들이 입을 벌리고 서 있다. 그들은 곧 한 영혼이 지옥의 먹이가 되리라는 생각에 스스로 즐거워한다. 죽음의 새가 그의 머리 위를 맴돌며 날개를 퍼덕이고, “정죄받은 죄인”이라는 글자가 그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의 이마에는 고통과 죽음의 식은 땀이 맺혀 있다.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라. 오랜 죄악의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음욕의 그을음이 검은 휘장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의 심장은 지옥의 응축물이다. 그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한 발은 이미 지옥에 걸쳐 있고, 다른 한 발은 생명에 겨우 매달려 있다. 그러나 그때, 예수의 눈빛 속에 능력이 있다. 강도가 그분을 바라보며 속삭인다.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다시 보라. 이제 그 강도는 어떤가? 여전히 식은 땀이 그의 얼굴에 있지만, 그 끔찍한 고통은 사라졌다. 그의 입술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지옥의 마귀들은 어디 있는가? 그 자리에 천상의 스랍이 날개를 펼치고, 그 영혼을 붙잡아 왕의 궁전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라. 이제는 눈처럼 희다. 그의 가슴에는 “정죄”가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Justified)라고 새겨져 있다. 생명책을 보라. 그의 이름이 거기에 새겨져 있다. 예수의 마음을 보라. 그분의 보배로운 보석들 중 하나 위에 그 강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다시 보라. 저 영광 중에 해보다 밝고 달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누구인가? 바로 그 강도이다. 이것이 예수의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 강도를 구원하신 그분은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사람이라도 동일하게 구원하실 수 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거기 임마누엘의 피로 채워진 샘이 있나니, 그 샘에 잠긴 죄인은 모든 죄악을 씻으리라. 죽어가는 강도도 그 샘을 보고 기뻐했도다. 나도 그처럼 그 샘에서 내 죄를 씻으리라.” “사랑하는 어린양이여, 그 귀한 피는 결코 그 능력을 잃지 않으리니, 구속받은 하나님의 교회가 더 이상 죄 짓지 않을 때까지, 그 피는 능력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리라.” 그의 강력한 이름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그러나 그 이름의 능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제 또 다른 장면으로 가 보자. 죽음의 침상 위에 누운 한 성도가 있다. 그의 이마에는 어두움이 없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없다. 그는 연약하지만 평안하게 미소 짓는다. 그는 신음하면서도 노래한다. 그는 가끔 한숨을 쉬지만, 훨씬 더 자주 외친다. “예수!” 그의 곁에 서 보라. “성도여,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어찌 그리 기쁨이 충만한가?”라고 묻자, 그는 조용히 속삭인다. “예수 때문이다.” “무엇이 그대의 얼굴을 이토록 평온하게 하는가?” 그는 다시 속삭인다. “예수의 이름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그에게 무엇을 물어보라.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소를 짓는다. 아내가 다가와 묻는다. “내 이름을 아시겠어요?” 그는 약하게 대답한다. “모르오.” 가장 가까운 친구가 다가와 말한다. “오랜 우정을 기억하시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겠소.” 그러나 그에게 속삭여 보라. “예수의 이름을 아십니까?” 그 순간, 그의 눈빛이 하늘의 영광으로 번쩍이고, 얼굴은 천상의 빛으로 환히 빛난다. 그의 입술은 찬양의 노래를 내뿜고, 그의 심장은 영원의 환희로 터질 듯 뛴다. 그는 예수의 이름을 듣는다. “그 이름은 영원히 있으리로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가 한 강도를 천국에 인도하셨듯, 나 또한 그곳에 데려가시리라. 오, 죽음이여, 오라. 내가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리라. 무덤아, 이것이 나의 영광이니라. 예수의 이름이로다! 지옥의 개여, 너의 멸망이 여기에 있도다. 사망의 쏘는 것은 제거되었으니,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 있다!”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시 72:17).”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22)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TABLE OF CONTENTS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제 1장 ➔
내지 한글표지 제 2장 ➔
판권 제 3장 ➔
내지 영문 표지 제 4장 ➔
저자 소개 제 5장 ➔
I 위대한 왕께 드리는 경배(Homage Offered to the Great King) 제 6장 ➔
CHAPTER 1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정본 본문 전문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CHAPTER 2

내지 한글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CHAPTER 3

판권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8. 17.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736-06-7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CHAPTER 4

내지 영문 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정본 본문 전문

The Gospel in The Book of Psalms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22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CHAPTER 5

저자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CHAPTER 6

I 위대한 왕께 드리는 경배(Homage Offered to the Great King)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2』 정본 본문 전문

I

위대한 왕께 드리는 경배(Homage Offered to the Great King)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편 72:15

나는 이 예언의 궁극적인 성취가 마지막 날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가리킨다고 믿는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이 땅에 나타나실 것이다. 그때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광야에 사는 자는 그의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으리로다”라는 말씀도 이루어질 것이다(시 72:8~9).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 몸으로 오시는 것인지, 아니면 성령 하나님을 통해 오시는 것인지는 오랫동안 큰 논쟁거리였다. 성경의 많은 구절은 그분이 실제 몸으로 직접 오실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어떤 방식이든 나는 그리스도께서 한때 싸우셨던 그 땅에 다시 오셔서, 그곳을 앞으로 승리를 나타내실 무대로 삼으실 것을 기대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

나는 이런 생각만으로도 매우 기쁘다. 전에 이 땅에서 가시관을 쓰셨던 그 머리가 이제는 이 땅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예루살렘의 거친 돌길을 걸으시며 피곤하셨던 그 발이 다시 “감람산” 위에 서실 것이며, “판결 골짜기”에서 “여호와의 날”을 시작하실 것이다(슥 14:4; 욜 3:14). 그리고 조롱받으며 자주색 옷을 입으셨던 그 어깨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의 옷을 눈에 보이게 입으실 것이다. 그때 “여호와께서 온 땅의 왕이 되시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슥 14:9).

나는 이런 확신을 본문의 말씀에서도 어느 정도 얻는다. 본문은 “그가 살 것이며”(KJV에서는 한글개역개정역의 경배의 개체들인 “그들”이 아닌 경배의 주체인 주님을 제시함-역자주)라고 말한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을 찾아오시는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이시든 사람이시든 그분에 대해 이런 예언을 굳이 기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당연히 영원히 살아 계신다.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히 찬송받으실 하나님만이 본래부터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분이시므로, 하나님의 본성은 결코 끝날 수 없다.

또한 사람으로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살아 계신다. 의인들이 부활하면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예수님처럼 하늘에 올라간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처럼 영원히 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의 인성이나 신성을 생각해 보아도 “그가 살 것이며”라고 특별히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첫 번째 오심에 대한 예언과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곧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으로 살아 계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 실제로 살아가실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람으로 이 땅에 거하시며 사시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든, 우리는 이 말씀이 오늘 밤 여러분의 귀에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이 말씀은 기록된 이후 지금까지도 일정한 방식으로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곧 그리스도 예수께는 “스바의 금”이 드려지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그분을 위해 기도하며, 그분께는 끊임없이 찬양이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는 영원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그리스도께 드려질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재물의 예물이며, 곧 스바의 금이다. 둘째는 기도의 예물이다. 셋째는 찬양의 예물이다.

1. 스바의 금, 곧 재물의 예물

이제 첫 번째 주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에서 나는 그리스도 교회의 재정 문제에 대해 몇 가지 말하려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어느 누구도 내가 우리 교회나 회중, 또는 나 자신이나 이 예배당과 관련된 어떤 기관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 대해 불평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온 기독교 세계에 알려도 좋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금과 봉헌에 있어서 우리 성도들은 하늘 아래 어느 교회에도 뒤지지 않는다. 나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필요한 재정이 즉시 마련된다. 언제나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드려진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하는 말은 그들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높이려는 말이다.

성경은 “그에게 스바의 금을 드리리이다”라고 말씀한다. 나는 이 진리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늘 새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시다. 또한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값으로 사신 존재이다. 우리의 재산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모두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의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우리 권리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그분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갑도, 땅도, 집도, 그 밖의 어떤 소유도 내 것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우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의 언약 안에 있는 복을 보여 주시는 순간부터 우리는 자신을 그분의 종으로, 또한 그분의 자녀로 여겨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성도들이 깊이 생각한다면 어떠하겠는가? 특히 복음 사역자를 돕는 일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넉넉한 헌신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한 사람의 대사를 보내실 때마다, 그 대사를 받는 사람들은 마땅히 존경과 예우를 갖추어 맞이해야 한다.

하나님은 친히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신 25:4). 그런데 우리 교단뿐 아니라 많은 다른 교단의 수치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종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평일에도,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수고하면서도, 하루 품꾼의 가족을 겨우 먹여 살릴 정도의 너무 적은 생활비만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탁상담화』(Table Talk)를 읽다가 그의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나 역시 비슷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세상이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악하게 나를 대한다면, 나는 세상을 산산조각 내 버릴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거의 같은 마음이 들었다. 만일 내가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면 하늘에서 대사들을 보내고, 그들이 지금처럼 대우받는 모습을 본다면, 나는 즉시 그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희가 나의 보냄 받은 종들을 이렇게 멸시하는 것이냐? 그들에게 아무런 존경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냐? 너희 조상들이 늘 그랬듯이 지금도 그들을 모욕하려는 것이냐?”

그렇다. 나는 그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그들의 사명을 거두어들이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대사를 보내지 않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사들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또한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종들은 필요한 것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한다. 언제나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다. 그리고 그분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그분께는 언제나 스바의 금이 드려진다.”

나에게 매우 두려운 생각이 하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씀한다(롬 13:8). 그런데도 교회가 잉글랜드의 어떤 단체보다 더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빚을 다 합해도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빚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빚 가운데 많은 것은 종교적인 일을 위해 생긴 빚이다.

나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원칙을 굳게 지킬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재정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재정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원칙이다. 우리는 이 원칙을 분명하고도 꾸준히 지켜야 한다.

그러면 왜 교회가 빚을 져야 하는가? 왜 해외에 선교사를 보낼 재정이 없는가? 이유는 이것이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전하는 설교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인의 헌신도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으시는 곳에는 자원하는 마음과 넉넉한 헌신이 반드시 나타난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성도들이 충분히 드리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이 성도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히 선포하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분의 이름을 높이지 않았다. 그분의 교리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중심에서 밀어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가 가난해지도록 두셨고, 재정이 줄어들도록 허락하셨다.

사실 그것은 교회가 받아야 할 결과이기도 하다. 교회가 자기 남편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가난해지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님을 높이지 않는다면 풍성한 재정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높이는 백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복음이 조금도 감추어지지 않고 온전히 선포되는 곳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물론 하나님이 그들의 유익을 위해 시험하실 때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강단에서 순수한 복음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고, 청교도들의 오래된 귀한 교리가 다시 선포되며, 거짓되고 꾸며 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전히 전해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필요한 재정을 공급하실 것임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백성의 마음을 여셔서 그들이 기쁨으로 헌금을 드리게 하실 것이다.

은도 하나님의 것이고 금도 하나님의 것이다. 천 마리도 아니요 천 산의 가축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시 50:10). 그러므로 교회가 가난하게 된 책임은 교회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이 교회에게 다시 가나안의 언어를 회복시켜 주시고,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으시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달콤하고 은혜로운 복음을 듣게 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런 복음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는가?”

미지근한 설교자는 미지근한 신자를 만들어 낸다. 미지근한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도 미지근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반드시 개혁이 필요하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속되는 참된 개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교 세계의 이 재정적 파산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결국 교회가 어떤 모습이 될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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