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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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6』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736142
• 전자책 ISBN: 9791124736142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우리는 햇빛에 너무 익숙하듯이 하나님의 자비에도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 자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자비는 밤이 될 때까지 우리를 따른다. 우리는 침대에 익숙하듯 그 자비에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침대보다도 하나님의 자비를 더 적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하루의 모든 순간과 평생 동안 하나님의 섭리의 자비를 받고 살아간다. 그 수를 셀 수 없다. 바닷가의 모래보다도 많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 영적인 자비, 곧 위의 샘에서 흘러오는 복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여러분이 그것들을 기억하도록 돕기 위해 시편 103편 처음에 나오는 목록을 따라 살펴보겠다. 첫째, 그 말씀을 읽어 보라.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시 103:3). 이 말씀에 해당하는 우리 모두는 자신이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한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알기 위해 무엇인들 내놓지 않았겠는가? 그 당시 우리 죄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처럼 우리를 짓눌렀다. 양심의 가책은 우리를 쉬지 못하게 했고, 지옥의 두려움은 우리를 사로잡았다. 내가 죄를 깨닫고 괴로워하던 때에는 "나는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내 눈도, 내 손도, 내 모든 것도 기꺼이 내놓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운데 이 은혜를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정말 죄 사함을 받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죄 사함은 너무나 큰 자비이기 때문이다. 이 은혜가 마음에서 불러일으키는 찬양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 둘째로, 시편 기자가 말한 자비는 이것이다.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 103:3).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이 일에서 행하신 일을 다시 생각해 보라. 한때는 교만이 불타는 열병처럼 여러분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단순한 구원의 방법에 복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무서운 병은 고침을 받았다. 여러분은 겸손히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고 있다. 어쩌면 여러분은 한때 옛날 귀신 들린 사람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도덕이라는 사슬도 여러분을 묶을 수 없었고, 사람의 법도 여러분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상하게 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은 너무나 완전하게 고침을 받았다. 상처가 있었던 자리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깨끗이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이 수많은 병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 은혜를 얻기 위해 무엇인들 내놓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너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출 15:26)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결코 멈추지 말라. 셋째 자비 또한 감사의 찬양을 요구한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시 103:4). 여러분은 멸망의 구덩이로 내려가는 길에서 구원을 받았다. 여러분을 위한 대속의 값은 이미 지불되었다. 여러분은 은이나 금으로 속량된 것이 아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 이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 조금도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여러분의 죄 때문에 마땅히 쏟아졌어야 할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는 여러분의 보증인과 대속자가 되신 사랑하는 아들 위에 모두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마귀도 여러분에게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한 푼까지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을 위해 이처럼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한때 여러분의 무릎이 오래 기도하느라 아팠고, 하나님께 부르짖느라 목이 쉬었던 때를 생각해 보라. 그때는 자신이 속량받은 영혼이라는 희미한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으려 하지 않았는가? 구속받았다는 확신만 얻을 수 있다면 햇빛도, 삶의 모든 위안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기쁨도 기꺼이 바꾸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귀한 은혜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인자하심을 결코 잊지 말고 찬양하라. 넷째 시편 말씀은 이러하다. "인자와 긍휼로 네게 관을 씌우시며"(시 103:4).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옥에서 구원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여러분을 자신의 가족으로 입양하시고, 만왕의 왕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여러분의 머리에 왕의 관을 씌워 주셨다. 그 관은 곧 "인자와 긍휼"의 관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비길 데 없는 인자하심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신 참으로 크신 긍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같은 인자하심과 긍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지난날의 삶 속에서 오래전 예언의 말씀이 자신의 경험 가운데 아름답게 이루어진 때가 있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사 55: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전에 베푸신 인자하심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워 주신다는 사실을 기뻐한다. 다섯째 말씀도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있다. 우리는 완전히 만족한다. 우리는 더 좋은 구주를 원하지 않는다. 더 좋은 소망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좋은 성경도 원하지 않는다. 더 좋은 약속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큰 믿음을 원한다. 그러나 믿음의 더 좋은 기초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커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 사랑할 더 좋은 대상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더욱 깊이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 깊이 들어가려는 곳은 오직 예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바다뿐이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26)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6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6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8. 17.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736-14-2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he Gospel in The Book of Psalms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26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전능하신 팔(2)(The Mighty Arm 2)
전능하신 팔(2)(The Mighty Arm 2)
“주의 팔은 능력이 크시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셨나이다.” 시편 89:13
영혼이 하나님과 온전히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면, 하나님의 모든 속성도 기뻐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마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만 거의 전적으로 묵상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더욱 엄격하게 보이는 속성에서도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능력을 즐거워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지식이 자라 간다는 표지는 하나님의 여러 속성을 구별하여 이해하고, 각각의 속성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기 시작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여러 속성을 분별하고 그 하나하나 때문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깊이 묵상하며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위대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성품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너무나 기뻐한 나머지 각각의 속성을 하나씩 생각하며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며 높이게 되는 것이다.
유대 율법 아래에는 매우 단순한 제사 방식도 있었다.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드리는 제사는 단순히 둘로 찢어 제단 위에서 불태웠다. 그러나 양이나 소를 제물로 드릴 때는 훨씬 더 자세한 규례를 따라야 했다. 머리와 기름과 내장과 다리 등을 각각 알맞게 나누어 제자리에 놓아야 했다.
이것은 어떤 성도들은 속죄 제사를 전체적으로만, 그리고 비교적 피상적으로 이해하지만, 더 깊이 배우고 자란 성도들은 하나님의 신비를 더욱 깊이 살피고 하나님의 위대한 진리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깨닫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복된 일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순결한 빛에서 나오는 다양한 광선까지도 알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의 면류관에 있는 수많은 영광을 바라보고,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나타난 각각의 탁월하심을 기뻐하기를 바란다.
오늘 아침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능력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주제는 우리의 생각을 매우 넓게 펼쳐 준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모든 다른 속성과 연결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사역의 원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지하시고 나타내시는 기초요 역사하시는 힘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창조 속에서 얼마나 분명하게 나타나는가.
“주께는 능한 팔이 있으시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지나쳐 버린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해가 되고 창조주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일이다. 또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권면을 잊는 것은 우리의 완고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시편 기자는 시편 89편 11-12절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세우셨나이다. 북방과 남방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시 89:11-12).
다윗은 계시와 자연을 서로 나누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주야로 묵상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도 크게 기뻐하였다. 시편 104편에서 그는 바위와 시냇물과 새와 나무들 속에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작품을 기뻐하실 것을 함께 기뻐하였다. 시편 8편에서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외쳤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1).
같은 마음으로 오늘 아침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어린이 찬송을 불렀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네.
산들을 세우시고
넓은 바다를 펼치시며
높은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을 노래하네.”
하나님은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 창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게 하셨다. 실제로 하나님은 바로 그 한 가지 속성, 곧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욥의 친구들을 잠잠하게 하셨다. 그리고 욥 자신도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였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내가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욥 40:4).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준 이 사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영적인 것만 추구한 나머지 강과 산과 바다와 폭풍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보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마치 거울을 통해 보듯이 그 안에서 하나님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은 다 연구하는도다”(시 111:2).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적인 설교를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역사적인 기록보다 영적인 부분을 읽는 것을 더 즐거워합니다. 또한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매우 훌륭한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선호에는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 가령 여러분에게 뛰어난 예술가인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는 훌륭한 조각가이다. 신비한 끌로 대리석에 거의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이 말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늘 그 조각가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의 자녀들과 교제하기를 매우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한 번도 작업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참으로 빈약한 교제이다.
여러분이 그 친구와 온전히 마음이 하나 된다면, 그 친구가 관심을 두는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그의 뛰어난 구상과 탁월한 솜씨가 만들어 낸 작품들을 보며 기뻐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친구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작품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의 손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볼수록, 여러분은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능하신 손을 이 눈에 보이는 우주 가운데 나타내기를 기뻐하셨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합당하지 않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다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시 145:10).
하나님의 능력은 섭리 가운데서도 볼 수 있다. 곧 모든 평범한 사건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의 손에서 볼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시편 89편 9절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시 89:9).
하나님의 능력은 자연의 크고 놀라운 현상 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일상의 아주 작은 일 속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시든 잎 하나가 떨어지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손이 인도하신다. 풀 한 포기마다 맺힌 이슬방울 하나하나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장식하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길은 회오리바람 가운데 있다. 구름은 하나님의 발의 티끌이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인류 역사의 모든 사건 속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왕궁과 군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제국의 흥망성쇠와 나라들의 성장과 멸망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 하나님이 애굽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죽임당한 자같이 만드신 일을 보라. 하나님이 자신의 강한 팔로 원수들을 흩으신 일을 보라.
하나님이 큰 왕들을 치시고 이름난 왕들을 죽이셨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그 크신 능력을 찬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기 백성에게 영원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스스로의 뜻대로 흘러가거나 폭군들의 손에 맡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모든 의로운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어야 한다. 결국 참된 능력은 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자가 계신다. 모든 권능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여러분은 오만과 잔인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에게 더 큰 힘이 주어지기를 바란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온 세상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라.
하나님은 반드시 옳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또한 그렇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피 흘린 죄를 갚지 않은 채 그냥 두지 않으신다. 무자비한 잔혹함과 끔찍한 폭력도 벌하지 않고 지나가지 않으신다. 세상의 권세 있는 자들이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 있다. 또 악한 정책을 눈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시는 눈이 계신다. 또한 엄하고도 확실하게 보응하시는 손도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인내로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라.
“하나님이 뭇 나라를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시 47:8).
가난한 자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압제받는 자도 끝없이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의로운 일을 변호하실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마지막 심판에서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 주제는 너무도 엄숙하기 때문에 길게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두렵고 장엄하신 위엄 앞에서 우리를 티끌 가운데 엎드리게 하는 주제이다.
여호와의 면류관에는 지옥에서 가장 두렵게 드러날 두 개의 불타는 보석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2).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와 전능하심은 마지막 크고 두려운 심판에서 함께 영화롭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갈라 세우실 것이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마땅한 보응을 내리실 것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시 90:11).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나 크겠는가. 하나님이 분노를 일으키실 때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쇠 지팡이로 나라들을 깨뜨리신다. 토기장이의 질그릇처럼 산산이 부수실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시 50:22).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누가 이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자비의 날이 끝나는 그날을 누가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오직 공의만이 불타는 보좌에 앉는 그날을 누가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오늘 아침 우리의 본론이 아니다. 물론 이것들을 말하지 않았다면 이 주제를 온전히 다루었다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하나님의 자비와 함께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래서 에단(Ethan)은 이 장엄한 언약의 시편을 이렇게 시작한다.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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