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7』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7』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736166
• 전자책 ISBN: 9791124736166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하나님의 자녀들이 특별한 순간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대표적인 경우들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새롭게 회심한 사람이 드리는 처음의 신앙고백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는 룻이다. 룻은 나오미에게 사랑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 1:16). 이 마지막 결심은 영적인 변화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말한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우상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소망이 생긴 것이다. 사랑하는 새 신자들이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자신의 죄 된 상태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생명과 구원을 얻게 하셨다면, 여러분도 앞으로 나아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나는 주의 종이오니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주는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시다. 내 마음은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하다. 이제부터 주는 나의 가장 귀한 보화가 되시며, 나는 모든 것을 주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에 자신을 드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회의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드린다고 교회 앞에서 고백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함께 죽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이 곧 여러분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최근에 회심하였거나, 회심했다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 고백이 진실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반드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참으로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모셨는가? 하나님이 단지 하나의 이름에 불과한 분은 아닌가? 또는 찬송하고 기도할 때만 사용하는 거룩한 말에 지나지 않는가? 하나님이 참으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셨는가? 만일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영혼을 다스리시고 여러분의 온 마음을 통치하시며 여러분의 마음 전체 위에 자신의 왕권을 행사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땅한 자리를 차지하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참으로 회심한 사람이 아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불량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한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부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에 복종하며, 하나님을 자기 마음의 보좌에 모신다. 그는 하나님께 둘째 자리를 드리고 자신을 첫째 자리에 두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신격화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 되게 한다. 곧 하나님을 모든 권위와 능력에서 가장 높고 유일한 주권자로 모신다. 이것이 참된 회심을 보여 주는 확실한 표지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참으로 하나님이 되실 때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참으로 하나님이 되실 때, 이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 말이다.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하나님이 마땅히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차지하실 때, 그 영혼은 비로소 참으로 회심한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27)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7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7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8. 17.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736-16-6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he Gospel in The Book of Psalms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27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그분의 그들 아래(Under His Shadow)
그분의 그들 아래(Under His Shadow)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거하리로다.” 시편 91:1
나는 이 짧은 설교가 빌려온 것임을 먼저 고백해야 하겠다. 마치 물에 빠진 도끼를 두고 “빌린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던 사람과 같은 심정이다. 이 설교의 개요는 결코 나를 탓하지 않을 한 사람에게서 가져왔다. 교회가 지상에서 큰 손실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이제 이 땅의 낮은 성가대를 떠나 하늘에서 찬양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시인이었던 프란시스 리들리 하버갈(Miss Frances Ridley Havergal, 1836-1879)양은 그의 목소리가 가장 원숙하고 그의 언어가 가장 장엄해졌을 때 하늘의 찬양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의 마지막 시집은 「그분의 그늘 아래」(Under His Shadow)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서문에는 그 제목을 붙인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그분의 그늘 아래’이기를 바란다. 나는 그 제목에서 네 가지 그림을 본다. 지치고 메마른 광야에서 큰 바위의 그늘 아래 있는 모습이다. 또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모습이다. 그보다 더 가까이에서는 그분의 날개 그늘 아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는 그분의 손 그늘 아래 있는 모습이다. 그분의 손은 분명 못 박히신 손일 것이다. 그분의 손은 때때로 우리를 심하게 누르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감싸고 붙드시며 그늘이 되어 주신다.”
“그분의 그늘 아래”는 매우 사랑스러운 주제이다. 이제 우리는 하버걸이 우리에게 남겨 준 성경적인 계획을 따라 이 말씀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거하리로다”(시 91:1).
하나님의 그늘은 성도가 가끔 찾아가는 피난처가 아니라 항상 거하는 처소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위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집을 발견한다. 그곳은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영원한 보금자리이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그늘 밖에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잠시 찾아오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그곳에 거하는 사람에게 보호를 약속하신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거하리로다”(시 91:1).
그 그늘은 밤의 두려움과 어둠의 공포에서 그를 지켜 준다. 전쟁의 화살과 전염병에서도 보호한다. 죽음과 멸망에서도 안전하게 지켜 준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키시므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언제나 안전하다. 그들은 지성소 안, 곧 옛날 속죄의 피가 뿌려졌던 속죄소 가까이에 거한다. 밤에는 불기둥이, 낮에는 구름기둥이 언제나 성막 위를 덮고 있었다. 그 구름은 하나님의 백성도 함께 덮어 준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환난 날에 그가 그의 초막 속에 나를 숨기시며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감추시고”(시 27:5).
이보다 더 확실한 안전을 우리가 무엇으로 바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언제나 지존자의 보호 아래 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어떤 고난을 겪든지 어떠한 어려움과 시험과 환난과 혼란을 만나든지 우리는 언제나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하는 모든 사람 위에는 가장 다정한 보호가 베풀어진다.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그들과 그들의 대적 사이에 서 주신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그늘 아래 있지만 그 보호를 경험하는 모습은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살펴볼 네 가지 그림은 매우 큰 가치가 있다.
“마른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이며”(사 32:2).
나는 이것이 우리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그늘을 알게 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환난 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매우 지쳤고 태양은 너무 뜨거웠다. 우리 입술은 말랐고 우리 영혼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우리는 피할 곳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쉼을 얻지 못했다. 우리는 죄와 정죄의 광야에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었겠는가? 누가 우리에게 소망이라도 줄 수 있었겠는가?
그때 우리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전에 우리를 위하여 갈라지신 영원한 반석으로 인도하셨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의 맹렬한 열기와 우리 사이에 서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복된 보호막을 기쁨으로 맞이하였다.
주 예수는 우리에게 죄를 가려 주시는 덮개가 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피난처가 되셨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의 양심을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지만 우리의 죄가 제거되면서 그 진노도 함께 사라졌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예수께 담당되었음을 보았다. 예수는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여 죄의 모든 형벌을 친히 받으셨다.
바위 그늘은 매우 시원하다. 이와 같이 주 예수는 우리에게 참된 위로가 되셨다. 바위 그늘은 다른 어떤 그늘보다도 짙고 완전하며 시원하다. 이처럼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다. 그와 같은 평안은 어디에도 없다. 바위 그늘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일은 없다. 숲의 나뭇잎 사이처럼 열기가 조금이라도 통과하지 못한다.
예수는 완전한 피난처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그늘 아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다. 그들은 그곳에 계속 머물도록 조심해야 한다. 결코 자기 힘으로 자신을 변호하려고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또한 사탄의 고발을 스스로 감당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죄뿐 아니라 모든 슬픔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신 반석이다.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 밖에 있지 않으므로 어떤 뜨거운 햇볕도 우리를 상하게 하지 못한다. 성도들은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지를 잘 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특권을 실제로 사용한다.
“고난이 뜨거운 태양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강하게 내리쬘 때
그들은 능하신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달려가
그곳에서 기쁘고 시원한 그늘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큰 바위의 그늘에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있다. 바위는 너무 높고 웅장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존재가 거대한 존재 뒤에 숨어 있다는 생각은 잘 드러나지만 그 안에는 친밀한 교제나 다정한 사랑의 느낌은 아직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도 처음에는 주 예수를 마땅한 형벌의 맹렬한 불길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피난처로만 바라본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은혜는 아직 많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네 폭의 그림 가운데 겨우 한 장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죄인이었다가 구원을 받은 내가 주 예수 안에 서 있을 때 누리는 깊고 시원한 반석의 그늘은 내 영혼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아가서에서 찾을 수 있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숲의 나무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 아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의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아 2:3).
여기서는 환난 가운데 피난처를 얻는 모습보다 기쁨의 때에 누리는 특별한 안식을 보여 준다. 신부는 기쁜 마음으로 숲을 거닐며 많은 나무를 바라보고 새들의 노랫소리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나무가 특별히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황금빛 열매를 맺은 향목(香木)은 그녀의 감탄을 자아냈고 그녀는 그 그늘 아래에 앉아 큰 기쁨을 누렸다.
그녀에게 사랑하는 이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좋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이셨다. 아름다운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신 분이셨다. 그녀의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이셨고 그녀의 즐거움 가운데 가장 밝은 빛이셨다. 믿는 영혼에게 주 예수도 바로 그러한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달콤한 은혜는 우리에게 행복한 안식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마음껏 누려야 한다.
“내가 그 그늘 아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아 2:3).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선택한 더 좋은 편이었다. 마르다는 많은 일에 분주하여 거의 그것을 놓칠 뻔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오래되고 선한 길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참된 안식을 발견한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과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종교를 의식이나 행위나 탄식이나 감정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만족스러운 결말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의 종교를 율법과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복음 안에는 이미 완성된 일이 있다. 그 완성된 일은 우리의 구원의 전부이며 핵심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참된 안식이 있다. 우리는 기쁨으로 이렇게 노래해야 한다.
“내가 그 그늘 아래에 앉았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그리스도는 여러분 각자에게 이렇게 앉아 쉴 수 있는 장소이신가? 내가 말하는 안식은 게으름이나 자기 만족의 안식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런 상태에서 건져 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것 안에 참된 안식이 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으로 만족하는 것 안에 안식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안식을 더욱 깊이 알게 하시기를 바라신다.
이 그늘은 잠시 위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위로를 베푸는 그늘이다. 신부는 그 그늘 아래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 아니다. 오래 머물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그곳에 앉았다. 우리 하나님이 완성하신 사역은 우리에게 지속되는 평안과 기쁨을 주셨다. 또한 그 그늘 아래에는 먹을 것도 있었다.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그늘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늘을 드리우는 그 나무가 열매도 함께 맺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쉬던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그대로 앉아 맛있는 열매를 먹으며 기뻐하였다. 주 예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것이다. 신부는 결코 사랑하는 이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의 그늘 아래에 앉아 사는 삶보다 더 높은 삶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백향목도 지나쳤고 참나무도 지나쳤으며 아름다운 다른 나무들도 지나쳤다. 그러나 사과나무가 그녀의 마음을 붙잡았고, 그녀는 그곳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이랴’ 하나 우리는 다르다. 오 하나님!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굳게 고정되어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집에 있는 것처럼 평안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 앉는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어린아이 같은 사랑보다 경외심만 지나치게 키운다. 그래서 무릎은 꿇지만 감히 앉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의 친구이시며 사랑하는 분이신 주 예수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의만 차리며 멀리 서 있기보다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단순한 마음을 가지자.
주저하거나 굳어 있거나 차갑게 굴지 말자.
우리의 베들레헴이
옛 시내 산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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