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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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8』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736180
• 전자책 ISBN: 9791124736180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4. 하나님이 보고 들으신다는 믿음을 굳게 붙드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큰 유익을 얻는다 이 믿음은 셀 수 없이 많은 선한 열매를 맺는다. 그 모든 것을 다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몇 가지만 생각해 보아도 충분하다. 우리가 하나님이 보고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은 바른 일을 행하도록 하는 큰 힘이 된다.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담대하게 서게 만든다. 군인은 왕이 지켜보고 있을 때 더욱 용감하게 싸운다. 우리의 주님이 바라보고 계신다면 우리가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마음은 모든 죄를 막는 강력한 제동 장치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까지 들으시는데 어떻게 악한 생각을 품고 즐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신데 내가 그 거룩한 임재 앞에서 죄를 짓겠는가. 내 영혼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가까이 계시며 슬픈 눈으로 나의 모든 죄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겠는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엄숙한 확신은 악을 막고 선을 행하도록 힘을 준다. 또한 이 믿음은 사람의 칭찬을 바라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훌륭한 치료제가 된다. 하나님이 자기 말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은 온 세상이 듣더라도 진리를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 한 분만 들으셔도 진리를 말한다. 얼마 전 한 군인이 길거리에서 설교하던 전도자에게 했던 말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느 친구가 거리에서 설교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군악대와 군인들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고 설교자는 거의 혼자 남게 되었다. 대오 밖에서 걷고 있던 한 군인이 그 설교자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을 기뻐 들으십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그리스도 찬양을 들으신다면 그보다 더 위대한 회중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이 전파되는 것을 듣고 비웃는 사람들이 이를 갈더라도 상관하지 말라. 그들이 아무리 분노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한 줄기 빛도 빼앗기지 않는다. 계속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님을 찬양하라. 사람들이 듣지 않더라도 하늘 아버지는 반드시 들으신다. 하나님이 들으시는데 사람의 박수는 필요하지 않다. 만일 여왕이 직접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 군인이 큰 용기를 보였다고 하자.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브라운 상병과 스미스 중사가 당신을 보고 칭찬했으니 자랑스러워하십시오.” 그 군인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상병이나 중사의 칭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직접 나를 보시고 ‘잘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폐하께서 친히 내게 빅토리아 훈장을 달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것은 작은 일이다. 우리는 사람의 판단에서 건강하게 자유로워져야 한다. 칭찬을 받으려고 아첨하고 비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오래도록 고귀한 삶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이 보고 들으신다는 확신은 근심을 없애는 놀라운 약이다. 내가 왜 염려해야 하겠는가. 하늘 아버지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신다. 내가 환난 가운데 있다 해도 그 사실 역시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이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을 알고 계시며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면 우리는 안전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이 의인을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염려를 뛰어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 하나님이 보고 들으신다는 믿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얼마나 깊게 하는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신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라고 노래할 때, 여러분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깊은 감격으로 가득 차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말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이 말씀은 슬픈 우리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마침내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이 죽을 몸으로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고난과 수고와 시험과 혼란을 지나간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평안을 누린다. 그 이유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다"(겔 48:35). 우리를 보고 들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고난을 받는다면 그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만 한다면 더 이상 따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기쁘게 이렇게 말한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뜻대로 하실 것이니이다"(삼상 3:18). 배의 선장이 아버지였을 때에는 어린 아들이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반드시 배를 안전한 항구까지 이끄실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용기를 내라. 우리를 보고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이 멀리 떠나 계시거나 잠들어 계시거나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신다면 우리는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과 귀가 언제나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한 시인의 오래된 시를 조금 바꾸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비록 바람과 파도가 내 배를 거세게 치더라도 하나님은 그 배를 지켜 주신다. 배가 가장 심하게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친히 키를 잡고 계신다. 폭풍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무대이다. 하나님은 자기 눈을 숨기실 수 없으며 더욱이 자기 마음은 결코 숨기지 않으신다." 이제 가서 귀를 지으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그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신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28)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출판사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 열매(TNF)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는
말씀대로 문서로 천국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8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28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8. 17.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736-18-0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The Gospel in The Book of Psalms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28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I 귀를 지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신다(The Planter of the Ear Must Hear)
귀를 지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신다(The Planter of the Ear Must Hear)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겠느냐?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겠느냐?” 시편 94:9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지를 알면, 어떤 사람인지와 그의 말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조금 더 경건하게 또는 조금 덜 경건하게 발음하는 한 단어일 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날마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행동의 동기가 되지 않는다. 또한 바라는 대상도 아니며 마음의 기쁨도 아니다.
“그들의 모든 생각에 하나님이 없다”(시 10:4).
그러므로 그들의 삶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시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처음이시며 마지막이시다. 또한 존재의 중심이시며 둘레이시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영혼이 가장 신뢰하는 분이며 가장 귀한 보배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확신의 반석이시며 기쁨이 솟아나는 샘이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반드시 거룩함을 추구한다. 또한 온전함을 목표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빛을 비추셨으므로 그들의 얼굴도 빛난다. 하나님이 그들 안에 거하시므로, 불이 켜진 등잔에서 빛이 흘러나오듯 그들의 삶에서도 빛이 드러난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삶 자체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함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이 지금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근거가 된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시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하지 아니하시리라”(시 94:7)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지켜보지도 않으시고 실제로 간섭하지도 않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시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령 하나님이 보신다 해도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전혀 관심이 없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시기 때문에 인간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여긴다. 하나님은 악인의 죄 때문에 진노하지도 않으시고, 의로운 사람의 거룩함을 기뻐하지도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이러한 실제적인 무신론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본문의 논증으로 이러한 마음 상태를 반박하려 한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겠느냐?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겠느냐?”(시 94:9).
성령 하나님이 이 말씀을 전하는 나를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회중이 살아 계시며 들으시고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되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신다는 생각은 매우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생각을 판단하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 펼쳐져 있는 시편의 흐름을 따라가 보겠다. 이처럼 하나님을 무시하며 말하는 사람들은 교만하였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땅의 재판장이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그들이 받아야 할 것을 갚으소서”(시 94:2).
하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거나 세상 일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가운데 하나라고 여긴다. 다른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자신은 여러 면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작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을 크게 여긴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겠느냐?”(출 5:2).
이렇게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왕 바로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처럼 매우 교만하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와 같은 사람들만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비교한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하다. 벌레가 자기보다 못한 다른 벌레 위에 스스로를 높이며 모든 것을 채우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식이 적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없을수록 교만은 더욱 커지기 쉽다. 교만한 말은 대개 불경한 말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생각을 동반한다. 둘은 같은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언제까지 악을 말하며 오만하게 떠들며 모든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자랑하리이까”(시 94:4).
하나님이 없거나 사람의 일에 관심을 두시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곧바로 경건한 사람들의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말을 즐겨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는다. 모든 영광을 자신이 차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의심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트집을 잡는다.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을 비난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을 악하게 말한다.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유창한 말솜씨와 하나님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어 보라.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말을 듣고 계시다는 생각만 없애 보라. 그러면 그가 어디까지 모독의 말을 쏟아 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의 혀는 지옥의 불에 붙잡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세게 타오른다. 이름난 무신론자들의 글이나 말을 읽거나 들어 본 적이 있다면, 사탄이 하나님 없는 사람들을 얼마나 완전히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없애 버리면 브레이크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면 기차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게 된다.
다윗은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닌다”(시 73:9)라고 말하였다. 무신론자의 혀가 퍼뜨리는 악에는 한계가 없다. 심지어 하늘조차 그들의 교만한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이 입을 하늘에 두며”(시 73:9).
그들은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까지도 비방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람에게서 사라지면, 사람들은 자주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기까지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탄식한다.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기업을 괴롭게 하나이다”(시 94:5).
그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도 미워한다. 대장을 공격할 수 없고 목자를 칠 수 없다면, 적어도 양 떼라도 괴롭히려 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인간의 오랜 악의를 읽어 보라. 그 이야기는 모든 나라의 역사 속에 섞여 있다. 눈물과 피로 기록된 참으로 끔찍한 역사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거룩한 군대는 행진하는 곳마다 피와 재의 흔적을 남겼다. 박해받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으로 채웠다.
사실 그 모든 고난은 원래 그리스도께 쏟아지려 했던 것이었다. 원수들이 할 수만 있었다면 모든 고통을 그분의 머리 위에 퍼부었을 것이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시고 악인의 막대기가 하나님의 기업을 치도록 내버려 두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도 독생자를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 독생자를 대하도록 내어주셨다.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채찍질하며 눈을 가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멸시할 때에도 아버지 하나님은 막지 않으셨다. 심지어 그들이 저주받은 나무에 그분을 못 박고, 그 고통을 바라보며 잔인한 기쁨을 누릴 때에도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아들을 구하려 개입하지 않으셨다. 전능하신 능력보다 더 큰 뜻이 전능 자체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구하시려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분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려면, 자신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치셨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맡기신 채 죽도록 허락하셨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잠시 제쳐 두고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교회와 자기 사역도 한동안 그렇게 다루실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부르짖을 수도 있다.
“주께서 어찌하여 진노하사 시온의 딸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애 2:1).
하나님의 진리는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하며 죽어 장사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참된 교회와 하나님의 진리도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무덤에 묻히고 돌로 막히며 파수꾼이 지키고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진리는 무덤에 묻혀도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그 진리의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자기의 진리와 함께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비방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박해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아무도 다 헤아릴 수 없다. 시편은 이렇게 말한다.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시 94:6).
하나님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면 이 세상은 어떤 곳이 되겠는가. 신앙이 없다면 이 땅은 곧 거대한 아겔다마(Akeldama), 곧 피밭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사람들은 런던 같은 도시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얼마나 큰 은혜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른다. 신앙이 없다면 런던도 프랑스 공포 정치 시대의 파리처럼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이 성 안에 사는 신실한 사람들을 돌보시기 때문에 이 도시를 악인들에게 완전히 내어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도시를 악인들에게 내어주신다면 그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시는가? 하나님이 아시는가?”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자기 이익만 찾는다. 기회만 있으면 서로를 호랑이처럼 공격한다. 사회는 산산이 찢기고 약한 사람들은 강한 사람들에게 삼켜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은 자를 하나님이 남겨 두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소돔과 같았을 것이고 고모라처럼 되었을 것이다.
악한 자가 사람들을 얼마나 악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탄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많은 사람에게 무신론 사상을 퍼뜨리는 일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두려움이 없는 세상이다. 또한 법이 없는 세상이며 질서가 없는 세상이고 소망이 없는 세상이다. 여러분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듣지도 보지도 않으신다고 믿는다면, 예배가 사라지고 말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듣지 못하는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런 존재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듣지 못하시고 모든 것을 들으실 수도 없다면, 우리는 곧바로 그분의 본성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는 존재는 하나님일 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무한하신 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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