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표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찰스 H. 스펄전 저 · 나무와열매 번역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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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24736425
• 전자책 ISBN: 9791124736425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PREFACE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우리는 죽는 것이 존재를 포기하는 일이 아님을 안다. 죽음은 더 높고 더 고귀한 존재로 들어가는 통로일 뿐이다. 모든 죄의 속박에서 풀려난 영혼은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 보좌 앞에 흠 없이 서게 된다. 그 영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연옥의 불이 필요하지 않다. 몸을 떠난 바로 그날에 그 영혼은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한다. 이미 그곳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죽을 때 몸이 썩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을 이루는 이 낮은 부분조차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덤을 나쁘게 말하지 말자. 무덤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다. 무덤은 여관이며 부활로 가는 길에서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에스더(Esther)가 왕의 품에 안기기에 합당하도록 향품으로 몸을 씻었던 것처럼 몸도 썩어질 성질에서 깨끗하게 되어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썩음과 흙과 벌레는 이 육체를 더욱 깨끗하게 할 뿐이리라. 마침내 승리한 내 영혼이 돌아와 이 몸을 새롭게 입게 되리라.” 몸이 먼저 죽지 않는다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먼저 씨로 심기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꽃처럼 돋아날 수 없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싹이 나겠는가. 몸은 욕된 것으로 심기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 약한 것으로 심기지만 능력 있는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 몸은 육의 몸으로 무덤에 놓인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 그곳에서 신령한 몸으로 일어난다. 그 몸은 생명과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하다. 이 죽을 몸이 죽게 하라. 그렇다. 흙으로 썩어 돌아가게 하라. 흙은 흙으로 먼지는 먼지로 재는 재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알맞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금을 도가니에 넣으라. 금은 귀한 가치를 조금도 잃지 않는다. 다만 찌꺼기에서 벗어날 뿐이다. 보석을 세공사의 집으로 보내라. 주님이 자기 보석들을 모으시는 날에 그 보석은 왕의 면류관에서 더욱 밝게 빛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죽음이 결국 믿는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성도가 죽는 것은 결코 큰 손실이 아니다. 차갑게 식은 시신을 바라보면 죽음이 그 이마 위로 차가운 손을 지나가게 한 일이 큰 재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죽음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재앙이 아니다. 죽음을 바르게 바라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복이다. 한 아이가 새 둥지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안에는 알들이 있었고 아이는 그것을 큰 보물로 여겼다. 아이는 그 알들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일주일쯤 지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슬퍼하며 어머니에게 돌아와 말했다. “어머니, 이 둥지에 아름다운 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모두 망가졌어요. 깨진 껍데기 몇 조각밖에 남지 않았어요. 어머니,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제 보물이 사라졌어요.” 그러나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아무것도 없어진 것이 아니란다. 그 알 안에는 작은 새들이 있었단다. 이제 그 새들은 날아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노래하고 있단다. 알은 헛되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알은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이란다. 지금이 훨씬 더 좋은 상태란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기 쉽다. “무정한 파괴자여,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이 이것뿐인가. 이 재가 전부인가.” 그러나 믿음은 조용히 속삭인다. “그렇지 않다. 껍데기는 깨졌지만 시들지 않는 숲속에서 노래하는 낙원의 새들 사이에서 그대가 사랑하던 이들의 영혼을 찾게 될 것이다. 그들의 참된 인격은 이곳에 있지 않다. 그들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올라갔다.” 죽는 것은 손실이 아니다. 죽음은 유익이다. 오래 지속되고 영원하며 끝없는 유익이다. 한순간에는 사람이 약하여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능력을 입는다. 이것을 유익이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그의 이마는 지금 아파하고 있다. 그러나 시계가 몇 번 더 똑딱거리기 전에 그 이마는 면류관을 쓰게 된다. 이것이 유익이 아니겠는가. 그의 손은 떨리고 마비되어 있다. 그러나 곧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게 된다. 이것이 손실이겠는가. 그 사람은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을 만큼 병들어 있다. 그러나 곧 그곳 주민 가운데 아무도 병들지 않는 곳에 있게 된다. 이것이 손실이겠는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가 죽음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다. 친구들은 물었다. “사랑하는 백스터 목사님, 지금 어떠십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운데 하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거의 다 나았습니다.” 실제로 그러하다. 죽음은 고친다. 죽음은 가장 좋은 약이다. 죽는 사람은 거의 다 나은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완전히 고침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사람들이 흔히 보는 죽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도에게 죽음은 형벌이 아니다. 죽음은 멸망이 아니다. 죽음은 손실조차 아니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TABLE OF CONTENTS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제 1장 ➔
판권 제 2장 ➔
내지 영문 표지 제 3장 ➔
저자 소개 제 4장 ➔
I 존귀한 죽음들(Precious Deaths) 제 5장 ➔
CHAPTER 1

내지 한글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35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CHAPTER 2

판권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 35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6. 9. 14.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24736-42-5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본 도서는 AI를 활용한 1차 번역 후, 역자가 용어 수정 및 추가, 역자주, 각주, 문장 교정, 교열, 편집, 감수를 통해 직접 전체 문장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CHAPTER 3

내지 영문 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정본 본문 전문

The Gospel in The Book of Psalms

by Charles Haddon Spurgeon
Vol. 35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CHAPTER 4

저자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CHAPTER 5

I 존귀한 죽음들(Precious Deaths)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정본 본문 전문

I

존귀한 죽음들(Precious Deaths)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편 116:15

다윗은 눈앞에 닥친 큰 위험에서 구원을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을 구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매우 귀하게 여기셨으므로 그 생명이 쉽게 끝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시련을 당하는 모든 성도는 이 사실에서 큰 위로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그분의 작은 자녀들 중 하나라도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 양을 돌보지 않는 목자는 늑대가 양을 잡아먹도록 버려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양을 귀하게 여기는 목자는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내놓더라도 맹수의 입에서 힘없는 양을 구해 낸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성도들의 죽음이 하나님께 귀중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평가하시는 방식이 위대한 장군들이나 정복자들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지 보여 준다. 만일 나폴레옹(Napoleon)이 전쟁터에서 사람의 생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면, 그는 그것을 땅에 쏟아 버린 물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한 번의 승리를 얻거나 한 지방을 정복하기만 한다면 수많은 시체가 가을 낙엽처럼 들판을 뒤덮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마을마다 고아와 과부가 아버지와 남편을 잃고 통곡하여도 그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황제의 명성과 비교하면 징집된 농민들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스트리아가 굴복하고 러시아가 침략당하기만 하면 인류의 절반이 죽어도 코르시카 출신 황제는 조금도 마음 쓰지 않았다.

그러나 만왕의 왕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아끼시며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신다. 또한 그들의 피는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대장은 자기 군사들의 생명을 함부로 희생시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싸우는 교회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여기신다. 성도들이 그분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려놓도록 허락하실 때에도 그 생명은 하나도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며 불필요하게 희생되지도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평가는 박해자들의 평가와도 얼마나 다른가. 박해자들은 성도들을 죽이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순교자들을 불태우는 일을 해로운 벌레를 없애는 일 정도로 여겼다. 믿는 자들을 학살하는 일을 들짐승을 잡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위그노(Huguenots) 학살을 기념하는 메달까지 만들지 않았는가? 또한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던 교황조차도 그 일을 하나님께 “테 데움(Te Deum)” 찬양을 드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파리의 거리가 피로 물들었어도 죽은 사람들은 그저 프로테스탄트들이라는 이유로 세상은 그들이 없어져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여우와 늑대 그리고 프로테스탄트는 모두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른바 재세례파(Anabaptists)는 독사보다도 더 악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을 완전히 없애는 일을 건전한 그리스도인의 훈련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교회의 원수들은 성도들을 마치 사냥감이 되는 짐승처럼 추격하였다. 그들은 성도들이 살아 있을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전쟁의 개들과 종교재판소(Inquisition)의 지옥 같은 사냥개들을 풀어 놓았다.

“이런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려라.”

이 말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향하여 박해자들이 외친 공통된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피는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다. 그들이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의 먹이가 되었든 들짐승에게 끌려 죽었든 감옥에서 살해되었든 알프스(Alps)의 눈 덮인 산속에서 학살되었든 스미스필드(Smithfield)를 그들의 피로 물들였든 그들의 피는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이 그 일을 다 이루고 공의의 두려운 심판을 시작하실 날이 이르면 반드시 자기 택하신 백성의 원수를 갚으실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의 생각도 바로잡아 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매우 큰 손실로 여기기 쉽다. 만일 우리가 막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결코 죽지 않게 하려 할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이 땅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줄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된다. 우리는 그들을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붙잡아 두어 강 저편에 있는 기업으로 속히 들어가는 기쁨을 빼앗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자주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리 곁에 붙잡아 두길 원한다. 우리의 손을 놓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떠남은 우리 마음에 많은 아픔을 준다. 우리는 슬퍼한다. 안타깝게도 때로는 원망하며 불평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한 풍성함을 얻고 안식에 들어갔는데도 그들이 우리를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더 가난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슬퍼하는 동안 그리스도는 기뻐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늘에 이를 때마다 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보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기뻐하신다. 또한 완전하게 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자신의 영혼의 수고에 대한 또 하나의 상급을 보시며 만족하신다. 우리는 이 땅에서 슬퍼하지만 그분은 하늘에서 기뻐하신다.

우리 눈에는 그들의 죽음이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들의 죽음이 귀하다. 우리는 상복(the mournful escutcheon)을 걸어 두고 마음껏 슬퍼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늘에서는 “위에 있는 혼인 잔치(The bridal feast above)”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하늘의 모든 거리에는 깃발이 즐겁게 휘날린다. 또 한 사람의 하늘 상속자가 자신의 기업에 들어왔기 때문에 천국 전체가 기쁨의 명절을 지킨다.

이 사실이 우리의 슬픔을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눈물은 허락된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은 믿음과 소망의 빛 속에서 빛나야 한다. 예수님도 우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원망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울 수 있다. 그러나 소망 없는 사람들처럼 울어서는 안 된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떠날 때 슬픔보다 기뻐할 이유가 더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이제 이 교훈이 가득한 본문을 살펴보자

1. 이 말씀은 죽음에 대한 특별한 관점을 보여 준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 116:15).

죽음 자체는 결코 귀한 것이 아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가장 고귀한 작품이 찢기고 인간의 몸이라는 정교한 수놓은 작품이 훼손되어 썩어 가는 모습을 보시는 일이 하나님께 기쁜 일이 될 수는 없다. 죽음 자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의 죽음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성도에게 죽음은 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더 좋은 옷을 입기 위하여 지금의 몸을 벗는 것이다. 또한 잠드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당하는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

이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죽음이 더 이상 믿는 사람에게 죄에 대한 형벌의 표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믿는 사람의 죄가 모두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고 그 죄에 대한 형벌도 모두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가 전가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죄도 형벌로 다시 갚게 되지 않는다. 그의 죄는 대신 형벌을 받으신 구주 안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으신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는 완전히 끝났다.

만일 그리스도께 죽음의 형벌이 집행된 뒤에도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사람들에게 다시 그 형벌이 내려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인 나에게 죽음은 죄값을 치르기 위한 형벌로 오는 것이 아니다. 악인에게는 그렇다. 그들에게 죽음은 죄악에 대한 마땅한 심판이다. 또한 끝없이 계속될 영원한 죽음의 시작이다. 그것은 그들의 영원한 몫이 된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죽음의 쏘는 것이 사라졌다. 무덤의 승리도 없어졌다. 죽음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라 특권이 되었다. 나는 더 나아가 죽음은 언약의 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울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죽음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

바울은 생명과 죽음까지도 모두 성도의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죽음조차도 다른 모든 선하고 귀한 선물과 함께 주어진 언약의 복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안에서 잠드는 것은 언약의 복이다. 또한 간구해야 할 은혜이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9).

만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이 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살아 있다가 죽음을 겪지 않고 변화되는 것과 실제로 흙 가운데 잠드는 것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잠드는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닮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주님처럼 무덤에 들어가 무덤에서 잠들게 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아시는 것처럼 죽음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멀어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죽자.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지나가셨다. 그러므로 그 몸의 지체인 우리도 기쁨으로 그 길을 따라가자.

“구주이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도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그러므로 구주이신 주님이 잠드셨던 것처럼 우리도 잠들자. 무덤에 계신 우리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우리는 삶에서도 죽음에서도 그분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분과 너무도 굳게 연합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주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겠습니다. 또한 주와 함께 묻히기를 원합니다. 이는 부활의 아침에 주와 함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은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 죽음은 더 이상 율법에 따른 형벌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하여 주어지는 언약의 복이다. 본문의 말씀은 죽음이 존재의 끝이라는 어두운 생각을 물리친다. 죽음은 사람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니다. 또한 그렇게 여겨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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