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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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는 것이 존재를 포기하는 일이 아님을 안다. 죽음은 더 높고 더 고귀한 존재로 들어가는 통로일 뿐이다. 모든 죄의 속박에서 풀려난 영혼은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 보좌 앞에 흠 없이 서게 된다. 그 영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연옥의 불이 필요하지 않다. 몸을 떠난 바로 그날에 그 영혼은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한다. 이미 그곳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죽을 때 몸이 썩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을 이루는 이 낮은 부분조차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덤을 나쁘게 말하지 말자. 무덤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다. 무덤은 여관이며 부활로 가는 길에서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에스더(Esther)가 왕의 품에 안기기에 합당하도록 향품으로 몸을 씻었던 것처럼 몸도 썩어질 성질에서 깨끗하게 되어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썩음과 흙과 벌레는 이 육체를 더욱 깨끗하게 할 뿐이리라. 마침내 승리한 내 영혼이 돌아와 이 몸을 새롭게 입게 되리라.” 몸이 먼저 죽지 않는다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먼저 씨로 심기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꽃처럼 돋아날 수 없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싹이 나겠는가. 몸은 욕된 것으로 심기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 약한 것으로 심기지만 능력 있는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 몸은 육의 몸으로 무덤에 놓인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 그곳에서 신령한 몸으로 일어난다. 그 몸은 생명과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하다. 이 죽을 몸이 죽게 하라. 그렇다. 흙으로 썩어 돌아가게 하라. 흙은 흙으로 먼지는 먼지로 재는 재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알맞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금을 도가니에 넣으라. 금은 귀한 가치를 조금도 잃지 않는다. 다만 찌꺼기에서 벗어날 뿐이다. 보석을 세공사의 집으로 보내라. 주님이 자기 보석들을 모으시는 날에 그 보석은 왕의 면류관에서 더욱 밝게 빛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죽음이 결국 믿는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성도가 죽는 것은 결코 큰 손실이 아니다. 차갑게 식은 시신을 바라보면 죽음이 그 이마 위로 차가운 손을 지나가게 한 일이 큰 재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죽음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재앙이 아니다. 죽음을 바르게 바라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복이다. 한 아이가 새 둥지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안에는 알들이 있었고 아이는 그것을 큰 보물로 여겼다. 아이는 그 알들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일주일쯤 지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슬퍼하며 어머니에게 돌아와 말했다. “어머니, 이 둥지에 아름다운 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모두 망가졌어요. 깨진 껍데기 몇 조각밖에 남지 않았어요. 어머니,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제 보물이 사라졌어요.” 그러나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아무것도 없어진 것이 아니란다. 그 알 안에는 작은 새들이 있었단다. 이제 그 새들은 날아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노래하고 있단다. 알은 헛되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알은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이란다. 지금이 훨씬 더 좋은 상태란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기 쉽다. “무정한 파괴자여,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이 이것뿐인가. 이 재가 전부인가.” 그러나 믿음은 조용히 속삭인다. “그렇지 않다. 껍데기는 깨졌지만 시들지 않는 숲속에서 노래하는 낙원의 새들 사이에서 그대가 사랑하던 이들의 영혼을 찾게 될 것이다. 그들의 참된 인격은 이곳에 있지 않다. 그들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올라갔다.” 죽는 것은 손실이 아니다. 죽음은 유익이다. 오래 지속되고 영원하며 끝없는 유익이다. 한순간에는 사람이 약하여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능력을 입는다. 이것을 유익이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그의 이마는 지금 아파하고 있다. 그러나 시계가 몇 번 더 똑딱거리기 전에 그 이마는 면류관을 쓰게 된다. 이것이 유익이 아니겠는가. 그의 손은 떨리고 마비되어 있다. 그러나 곧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게 된다. 이것이 손실이겠는가. 그 사람은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을 만큼 병들어 있다. 그러나 곧 그곳 주민 가운데 아무도 병들지 않는 곳에 있게 된다. 이것이 손실이겠는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가 죽음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다. 친구들은 물었다. “사랑하는 백스터 목사님, 지금 어떠십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운데 하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거의 다 나았습니다.” 실제로 그러하다. 죽음은 고친다. 죽음은 가장 좋은 약이다. 죽는 사람은 거의 다 나은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완전히 고침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사람들이 흔히 보는 죽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도에게 죽음은 형벌이 아니다. 죽음은 멸망이 아니다. 죽음은 손실조차 아니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우리는 죽는 것이 존재를 포기하는 일이 아님을 안다. 죽음은 더 높고 더 고귀한 존재로 들어가는 통로일 뿐이다. 모든 죄의 속박에서 풀려난 영혼은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 보좌 앞에 흠 없이 서게 된다. 그 영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연옥의 불이 필요하지 않다. 몸을 떠난 바로 그날에 그 영혼은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한다. 이미 그곳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죽을 때 몸이 썩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을 이루는 이 낮은 부분조차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덤을 나쁘게 말하지 말자. 무덤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다. 무덤은 여관이며 부활로 가는 길에서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에스더(Esther)가 왕의 품에 안기기에 합당하도록 향품으로 몸을 씻었던 것처럼 몸도 썩어질 성질에서 깨끗하게 되어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썩음과 흙과 벌레는 이 육체를 더욱 깨끗하게 할 뿐이리라. 마침내 승리한 내 영혼이 돌아와 이 몸을 새롭게 입게 되리라.” 몸이 먼저 죽지 않는다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먼저 씨로 심기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꽃처럼 돋아날 수 없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싹이 나겠는가. 몸은 욕된 것으로 심기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 약한 것으로 심기지만 능력 있는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 몸은 육의 몸으로 무덤에 놓인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 그곳에서 신령한 몸으로 일어난다. 그 몸은 생명과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하다. 이 죽을 몸이 죽게 하라. 그렇다. 흙으로 썩어 돌아가게 하라. 흙은 흙으로 먼지는 먼지로 재는 재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알맞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금을 도가니에 넣으라. 금은 귀한 가치를 조금도 잃지 않는다. 다만 찌꺼기에서 벗어날 뿐이다. 보석을 세공사의 집으로 보내라. 주님이 자기 보석들을 모으시는 날에 그 보석은 왕의 면류관에서 더욱 밝게 빛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죽음이 결국 믿는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성도가 죽는 것은 결코 큰 손실이 아니다. 차갑게 식은 시신을 바라보면 죽음이 그 이마 위로 차가운 손을 지나가게 한 일이 큰 재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죽음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재앙이 아니다. 죽음을 바르게 바라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복이다. 한 아이가 새 둥지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안에는 알들이 있었고 아이는 그것을 큰 보물로 여겼다. 아이는 그 알들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일주일쯤 지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슬퍼하며 어머니에게 돌아와 말했다. “어머니, 이 둥지에 아름다운 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모두 망가졌어요. 깨진 껍데기 몇 조각밖에 남지 않았어요. 어머니,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제 보물이 사라졌어요.” 그러나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아무것도 없어진 것이 아니란다. 그 알 안에는 작은 새들이 있었단다. 이제 그 새들은 날아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노래하고 있단다. 알은 헛되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알은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이란다. 지금이 훨씬 더 좋은 상태란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기 쉽다. “무정한 파괴자여,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이 이것뿐인가. 이 재가 전부인가.” 그러나 믿음은 조용히 속삭인다. “그렇지 않다. 껍데기는 깨졌지만 시들지 않는 숲속에서 노래하는 낙원의 새들 사이에서 그대가 사랑하던 이들의 영혼을 찾게 될 것이다. 그들의 참된 인격은 이곳에 있지 않다. 그들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올라갔다.” 죽는 것은 손실이 아니다. 죽음은 유익이다. 오래 지속되고 영원하며 끝없는 유익이다. 한순간에는 사람이 약하여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능력을 입는다. 이것을 유익이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그의 이마는 지금 아파하고 있다. 그러나 시계가 몇 번 더 똑딱거리기 전에 그 이마는 면류관을 쓰게 된다. 이것이 유익이 아니겠는가. 그의 손은 떨리고 마비되어 있다. 그러나 곧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게 된다. 이것이 손실이겠는가. 그 사람은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을 만큼 병들어 있다. 그러나 곧 그곳 주민 가운데 아무도 병들지 않는 곳에 있게 된다. 이것이 손실이겠는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가 죽음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다. 친구들은 물었다. “사랑하는 백스터 목사님, 지금 어떠십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운데 하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거의 다 나았습니다.” 실제로 그러하다. 죽음은 고친다. 죽음은 가장 좋은 약이다. 죽는 사람은 거의 다 나은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완전히 고침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사람들이 흔히 보는 죽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도에게 죽음은 형벌이 아니다. 죽음은 멸망이 아니다. 죽음은 손실조차 아니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시편 116:16 이 말씀은 서로 대조되는 두 가지를 보여 주는 것처럼 보인다. 다윗의 신앙은 완전한 자유의 신앙이었다. 그는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또한 그의 신앙은 완전한 섬김의 신앙이었다. 그는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고 고백하였다. 내가 이 본문이 대조를 보여 준다고 말하였는가? 사실 이 두 가지는 결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삶 속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하나의 거룩한 경험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자유의 신앙이다. 참된 신자는 자신의 영혼이 건강한 상태에 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한때 내 영혼을 묶고 있던 죄의 형벌의 사슬은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무거운 의식과 율법의 사슬도 모두 바람에 날려 버려졌다. 이제는 초보적인 규례들을 더 이상 붙들지 않는다. 그림자는 실체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예표와 상징도 더 이상 사람을 억누르지 못한다. 참빛이 이미 비치고 있으므로 횃불은 꺼졌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를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셨다는 뜻만이 아니다. 옛 모세 율법의 무거운 의식에서도 나를 완전히 해방하셨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마지못해 두려워하며 종처럼 섬기게 만들던 속박의 영에서도 나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내 목에서 멍에를 벗기셨고 내 등을 치던 채찍도 거두셨다. 하나님은 나를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며 종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는다. 이제는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간다. 성령 하나님의 양자의 영으로 말미암아 나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나님도 같은 성령 하나님으로 나를 구원의 날까지 인치셨으므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신앙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역사하였다면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가치관이 나를 묶어 두던 사슬에서도 나를 풀어 주셨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도 나를 건져 내셨다. 누구든 나에게 충성을 요구하면 비굴하게 굴고 아첨하던 삶에서도 나를 구원하셨다. 이제 나는 오직 한 분의 주인만을 섬긴다. 그분을 섬기는 일은 완전한 자유이다. 예전에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숨죽여 말하였다. 내 양심마저 다른 사람의 편견과 기분에 늘 굴복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독수리가 태양을 바라보며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올라가듯이 나는 날아오른다. 더 이상 편견이라는 바위에도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언덕에도 묶여 있지 않다.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고백한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신자가 누리는 자유는 매우 크고 넓다. 율법폐기론자(Antinomian)는 복음의 자유를 설명하려다가 그 자유가 가장 온전한 섬김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한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폐기론이 말할 수 있는 모든 자유까지도 실제로 누리고 있다. 거룩하게 살 자유는 죄를 지을 허락보다 훨씬 더 위대한 자유이다. 양심을 따라 살 자유, 죄 사함을 확신할 자유, 이미 정복된 정욕을 짓밟을 자유는 죄의 편안한 종으로 살면서도 언젠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 자유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크다. 가장 담대한 자유의 설교자라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할 때는 결코 지나치게 말할 수 없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모든 천둥 같은 외침을 다 쏟아내고 존 칼빈(John Calvin)이 모든 논리를 다 펼치며 울리히 츠빙글리(Ulich Zwingli)가 불타는 열정으로 외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모두 다 표현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들이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특권을 온전히 누리며 산다면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자유로운 사람이다. 혹시 아직 속박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이 아직 복음의 구속하시고 해방하시는 능력에 완전히 자신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넓고 완전한 의미에서 신자는 이렇게 외칠 수 있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며 섬기는 삶과 조금도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이 높은 자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이 말씀은 이어지는 고백과 모순되지 않는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증거이다. 또한 위대한 해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결박을 풀어 주신 결과이며 아름다운 열매이다. 그러므로 자유와 함께 섬김도 있다.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언제나 나타나야 하는 특징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속 열정 하나도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능력 가운데 어느 하나도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값을 주고 사신 존재이다. 우리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다. 가장 넓은 자유를 누리면서도 가장 깊은 의미에서는 다른 분의 소유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그분께 묶인 사람들이지만 바로 그 안에서 가장 큰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이 섬김은 본문에 따르면 진실해야 한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오늘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섬김은 점점 대신해 주는 섬김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나는 함부로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을 여러분이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만일 그 안에 조금이라도 진리가 있다면 그 진리가 여러분의 마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우리는 공적인 예배에서도 남이 대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지 않는가? 물론 이곳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많은 교회에서는 다섯 명이나 여섯 명 정도의 훈련된 사람들이 회중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우리는 교회와 예배당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는가? 목회자가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함께 모인 모든 사람이 하나 되어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언제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신앙의 열심이 목회자와 예배를 맡은 몇 사람에게만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예배를 ‘공연(performance)’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이 말은 원래 극장에서나 사용되어야 할 표현이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집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오늘날 예배는 ‘공연’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단지 절차를 수행하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목회자의 의무 수행으로 여겨질 뿐, 회중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너무 쉽게 목회자를 통한 자선 활동과 공적인 가르침으로 대신되고 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여러분은 목회자를 지원하고 그가 여러분을 대신하여 의무를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죄인을 회심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연약한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실 교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의무가 목회 사역을 위해 특별히 세움을 받은 한 사람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 이런 모습이 바로잡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목회자를 후원한다고 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모든 목회자를 대표하여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러분의 책임까지 대신 지겠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만으로도 주님의 능력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깨끗한 손으로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니”(행 20:26). 이 고백에 이르기 위해서도 우리는 가장 힘든 수고와 끊임없는 염려를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여러분의 일을 대신할 수 없다. 또한 그렇게 하겠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그 착각을 완전히 버리기 바란다. 나는 누구의 의무도 대신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내 의무만 감당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태만을 대신 책임지는 보증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인한 죄를 대신 짊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어떤 목회자도 아무리 힘써 일하고 아무리 자신을 희생한다 하더라도 여러분 각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영혼들의 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는 이 원리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여러분은 한 사람을 앞세워 모든 일을 맡긴다. 그리고 자신들은 가만히 앉아 먹임을 받고 세움을 받기만 원한다. 마치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마치 단지 건물을 세우는 돌과 벽돌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않으셨다. 우리는 살아 있는 남녀로서 구속주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며 살아야 한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35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4-11-20 |
| 쪽수 | 312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736425 |
전자책 ISBN | 9791124736425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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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유와, 계절의 끝에서 맺히는 결실처럼 풍요로운 문장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