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믿음으로 자족하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믿음으로 자족하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93755600
• 전자책 ISBN: 9791193755600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삶 중 어느 부분이 믿음에 달려 있는지, 혹은 어떤 국면이 믿음을 가장 잘 증명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이 말씀은 영적 생명의 시작, 지속, 성장, 그리고 완성 모두가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포괄한다. 본문은 이 사실을 의미한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계시하신 것을 받아들이며, 그분을 의지하고, 안식하며, 구세주를 붙든다. 바로 그 순간, 그는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으로 살아나는 사람이 된다. 믿기 전까지 그의 모든 존재는 죽음의 한 형태일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때, 그는 영생 안으로 들어오며,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 그렇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니,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지속하고, 거룩함의 길을 끝까지 가기를 원한다면, 그의 견인은 계속되는 믿음의 결과이어야 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단지 어느 날에 이루어진 단일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전 생애를 통해 지속되고 이어지는 행위이다. 의인은 단지 믿음으로 삶을 시작할 뿐 아니라, 믿음으로 계속 살아간다. 그는 영으로 시작하고 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은혜로 어느 정도까지 가다가, 나머지는 율법의 행위로 채우는 것도 아니다. 히브리서 본문은 말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믿음은 매 순간 필수적이다. 매일, 하루 종일, 모든 일에서 그렇다. 우리 육적인 생명은 호흡으로 시작되며, 호흡으로 계속 유지된다. 육체의 호흡이 그 몸에 필요한 것처럼, 믿음은 영혼의 호흡이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신적 생명 안에서 전진하고 자라가기를 원한다면, 그 길도 동일하다. 우리의 뿌리는 믿음이다. 그리고 성장 또한 오직 그 뿌리를 통해서만 온다. 은혜 안에서의 진보는 육적인 지혜에서 오지 않는다. 율법적 노력이나 불신에서도 오지 않는다. 육은 영적 생명에 아무런 성장을 주지 못한다. 불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노력도 오히려 내면의 생명을 약화시킬 뿐, 자라게 하지 않는다. 고행이나 슬퍼함, 노력, 애씀 등이 단순한 믿음 없이 존재한다면, 그것들로는 우리가 강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 안에서만 영혼의 생명은 양분을 얻는다. 처음 생명이 들어온 그 문이, 생명이 계속 들어오는 동일한 문이다. 이제 나는 이 명령의 두 번째 부분, 곧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으로 나아간다. 믿음이란 곧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말해야겠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 단순한 신뢰를 매우 잘, 그리고 충분히 설교하였다. 나는 그들의 신실함을 존경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어려움과 위험이 있다. 단순한 신뢰가 구원의 길이라고 설교하는 가운데, 그들은 죄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는 일을 빠뜨릴 수 있다. 곧, 과거의 죄에 대한 회개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믿음은 결코 참된 믿음일 수 없다는 점이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개는 믿음과 함께하지 않으면 참되지 않으며, 믿음도 과거 죄에 대한 진심 어린 회개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참되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과거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자들이 가진 믿음이 아니라 마귀들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모두 씻으셨지.” 그리고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든 죄악들, 장성한 후의 불의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그토록 큰 범죄자였다는 사실로 인한 터질 듯한 감정을 자기 영혼에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죄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며, 그로 인해 한 번도 애통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그들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한 현재의 삶을 경건하지 않게 살아가도록 허락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단순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어.” 그리고는 술꾼과 함께 술집에 앉아 있고, 술 마시는 자들과 바에 서 있으며, 세속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육체의 정욕과 쾌락을 즐긴다. 그런 자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들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거짓된 위선에 속한 자들이며,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믿음을 지닌 자들이 아니다.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은 그런 죄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저지르는 죄를 보고는 웃고 즐긴다. 그들은 타인의 비속한 농담에 웃고 음란한 말에도 미소 짓는다. 그들은 죄를 뱀처럼 피하지 않으며, 죄를 자기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인 살인자처럼 혐오하지 않는다. 아니다. 그들은 죄와 어울리며, 죄를 정당화하고, 공적으로는 비난하면서도 은밀하게는 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중대한 범죄를 사소한 잘못이라 부르고, 약간의 착오 정도로 여긴다. 사업에서 정직함에서 벗어나는 행위들을 눈감아 주며, 그것을 단지 거래상의 일이라고 여긴다. 사실 그들은 죄와 함께 나란히 앉아 식사하며, 불의와 한 상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오, 만일 여러분 중에 이런 믿음을 가진 자가 있다면,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전부 짐 싸서 내쫓으시기를 바란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에서 스펄전은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한다. 믿음 안에 거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믿음으로 자족한다는 의미와도 동의어이다. 신자의 모든 문제는 믿음이 작거나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온전한 믿음이 열쇠이다.
본서는, 복음설교를 통한 은혜의 삶 살아내기 시리즈로, 스펄전의 믿음을 주제로 전한 명 설교들 중 10편을 뽑아 번역한 것이다. 주제는 믿음으로 자족하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상당한 인사이트를 주는 설교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믿음으로 자족하기
찰스 해돈 스펄전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믿음으로 자족하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5. 6. 16.
발행처_ 나무와 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93755-60-0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Content in Faith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죄인의 회개와 구원”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구원의 필수 조건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초대”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깊이 인식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굳게 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VI VII 믿음과 회개는 분리될 수 없다 182
VIII IX 믿음의 정당한 근거 238
X 스펄전의_믿음으로_자족하기_288(ebook_출판본)-20
I 믿음을 위한 잔치(A Feast for Faith)
믿음을 위한 잔치(A Feast for Faith)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이사야 28:29
이사야는 농부가 가진 기술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그는 농부가 곡물의 윤작(輪作)을 위하여 채택하는 다양한 방법, 특정한 씨앗에 적합한 여러 토양의 선택, 그리고 수확물을 묶고 저장하는 방식에 대하여 감탄하며 언급하였다. 그는 특히 동방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여러 타작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연한 곡물은 사람의 손에 든 막대기로 타작되었고, 다른 것들은 더 거친 방식으로 껍질에서 떼어내어졌다. 즉, 소의 발로 밟거나, 수레바퀴로 누르거나, 날이 달린 타작기구로 끌어당기는 식이었다. 이사야는 당시 농업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여긴 듯하다.
만일 그가 오늘날의 농업을 본다면, 밭이나 곡식 마당에 들어가자마자 예전에는 수 일 혹은 수 주가 걸렸던 일을 몇 시간 안에 쉽게 해내는 놀라운 기계들을 보고 무엇이라 말했을까 상상해본다. 분명 그는 자기 시대의 농업에 대하여 말했던 것보다 더 강한 어조로 외쳤을 것이다.
“이 또한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나왔나니.”
본문 말씀의 표면적인 의미는 이러하다. 곧 인간의 기술과 과학과 능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선지자는 농업만을 예로 들고 있으나, 동일한 원리가 모든 기술과 제조업에도 적용되며,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자연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능력을 알게 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과학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비록 인간의 영원한 구원과 직접적 관련은 없을지라도, 인간의 현세에 유익을 주는 분야에 있어서조차 인간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로 거슬러 올라가며 추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엘의 아들 브살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읽는다.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출 31:2-5).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신 것도 본다.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출 31:6).
그러므로 우리는 사색적이고 창의적인 마음과 능란하고 기민한 손에 대해서도 사람을 가르치시는 위대한 스승이신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우리는 뉴턴의 경이로운 철학과 와트, 스티븐슨의 기술도 직접적으로 하나님께로 소급한다. 왜냐하면 아주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그런 자들의 마음속 구성과 형성에는 본래부터 특별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평생을 다 바쳐 노력해도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창의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중 열 명 중 아홉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게 된다. 그 능력은 어디서 왔는가? 발명하는 풍성한 두뇌는 확실히 창조주의 선물일 것이다. 나중의 섭리도 이 일에 개입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본래 그의 마음이 발명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성향을 가졌지만, 상황의 힘에 의해 전혀 다른 길로 돌아서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난이 그들의 고귀한 열정을 눌렀고
그들의 따뜻한 영혼의 흐름을 얼려버렸다.”
다른 경우에는 자연적인 열정에 통로를 마련해 주고, 그 영혼이 원하는 대로 흐르도록 허락하신 것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였다.
또한, 얼마나 자주 가장 위대한 발명들이 가장 단순한 우연으로부터 비롯되었던가! 주전자에서 나오는 김의 분출이나 나무에서 사과 하나가 떨어지는 일이 사색적인 마음에게 위대하고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한 일도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들을 누구에게 돌릴 수 있겠는가? “그 뜻의 결정대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이”(엡 1:11) 외에 누구에게 그 원인을 돌릴 수 있겠는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에게 지혜를 주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시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배하자. 단지 성경을 읽을 때만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의 전당을 거닐 때도, 그리고 오늘날 우리 주변 사방에 세워지고 있는 전시회를 방문할 때도 그러하자. 사람의 기술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려주는 소리를 듣자. 우리가 그것들을 바라볼 때, “오 사람아, 그대는 위대하다! 네 천재성의 경이로움도 참으로 크도다!”라고 말하지 말고, 차라리 이렇게 말하자.
“오 하나님, 주는 참으로 위대하시도다! 사람이 이런 원리와 물질의 속성을 알게 하시고, 그의 필멸의 삶을 기쁘고 밝게 하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다니!”
본문을 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을 이토록 지혜롭게 가르친다면, 하나님 자신은 얼마나 지혜로우시겠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단지 한 줄기 광선만으로도 우리에게 이토록 많은 빛을 전달하여,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경이로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면, 하나님 자신 안에 감추어진 무한한 경영의 지혜와 이루심의 탁월함은 어떠하겠는가!
인간의 정신이 마침내 두 대륙을 연결하고, 공간과 시간을 소멸시키며, 심지어 옛날에는 파괴자였던 대양을 지금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 전류가 번쩍이는 가느다란 선을 보존하는 자로 만든 일,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면, 사람이 가장 거대한 강을 가로지르고, 길 없는 숲과 바위산을 뚫어 도로를 만들어 낸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못하시겠는가?
제자, 그 연약한 제자가 이런 놀라운 일들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 스승이신 하나님은 무엇을 이루지 못하시겠는가? 그분은 참으로 경영함에 있어서 기묘하지 않으시겠는가? 그분은 행하심에 있어서 실로 탁월하지 않으시겠는가?
이와 같이 선지자는 우리 마음을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이끈다. 모든 교사들이 다 이와 같이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도리어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그분의 존재를 외면하게 만드는 일에 전념하는가!
오늘 아침 우리가 주목할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본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님의 비전이고, 둘째는 그런 비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1. 본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자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은, 영안이 열린 눈으로 볼 때, 먼저는 그분의 경영의 방(council- chamber)에서,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분의 위대한 작업실(great workshop)에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영역 모두에서 선지자의 감탄의 대상이 되신다. 그분은 “경영함에 있어서 기묘하시며,” 또한 “이루심에 있어서 탁월하시다.”
먼저 서두에서 주목할 점은, 본문이 분명히 보여주는 바, 하나님은 아무런 계획 없이 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우연에 맡기신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영원한 목적이라는 교리를 거부하며, 하나님께서 일어날 일을 미리 정하셨다고 주장하면 화를 낸다. 그러나 모든 이가 동의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계획 없이 일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서도 모든 일하심 속에서 정연하게 마련된 설계를 따라 일하신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분개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진리에 대해 얼마나 반발하든지 간에, 다음의 사실은 확실하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정하셨다. 하나님은 기계 안에 어떤 나사도 느슨하게 두지 않으셨고, 어떤 일도 우연이나 사고에 맡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에게는 “만일”이나 “혹시”라는 것이 없다. 인간의 작용조차, 아무리 자유롭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전혀 건드려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신비로운 권능에 의해 인도되며 그분의 목적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성취해 낸다.
하나님께서 번개에 날개를 달아 보내시거늘, 가장 격정적인 영혼도 인도하지 않으시겠는가? 회오리바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시는 분이시거늘, 가장 야망 찬 의지도 다스리지 않으시겠는가? 바다조차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 선을 넘지 못하게 하시거늘, 사람의 마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에 굴복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시며, 책임을 지우시고, 마치 아무런 뜻도 작정도 없는 것처럼 그를 자유롭게 두시되, 영원하신 여호와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며, 자신의 목적을 자기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성취하신다.
본문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는 이것이다. 곧,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셨고, 그 계획은 그 자체로도 놀랍고, 실행될 때는 탁월함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여러 방면에서 입증될 수 있는데, 먼저 자연 속에서 잘 나타난다. 모든 창조 세계는 설계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천사들과 의논하지 않으셨고, 어떤 존재에게도 지시를 구하지 않으셨다.
“누가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느냐?”(사 40:13-14).
오직 그분 홀로 하늘을 뼘으로 재셨고, 산들을 저울에 달아보셨고, 작은 산들도 저울추로 측량하셨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제로 다 무게를 재고 측량하신 것이다. 아무것도 정확한 계산 없이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우리 눈에는 하나님의 작품 중에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것들조차도 실상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질서일 뿐이다.
하늘의 별들은 마치 사람이 손으로 금가루를 흩뿌린 것처럼 흩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라도 자리를 바꾼다면 전체 배열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천문학을 연구한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각 행성의 크기, 태양계 안에서의 위치, 그 물질의 밀도, 그 해의 길이, 그리고 그 외 모든 요소들이 얼마나 정확한 척도에 따라 정해져 있는지를 수학자는 아주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지혜가 하늘의 무거운 천체들의 배열 속에 나타나 있다.
이 땅 위에서도, 어디를 보든지 설계가 보인다는 사실만큼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입증해주는 주장이 또 있을까? 가장 하찮은 동물이나 가장 미세한 곤충을 보라. 그 안에는 그 생물의 습성에 맞게, 또 그 상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고안된 가장 놀라운 장치들이 들어 있다.
아니, 이 생물들은 단지 설계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설계가 탁월하게 작동된다는 증거까지 제공한다. 바다의 길을 지나가는 모든 물고기는, 그 유연하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구조에 대한 계획이 매우 잘 작동된다는 것을 증언한다. 새와 짐승 모두 그러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께 나아가 “내 구조에는 결함이 있습니다. 내가 설계된 목적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몸도 그러하다. 매우 신묘막측하게 짜여져 있으며, 수많은 신경과 근육으로 가득 찬 우리 육신은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손가락으로 수놓은 무류
(無類)의 자수와 같고, 우리가 제대로만 살핀다면, 위대한 창조자의 앞선 예지와 뛰어난 기술을 증명하는 수만 가지의 증거가 그 안에 있다. 아,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이토록 경이롭게 지어졌다면, 우리가 당연히 그분의 찬송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진리를 보여주는 두 번째 예는 섭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크신 섭리적 운행은 모두 그분의 미리 정하신 목적과 작정의 결과이다. 힛데겔과 유브라데강이 은빛 물결을 이루며 기쁨으로 에덴동산 한가운데를 흘러가며 금 모래 위를 흐르던 그 처음 순간부터, 마지막 끝 날에 이르기까지, 그날 위대한 천사가 바다와 땅 위에 서서 “영원무궁히 살아계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며, 더 이상 시간이 없으리라”(계 10:6)고 선언하는 바로 그날까지, 하늘과 땅과 지옥에서 움직였던 모든 것, 그리고 앞으로 움직일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경영과 예정 가운데 있어 왔고, 지금도 그렇고, 장차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는 거룩하고, 의롭고, 지혜롭고, 변함없는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함이다.
이 섭리의 시(詩) 전체가, 영원의 빛 가운데 읽혀질 때,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성에 걸맞은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이미 기록된 인류 역사조차, 처음 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깊이 연구하면 해답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시대를 거듭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서 오심을 위하여 이 세상을 준비하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지금은 그분의 영광의 재림을 위하여 세상을 준비하고 계시지 않는가?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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