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표지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찰스 H. 스펄전 저 · 나무와열매 번역실 역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공식 인증 디지털 출판물 (DRM 보호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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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93755624
• 전자책 ISBN: 9791193755624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PREFACE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우리 구주께서는 인내에 있어서도 본받아야 할 본이 되신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게이지 아니하시고 마침내...앉으셨느니라.”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기까지 결코 달리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자리가 유일하게 여러분도 앉을 수 있는 자리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사탄은 여러분 앞에 안락한 팔걸이 의자를 내밀며 말한다. “쉬어라.” 안 된다, 안 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기까지 달려야 한다. “어려운 언덕”(Hill Difficulty)을 따라가다 보면 길가에 아늑한 정자들과 탁자들이 놓인 장소들이 여럿 있다.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가면 잠들기 쉽고, 위로의 확신이라는 두루마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 정자들을 지나쳐 가라. 경주자는 앉아서는 안 된다. 앉는 순간 경주를 버리는 것이다. 유일하게 구원을 이루는 달리기는 끈질긴 달리기이다. 출발점에서 결승점에 이르기까지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날마다 순종하고, 날마다 거룩함을 실천하며, 날마다 봉사해야 한다. 들쭉날쭉한 신앙은 거짓된 신앙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때까지 달리기를 계속해야 한다. 우리 주께서는 승리를 얻으셨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라는 그분의 즉위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하신 깊은 수치와 고통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다. 우리도 승리를 얻기까지 그분을 따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경주를 마칠 때, 그때에야 우리는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원의 대장(Captain of salvation)을 본받아 꾸준히 달려야 할 때이다. 우리 주의 몸에는 다섯 개의 상처가 있다. 이 상처들은 너희로 하여금 다섯 가지 덕을 기억하게 하며, 너희가 주를 본받아야 할 부분들이다. 오른손의 찔림은 그분의 “믿음”의 기념이다. 그는 깊은 고뇌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셨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건지실 것을 신뢰하셨다. 오, 더 많은 믿음을 주소서! 왼손의 상처는 그의 “인내”를 보여준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이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으셨고”(히 11:27), 욕을 당하시되 다시 욕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셨다. 발의 상처는 그의 “겸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고 다른 발의 상처는 그의 “인내”를 다시 상기시킨다. 그의 발은 나무에 못 박히셨다. 그의 영혼은 그 사명에 결속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옆구리의 큰 상처 속에는 그의 “사랑”이 보인다. 그 창이 그의 심장으로 향한 통로를 열었다. 예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여러분도 그가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게 되리라. 그리고 그는 자신이 면류관을 쓰신 것처럼 여러분을 면류관으로 씌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네가 이와 같이 달릴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같다. 본서는 믿음의 사람이 믿음의 능력을 상실하는 이유를 상세히 보여준다. 나아가 믿음의 능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믿음의 능력이 충만해야 한다.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릴 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도 상실하게 된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공 여부는 믿음의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본서를 통해 믿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비결을 배우라!

본서는, 복음설교를 통한 은혜의 삶 살아내기 시리즈로, 스펄전의 믿음을 주제로 전한 명 설교들 중 10편을 뽑아 번역한 것이다. 주제는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상당한 인사이트를 주는 설교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TABLE OF CONTENTS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제 1장 ➔
판권 제 2장 ➔
내지 영문 표지 제 3장 ➔
저자 소개 제 4장 ➔
VI VII 내가 할 수만 있다면? 174 제 5장 ➔
VIII IX 작은 믿음의 역사 229 제 6장 ➔
X 스펄전의_믿음의_파워_회복하기283(ebook_출판본)-21 제 7장 ➔
I 내리막길을 위한 비가(悲歌)와 믿음을 위한 노래(A Dirge for the Down-Grade, ... 제 8장 ➔
CHAPTER 1

내지 한글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찰스 해돈 스펄젼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CHAPTER 2

판권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5. 6. 16.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93755-62-4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CHAPTER 3

내지 영문 표지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정본 본문 전문

Restoring the Power of Faith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CHAPTER 4

저자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정본 본문 전문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죄인의 회개와 구원”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구원의 필수 조건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초대”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깊이 인식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굳게 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CHAPTER 5

VI VII 내가 할 수만 있다면? 174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정본 본문 전문

VI

VII

CHAPTER 6

VIII IX 작은 믿음의 역사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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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IX

CHAPTER 7

X 스펄전의_믿음의_파워_회복하기283(ebook_출판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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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CHAPTER 8

I 내리막길을 위한 비가(悲歌)와 믿음을 위한 노래(A Dirge for the Down-Grade,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믿음의 파워 회복하기』 정본 본문 전문

I

내리막길을 위한 비가(悲歌)와 믿음을 위한 노래(A Dirge for the Down-Grade, and a Song for Faith)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해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이사야 66:10

애통하는 자는 언제나 흥미로운 인물이다. 우리는 기뻐하는 자들은 무심히 지나치지만, 슬픔의 깃발을 보면 멈춰 서서 감히 묻지 못하더라도 동정하게 된다. 홀로 된 과부, 아비 없는 자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남편, 이들은 우리 인류 공통의 관심사인 이야기를 지닌 자들이다.

“자연의 한 가지 감정은 온 세상을 친족 되게 한다.”

그리고 그 자연의 감정이 슬픔의 손에서 올 때, 그 친밀감은 곧 드러나기 마련이다. 가장 고귀한 형식의 애통자는 자기중심적이지도 비천하지도 않은 슬픔을 지닌 자이다. 다른 이들을 위한 영적 슬픔을 지닌 자는 자기 개인의 고통을 탄식하는 자보다 더 고상한 부류이다. 이 사람은 단지 개인적인 고난의 불가피한 짐을 짊어진 데서 그치지 않고,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가장 탁월한 형식의 애통자는 시온에서 애통하는 자, 시온을 위해 애통하는 자, 시온과 함께 애통하는 자이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교회의 기쁨에 동참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박해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거나 불화의 급류를 지날 때에는 여러분도 함께 애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에서 애통하는 자를 크나큰 애정으로 바라보신다. 이는 그들이 그 성을 사랑함으로 왕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시온에서 애통하는 자들에게 화관으로 재를 대신하게 하시며, 찬송의 옷으로 근심하는 심령을 대신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과 하나 되어 주와 그분의 신부와 함께 슬퍼하는 자로 만드는 은혜의 역사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길이 쇠약할 때 우리도 쇠약해지는 것은 은혜가 활동 중이라는 표지이다. 이런 하늘의 애통을 배운 자들은 기쁨으로 부름을 받는다.

“그를 위해 애통하는 너희 모든 자들아, 그와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내가 이 비유를 시작할 때에는 안팎으로 애가로 가득 찬 두루마리를 펼치는 듯한 모습일 것이다.

첫째, 이것을 묻고자 한다. 누가 예루살렘과 함께 애통하는 자들인가? 둘째, “왜 그들이 여전히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위로의 잔을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려 한다. 셋째, 각자에게 이 질문을 깊이 권면하고자 한다. 왜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루살렘과 함께 애통해야 하는가?

분명히 우리 각자가 여기에 몫이 있다.

1. 누가 예루살렘과 함께 애통하는 자들인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번영을 바라는 이들은, 그 번영이 보이지 않을 때 영혼이 깊이 낙담한다. 현재 이 시대에는, 그러한 낙심의 원인이 실로 무수하다.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 중 무엇보다 더 큰 것은 교회의 복음적 영광이 쇠퇴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때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의 복음이 우리의 강단에서 나팔 소리처럼 힘차게 울려 퍼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에는 비국교도 예배당에 들어가면 복음을 들을 수 있으리라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어떤 곳에서는 노골적으로 거짓 교리가 가르쳐지고 있으며, 또 다른 곳에서는 은밀하게 퍼지고 있다.

옛날에는 자신들의 교리 체계의 형태에 관하여 서로 달랐으나 근본적인 사항에 있어서는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위대한 대속적 희생, 그의 부활, 그리고 악인에 대한 심판은 교회 안에서 결코 논쟁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문시되고 있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말로는 존중될 수 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을 인격이 아닌 단순한 영향력으로 보는 자들에게 어떤 믿음을 둘 수 있겠는가?

하나님 자신은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만물의 영혼, 즉 실상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범신론(汎神論)은 가면을 쓴 무신론(無神論)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이해해온 대로의 성경의 완전 영감
(完全靈感)은 수천 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공격받고 있다.

아담의 타락은 우화로 치부되며, 원죄와 전가된 의(義) 또한 함께 비난받는다. 은혜의 교리들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조롱당하고, 율법의 엄숙한 제재마저도 암흑시대의 허깨비로 비웃음을 당하고 있다. 수년 동안, 복음의 이 위대한 진리들로 인해 죄인들은 회심하고 성도들은 세워지며, 세상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교양으로 무장한 된 상류계층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낡은 것이다. 이들은 민주적 사회주의로 세상을 재생시키고, 중생이나 죄 사함 없이 그리스도를 위한 나라를 세우려고 한다. 참으로, 주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제거하신 것은 아니나, 그들은 대부분 오바댜가 선지자들을 굴에 숨긴 것처럼 숨겨져 있다.

오늘날의 복음은 우리가 구원받았던 그 복음이 아니다. 내게는 그것이 끝없이 변하는 꿈의 얽힘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 창시자들의 고백에 따라, 시대의 산물이며, 자화자찬하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괴물이며, 자만의 솥에서 떠오른 찌꺼기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교회 자신도 복음을 왜곡하거나 부정한다. 그것은 신적(神的)이지 않다. 그것은 그 뒤에 영감된 성경이 없다. 그것은 십자가에 닿을 때 적대자가 되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말할 때 거짓된 친구가 된다. 대속적 대리(substitution)의 진리에 대한 비웃음이 많다. 보배로운 피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분노한다. 한때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영광을 높이던 강단들이, 이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조롱하는 자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 사실, 이제 사람들은 믿음이 아니라 의심에 의해 구원을 받으려 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은, 백성의 교사들이 그들을 그릇되게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무겁다. 심지어 국가적 관점에서도,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은 심각한 염려의 이유를 본다. 쿠퍼(Cowper)는 그의 시대에 다음과 같은 지금도 기억할 만한 말을 노래하였다:—

“민족들이 죄악 가운데 멸망할 때,

그 시작은 교회 안의 나병에서 비롯된다.

샘물을 지키고 맑게 유지하는 데 열심을 다해야 할

제사장은 무심히 졸고 샘가에서 잠든다.

다른 이들은 그 샘물을 오염시켜, 양떼가 마시게 한다.

순진한 양들은 그것을 순수한 것으로 믿고,

치유의 수단으로 인해 오히려 전염병에 감염되어

서로에게 전염되어 온 나라가 썩어간다.

그리하여 진리는 잠잠해지고, 이단만이 설교하며,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된다.”

글래스고시(city of Glasgow)의 오래된 표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글래스고는 번영하리라”였다. 우리나라는 말씀의 전파로 번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 아래에 개신교 신앙으로 인해 존귀한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만일 그녀가 이 신앙에서 떠난다면 그 위대함을 유지할 근거는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애통해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애통의 이유는, 가시적 교회의 거룩함이 흐려지는 것을 볼 때이다. 내가 잘못이 없는 곳에 잘못을 찾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보면, 삼십 년 전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본받게 된다. 오락에 대하여 신앙고백자들은 지나치게 느슨한 길로 나아갔다. 더 나쁜 것은, 이제 교회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때 극장에 가는 것을 반대하던 비국교도들이, 이제는 극장을 교회로 끌어들이고 있다. 많은 학교 강당들이 연극 공연을 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엄격히 법을 집행한다면, 연극 허가를 받아야 할 곳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바자회나 장식 시장(fancy fair)에서 벌어진 일들에 관하여 감히 언급조차 하지 못하겠다. 만일 그것들이 품위 있는 세상 사람들이 준비한 행사였다면, 그들이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 있었겠는가?

어떤 어리석음이 시도되지 않은 것이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이들,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양심에 있어서, 어떤 어리석음이 지나치다고 여겨진 적이 있었는가? 세상은 이런 이들의 고상한 주장들을 위선이라고 본다.

참으로, 나 역시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하나님의 교제 안에 있는 자들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입고 광대 노릇을 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은밀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씨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드러난 도박과 세속적 유희 안에서는 세상과 농락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옳고 그름이 자리를 바꾼 것인가? 참으로, 마음에 은혜의 역사가 있는 자들에게는 합당한 행동의 절제가 있어야 하며, 경거망동은 악한 영이 지배하고 있다는 표지이다.

아,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엄격했던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시대에는 결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청교도적 엄격성라는 끔찍한 것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지금 우리는 그와 같은 폐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자유에서 방종으로 넘어가 버렸다. 우리는 의심스러운 경계를 넘어 위험한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이제 어디에서 멈출지 예언할 자가 없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의 거룩함은 어디에 있는가? 아! 교회가 자신이 고백하는 대로였다면, 그녀는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으며” 그리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위엄 있었을” 것이다(아 6:10). 그러나 지금은 꺼져가는 불꽃 같고, 존경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회의 영향력의 척도는 교회의 거룩함으로 측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신앙을 고백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가정 생활과 사업 생활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다면 교회는 세상 속에서 위대한 능력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영적 생명력과 거룩함이 이렇게나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며 예루살렘과 함께 애곡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른 이들은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나병이 터져 나온 것처럼 심각하게 여긴다.

더욱이,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녀의 거룩한 열정이 식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여전히 어떤 신자들 안에는 열정이 있으며, 가장 훌륭한 종류의 열정이 있다. 이는 성령 하나님께서 완전히 우리를 떠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 행하고 감행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주를 증언하는 그리스도인 남녀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들은 미지근한 시대를 향한 살아있는 항거이다. 우리는 여전히 은혜받은 젊은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콩고강의 열병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 가운데 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려 한다. 우리는 또한 구속자의 나라를 전진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는 충성된 자들의 풍성한 씨앗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상태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은 아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광신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심지어 지나치게 열정적이라는 평가조차도 거의 듣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열정의 온도보다 아래에 있다는 징조이다. 세상이 우리를 광신자라고 부를 때, 우리는 비로소 주께 합당한 열정의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실제로 광신적이라면, 그것은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고려할 때,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면 우리는 그저 진지할 뿐이고, 차가운 세상이 우리의 열기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라 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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