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기도 배우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기도 배우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93755693
• 전자책 ISBN: 9791193755686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사울은 단순한 대적자가 아니라 박해자가 되기까지 하였다. 과연 박해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기대할 수 있는가? 박해자가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는가? 다소 사람 사울은 명백히 미움과 잔혹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런 자가 어떻게 기도할 수 있었겠는가?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본질이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요일 4:7). 그러나 사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를 따르는 자들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품고 있었으며, 그들을 감옥에 끌고 갔고, 죽음에 넘기기까지 동의하였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는 어떤 사람의 종교든 무종교든 그것 때문에 그를 박해할 권리가 없다. 그가 가톨릭이든, 유대인이든, 이슬람인이든, 무신론자이든 간에, 우리는 그의 견해가 아무리 잘못되었더라도 결코 그에게 부당하게 행하거나, 그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정의롭고 정당하게 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의 종교적 신념이 무엇이든지 간에, 아니면 종교가 없든지 간에 말이다. 불의는 결코 진리의 친구가 아니다. 우리는 악의를 무기로 삼아 하나님의 싸움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오류에 빠진 자를 미워하고, 그들을 멸시하거나 악한 일을 바라거나 실제로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과는 거리가 먼 태도이다. 우리는 사탄을 사탄으로 내쫓을 수 없으며, 오류를 폭력으로 교정할 수 없고, 미움을 미움으로 이길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무기는 사랑이다. 만일 바울이 그가 오류라고 생각했던 것을 사랑으로 무너뜨리려 했다면, 비록 그가 오해했을지라도, 그렇게 큰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상대가 누구든지, 의인이든 악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예수의 이름을 모독하게 만들려 하였다. 그가 예수를 사기꾼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억압하려 하였고, 그들의 믿음을 빌미로 그들을 박해하였다. 그런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으시겠는가? 만일 여러분 안에 미움의 영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경건을 무효로 만들며, 여러분의 기도를 기도가 아니게 만든다. 사랑 안에야말로 기도의 본질이 있으며, 기도는 사랑의 꽃이며, 그 완성이어야 한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게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미워하고, 나의 교리를 강압적으로 강요하려 한다면, 나는 그 손을 들어 기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악의로 가득한 마음은 자기가 드리는 제사를 더럽힌다. 내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여기며 실제로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성도들이여, 만일 여러분이 경건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규칙적으로 무릎을 꿇어 겉으로 경건한 자세를 취하든 간에, 거기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의 기도는 아무 증거가 되지 못한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가족 기도와 기도 모임, 이것이 기도의 흉내에 불과할 뿐, 참된 기도가 아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았고, 성찬에도 자주 참여하였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모두 모조 경건일 뿐이다. 만일 여러분이 거룩을 추구하지 않고,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려 애쓰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가짜 경건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는 때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일 때이다. 그분께서 우리의 뜻을 들어주시는 때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할 때이다.”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기도가 무엇이며 기도의 중요성과 열매를 보여준다. 특히 신자들이 기도의 힘을 상실하는 이유와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공 여부는 기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기도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기도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기도 배우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기도 배우기
찰스 해돈 스펄젼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기도 배우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5. 6. 30.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93755-68-6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Learning How to Pray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죄인의 회개와 구원”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구원의 필수 조건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초대”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깊이 인식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굳게 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VI VII 경건의 증거인 기도 170
VIII IX 시기 놓친 기도 219
X 스펄전의_기도배우기269(ebook)-17
I 성령으로 기도하기(Praying in the Holy Ghost)
성령으로 기도하기(Praying in the Holy Ghost)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유다서 20절
이 말씀은 사도가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경건한 자들 사이의 대조를 지적하고 있는 본문 중에 나타난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조롱하며, 과장된 말을 하고, 경건하지 않은 정욕을 따라 행하고 있다. 반면에 의인은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자신을 지키고 있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마음속의 독을 나타내어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으나, 의인은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그들 안에 있는 새로운 원리를 드러내고 있다.
경건하지 않은 자의 입에는 쑥이 있으나, 그리스도인의 입술에서는 경건의 동정심에서 나오는 순결한 꿀이 떨어진다. 거미가 꿀벌이 꿀을 빠는 바로 그 꽃에서 독을 취한다고 하듯, 악인은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동일한 자비를 죄로 남용한다. 빛이 어둠과, 생명이 죽음과 얼마나 다른가? 마찬가지로 믿는 자는 경건하지 않은 자와 그렇게나 다르다.
우리는 이 대조를 뚜렷하게 간직해야 한다. 악한 자가 더욱 악하게 될 때, 우리는 더욱 거룩하고, 더욱 기도에 힘쓰며, 더욱 경건하여 옛적의 선한 여호수아와 같이 말하자.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주목할 것은 본문은 문맥 속에서 일정한 순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의인은 무엇보다 먼저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는 자로 묘사된다. 믿음은 첫 번째 은혜요 경건의 뿌리이며 거룩함의 기초요 신앙의 여명이다. 이 믿음에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초 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길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믿음의 뒤를 잇는 것은 무엇인가? 믿음의 맏아들은 무엇인가? 믿음이라는 포도나무가 강건하게 자라 열매를 맺을 때, 가장 먼저 익은 송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이다.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도함”이 아닌가? 기도가 없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이고, 믿음이 풍성한 자는 곧 간구함에 풍성하게 된다.
믿음은 어머니이고 기도는 그 자녀이며, 이 둘은 거의 떨어져 있지 않다. 믿음은 기도를 품에 안고 다니며, 기도는 믿음의 가슴에서 생명을 빨아먹는다. 믿음 위에 세워짐은 곧 간절한 간구로 이어진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믿음을 드러내고, 그 후 갈멜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기 위해 물러갔다.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도함” 다음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이다. 기도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속적인 자각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솟아남이 따른다. 기도는 제단을 세우고 제물과 나무를 정리하여 놓는다. 그 후 사랑은 제사장처럼 하늘에서 거룩한 불을 가져와 그 제물에 불을 붙인다.
믿음은 은혜의 뿌리이며, 기도는 백합화의 줄기이고, 사랑은 티 없는 꽃이다. 믿음은 구주를 바라보며, 기도는 그분을 따라 집에 들어가고, 사랑은 향유를 담은 옥합을 깨뜨려 그분의 머리에 부어 드린다. 그러나 사랑의 경건한 누림을 넘어서 한 단계가 더 있다. 그것은 건물의 머릿돌인 믿음의 기대이다.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며”(유 21절).
멀리 보는 소망은 소망이 세운 계단을 올라가, 기도의 무릎 위에 꿇고, 사랑이 연 창문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오시며 그의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몫이 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기도의 가치를 보라. 기도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사랑의 강건함과 성장의 전조이며 뒷받침이다.
본문으로 직접 들어가 보면, 사도는 기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나, 한 종류의 기도만을 언급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기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온 참된 기도 두 개가 정확히 동일할 수는 없다고 본다. 뛰어난 화가는 같은 그림을 여러 번 반복하여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붓을 쥘 때마다 새로운 생각을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이처럼 기도의 창시자이신 성령 하나님, 곧 거룩한 화가께서는 여러분의 백성들의 마음판에 기록하시는 기도들을 거의 동일하게 만들지 않으신다.
기도는 여러 종류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진노를 가로막는 기도, 곧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며, 그의 맹렬한 분노를 거두시고, 그의 막대기를 거두시며, 그의 칼을 칼집에 넣어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재앙이 두려워질 때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질투하심을 일으키게 되었을 때 반드시 드려야 할 기도이다.
다음은 간구의 기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후한 손에서 복을 간청하며 긍휼을 구하는 기도이고,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있는 그의 풍성함으로 우리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기도가 있다. 이 기도는 기도자가 자신에 관한 문제를 주로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중보기도도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처럼 기도자가 소돔을 위하여 중보하거나, 이스마엘이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이런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만큼이나 풍성하게 드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긍휼의 보좌를 영적인 이기심을 나타내는 장소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기도는 공개적일 수도 있고 개인적일 수도 있으며, 소리내어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길게 지속되는 기도일 수도 있고, 짧은 탄식 같은 기도일 수도 있다. 회개의 고백으로 간을 할 수도 있고, 감사의 향기로 가득할 수도 있다. 음악에 맞추어 노래할 수도 있고, 신음하며 눈물로 쏟아낼 수도 있다. 여름의 꽃들이 가지각색이듯이 기도도 이처럼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다양한 기도들이 하나님께 열납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면에서 반드시 같아야 한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 안에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 안에서 드려지지 않은 기도는 육체 안에서 드려진 기도이다. 육체에서 난 것은 곧 육체이다. 성경은 육체에 속한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모든 것은 더럽혀지고 훼손되었기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하늘도 그분의 눈에 깨끗하지 않다면, 땅에서 난 기도가 어찌 그분께 열납될 수 있겠는가?
열납되는 참된 경건의 씨앗은 반드시 하늘의 창고에서 나와야 한다.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기도뿐이다. 비둘기는 자기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는 편지밖에는 운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나온 기도만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화살을 그분께 되돌려 쏘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기록하신 그 소원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복을 내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욕망은 하나님께 아무런 힘도 없다.
이 아침에 이 위대한 진리를 형제들의 마음에 깊이 새기기 위하여, 나는 본문의 짧은 구절을 다섯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1. 본문을 도가니로 사용하여 우리 기도를 시험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철저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살펴보라. 본문을 정련용 도가니 혹은 용광로, 혹은 시금석으로 삼아, 여러분의 기도가 참된 것이었는지를 판별하라. 이것이 시험 기준이다. 그것이 실제로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도함”이었는가?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외국어(로마 가톨릭교회의 라틴어 기도문을 의미함-역자주)로, 즉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드리는 기도, 곧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를 드리는 자들을 시험할 필요는 없다. 그 기도는 성령 하나님 안에서 드려진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 자신의 영조차 그 기도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성령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실 수 있겠는가? 제사장들의 신비한 말이나 라틴어의 잡음은 결코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판단은 우리 자신에게 돌리자.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 어릴 적부터 정해진 기도문을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던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은 아마도 그 기도문을 침대 옆에서 외우지 않고는 하루일과를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밤에 잠들기 전에도 그 정해진 말을 반복하지 않으면 불안했을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드릴 수 있을까? 정직하게 대답해 보라. 여러분은 과연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였는가? 그 정해진 기도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조금이라도 역사하신 적이 있는가? 성령 하나님께서 정말로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 기도를 느끼게 하셨는가?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거룩한 겉모양만 덧씌운 채 하나님을 조롱한 것은 아니었는가? 너무도 익숙한 형식을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는 그 습관이지 않았는가? 실제로 마음은 전혀 담기지 않고 진정성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마음이 없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만일 기도를 통해 죄를 더해졌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하며 무릎을 꿇었지만, 실제로는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입술의 말은 하나님께 혐오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책이나 암기한 형식을 사용하여 칠십 년 동안 성실하게 종교의식을 수행하였다고 해도, 그 모든 칠십 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참으로 기도한 적이 없었을 수 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기도하지 않는, 즉 경건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우리가 한 번도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도”한 적이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예배한 적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여러분이 심판받지 않도록 스스로 판단하라.
그러나, 정해진 기도문을 결코 사용한 적이 없고, 어릴 적부터 형식적인 기도를 멀리하고 심지어 혐오해온 자들 중에도, 자신들의 기도를 철저히 시험해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즉흥적인 기도를 드려 왔다. 이런 즉흥적 표현은 당연히 어느 정도 마음의 작용과 주의를 필요로 하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없이 기도하였을 수 있다. 우리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즉흥 기도에 너무 익숙해지면, 실제로는 외운 기도를 반복하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게 될 수 있다. 연습을 통해 유창함을 얻게 되면, 말은 오 분, 십 분, 혹은 십오 분 동안 끊임없이 흘러나올 수 있으나, 그 마음은 허영 속에 떠돌거나 무관심 속에 정체되어 있을 수 있다. 몸은 무릎을 꿇고 있을지라도, 영혼은 멀리 날아가 긍휼의 보좌를 떠나 있을 수 있다.
우리의 공적 기도가 어느 정도까지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도함”이었는지를 살펴보자. 이 자리에서 서 있는 설교자는 하나님께 간청하며, 이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살피시기를 구한다. 만일 그가 단지 공식적인 직무로서 공적 기도를 수행하였다면, 즉 경건한 회중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목회자의 의무이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기도를 드렸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큰 책임을 질 것이 많다. 이처럼 큰 무리를 이끌며 성령 하나님의 도움 없이 기도를 인도하였다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다.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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