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기도의 능력 누리기』
서지정보 및 디지털 저작권 안내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정품 전자출판물 인증
• 도서명: 『스펄전의 기도의 능력 누리기』
• 저자: 찰스 H. 스펄전
• 번역: 나무와열매 번역실
• 발행처: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Tree and Fruits Books)
• 종이책 ISBN: 9791193755730
• 전자책 ISBN: 9791193755723 (EPUB 3.0 / 고화질 PDF)
• 정가: 10,000원
• 본 전자출판물은 저작권법 및 디지털 권리 관리(DRM) 규정에 따라 서점 앱 및 정식 인증 독자 외의 무단 복제, 배포, 추출을 엄격히 금합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책을 펴내며 — 마음이 머무는 문장
“다시 말하거니와, 이 기도를 조건부로 드리지 말라. “주의 뜻을 다 행하기를 가르치소서. 단 한 가지는 제외하고”라고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어떤 신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성경의 특정 구절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아마도 그것들이 교리적으로 불편하거나, 신앙의 의식이나 교회의 훈련에 있어서 마음에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그런 불편한 구절들을 아예 성경에서 풀지 않으려 하거나, 펼쳐도 대충 넘어간다. 그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구절만을 읽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만일 여러분과 성경 구절 사이에 다툼이 있다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안에서 즉시 화해하라. 여러분이 성경을 바꾸려 하지 말고, 여러분의 신조를 바꾸라. 여러분의 삶을 바꾸라.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라. 성경은 옳고 여러분은 틀렸기 때문이다.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진실되게 드린다면, 그것은 곧 “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하나님의 책을 깊이 살피겠노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여러분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교회에 맹목적으로 다니며, 그 교회가 성경적인지 아닌지조차 깊이 살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눈먼 방식의 신앙 행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책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아야 한다. 성경을 탐구하라.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목사가 설교했기 때문에 그 말이 진리라고 믿는다. 내가 설교하는 말이라도,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단 한 마디도 믿지 말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우리는 모두 오류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소망하지만, 우리는 영감 받은 자가 아니며, 그런척하지도 않는다.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의 책을 탐구하고, 거기서 발견한 진리에만 따라 살라. 그 외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말라. 성경이 인도하는 곳으로는 반드시 따라가야 하며, 그 인도하심을 따를 때에는 어둠 가운데 걷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힘써 구하라. 그리고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실행하라. 그리고 기도하라.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상, 여러분 자신에게 가장 유쾌하게 들리는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극히 높은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것을 제거해 주시도록. 주께서 우리가 이와 같이 기도하게 하시고, 이와 같이 응답받게 하시기를 바란다. - 40-41쪽 중에서 어떤 신앙고백자들은 기도 중에 기대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대가 없으면 기도의 영혼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네 소원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그러나 그분이 자비를 담아 주실 손은 기대의 손이다. 여러분은 그 복을 받을 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기대하게 하시고, 그 기대 속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면, 그때 은혜를 보내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을 바라보기만 해도 곧 얻게 될 수 있다. 그들의 기도는 그들 자신을 통해 응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 예배에서 하나님께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끝난 후 그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왜 그러니?” 아들은 말했다. “그러면, 제가 아버지의 기도를 대신 들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어떤 기도 말이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하셨잖아요. 아버지 돈이면 그거 다 도와드릴 수 있잖아요.” 나는 이 이야기도 더 좋다. 기도 모임에서 한 경건한 사람이 기도 제목 목록을 읽다가, 한 가난한 과부가 그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간구를 보았다. 그는 그것을 읽다가 멈추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문제로 주님을 번거롭게 하지 맙시다.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수많은 기도들이 바로 이런 종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해주시기를 기도하지만, 정작 그것은 우리가 직접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명백한 무례이다. 만일 우리가 진심으로 들으심을 기대하며 기도한다면, 응답은 자주 우리 스스로 그분께서 들으셨음을 깨닫는 자각으로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말하길,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 하였구나. 그렇다면 일어나 내 나라가 임하도록 일하라. 너희가 말하길,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 하였구나. 그렇다면 가서 여러분 자신이 내 이름을 거룩히 하라.” 오, 우리가 그런 기대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실천적 행동을 가르쳐 주어서,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응답을 받는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이는 약속된 바와 같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 출판사 서평
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기도의 능력 누리기라는 제목처럼,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으며 그리스인의 삶에 영향력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신자들이 기도의 힘을 상실하는 이유와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공 여부는 기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기도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기도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기도의 능력 누리기이다.
💌 편집실의 편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차례 (목차)
내지 한글표지
스펄전의 기도의 능력 누리기
찰스 해돈 스펄젼 지음
나무와열매 번역실 옮김
판권
스펄전의 기도의 능력 누리기
저자_ 찰스 해돈 스펄전
역자_ 나무와열매 번역실
1판 발행_ 2025. 7. 28.
발행처_ 나무와열매
발행인_ 변길용
등록번호_ 제2023-23호
등록일자_ 2023. 3. 8.
경기도 광주시 도척로 330번길 24 나동 202호
전 화_ 070-8064-7651
이메일_ treeandfruits@naver.com
ISBN_ 979-11-93755-72-3
*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내지 영문 표지
Living in the Power of Prayer
by Charles Haddon Spurgeon
Written by
Charles Haddon Spurgeon
Transrated by
Tree & Fruits Translati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tree and fruits
Gyeonggi, Korea
저자 소개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에게 배우는 위대한 복음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여러분이 목사라면 여러분의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여러분이 듣는 설교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음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복음은 그렇게 힘없지 않다. 복음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결코 무능하지 않다. 복음은 전능하다. 복음은 불가능이 없다. 복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린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다.
현 시대에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평화인가? 사랑인가? 상처 치유인가? 관계회복인가? 성공인가? 자유인가? 행복인가? 위로인가?
아니다!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이다.
나는 이 시대의 목사들의 입에서 다시 복음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본서는 찰스 해돈 스펄전이 19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선포한 복음 설교를 모은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복음으로 읽는 현대교회사 강의노트』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 생애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사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영적 침체를 겪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런던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빈곤, 범죄,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펄전은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1854년, 만 20세의 나이로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부임한 스펄전은 그의 열정적인 설교로 인해 곧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는 그의 저서 『잊혀진 스펄전』(The Forgotten Spurgeo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펄전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설교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적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Murray, 1966, 45).
그의 사역은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매주 수천 명의 청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 스펄전은 또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스톡웰 고아원(Stockwell Orphanage)을 설립하여 고아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이는 그의 복음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은 당시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2. 설교의 중심 내용
첫째, 죄에 대한 강조이다. 찰스 스펄전은 “회개의 눈물”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옥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타협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죄인의 회개와 구원”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구원의 필수 조건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능해집니다.
둘째,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역설하였다. 그는 “은혜의 초대”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3장 23-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변화이며,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의 풍성함”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의롭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심성이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참된 기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게 되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회개와 믿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이기며,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고, 그 안에서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이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에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 없이는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는 “보혈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보혈이 공로”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높이며, 그 공로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섯째, 오직 믿음이다. 그는 “믿음의 본질”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믿음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믿음은 우리를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곱째, 기도의 능력이다. 그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며, 영혼의 생명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뢰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며,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는 우리의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며, 복음 전파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여덟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의로움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깊이 인식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열매”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는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굳게 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스펄전은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Dallimore, 1984, 102).
3. 영향
첫째,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으며, 그의 사역은 영국 교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립 교회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매주 5,000명 이상의 청중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의 동료였던 조셉 파커(Joseph Parker)는 『사람들의 성경』(The People's Bible)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찔러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였다(Parker, 1892, 215).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한 사건과 비교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스펄전은 또한 침례교목회자대학(Pastors' College)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젊은 설교자들에게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신앙인 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스펄전의 유산을 이어갔다.
둘째,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한 복음주의 신학 확산이다. 스펄전은 설교 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교문과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는 「검과 꼬챙이」(Sword and the Trowel)』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소식을 전파하였다.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은 『복음주의의 역사(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펄전의 문서 사역은 복음주의 운동의 세계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저작물은 신학적 깊이와 실천적 적용을 겸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적 지침서가 되었다(Bebbington, 1989, p. 165).
또한, 스펄전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며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통찰로 인해 현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 4장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구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4. 신학적 특징
스펄전의 신학은 칼빈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적 열정과 실천적 경건을 겸비하였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의 강조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수용하였으나,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는 우리의 공로나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Spurgeon, 1856, 89).
이는 에베소서 2장 8-9절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스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구원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의 핵심”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옷입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Spurgeon, 1886, 22).
이는 로마서 5장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을 반영한다.
셋째,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그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의 최종 권위로 삼아야 합니다(Spurgeon, 1876, 5).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복음 전도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이다. 스펄전은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Spurgeon, 1860, 102).
또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Spurgeon, 1889, 47).
이는 야고보서 2장 17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스펄전은 복음 위에 견고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본 설교 시리즈는 복음 설교가 무엇인지를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스펄전은 설교자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설교자는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낸다고 말하며, 다른 설교자는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말한다. 둘 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설교자는 본 시리즈를 통해 복음 설교를 배우시기를 바라며, 평신도들은 큰 은혜의 바다에 빠져 마음껏 영적인 유영을 즐기시기를 바란다.
VI VII 간구의 기도 172
VIII IX 솔로몬의 간구 224
X 스펄전의_기도의_능력_누리가269끝(ebook)-18
I 기도 배움의 자리(At School)
기도 배움의 자리(At School)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시편 143:10
이 기도는 행함에 관한 기도이다. 그러나 율법적인 색채는 전혀 없다. 이 기도를 드린 사람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시편의 2절에서 그는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구원을 찾는 죄인의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주어진다.
이 기도는 이미 구원을 받은 자의 기도이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섬김에 자신을 바치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배우기를 원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문맥을 살펴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자신의 원수들에게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으로 여겼다. 그는 자신을 잔혹하게 핍박하는 자들을 언급하였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와줄 자가 하나도 없음을 고백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주는 나의 하나님이심이시니”라며 기도하였다.
확신하건대, 해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비방하려는 자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면, 가장 좋은 방어는 흠 없는 삶이다. 만일 많은 자들이 여러분이 넘어지기를 바라며 그 실수를 엿보고 있다면, 여러분의 안전은 거룩함에 있다. 여러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는 바로 이것이다.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여러분이 바르게 행하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다.
이 기도는 시편 기자의 마음에 있는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압도당하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부르짖었다.
“하나님이여,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그는 여러 갈래의 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이르렀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한 것이다. 나는 이 기도를 모든 근심과 혼란에 빠진 자들에게 추천한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판단을 사용해보았고, 어쩌면 친구들과도 깊게 의논해 보았으나, 여전히 길이 막혀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이 기도를 마음속 깊이 올려 드리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이제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이 짧은 기도를 풀어 설명할 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첫째로 이 기도 자체에 대해 살펴볼 것이며, 둘째로 그 응답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기도이다.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이 기도를 하는 자는 죄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죄는 결코 하나님의 뜻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극도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녀들을 위해 불쏘시개가 필요하였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 “만물이 다 너희 것이요”(고전 3:21)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는 이 말씀에 힘입어 이웃의 장작더미에서 약간의 장작을 가져오려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또 하나의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곧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출 20:15)는 말씀이다. 그는 그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였고, 그래서 장작을 그냥 두었다. 그는 나중에 그 말씀이 자신을 큰 범죄에서 구해주었음을 기억하였다.
이것은 분명하다. 상황이나 느낌이 어떠하든, 잘못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마귀의 섭리도 있고 하나님의 섭리도 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 하였을 때, 마침 그리로 가는 배를 만났다. 아마 그는 “이거야말로 섭리로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섭리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르게 행하여야 하며, 그러므로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겸손한 기도이기도 하다. 또한, 깊은 영적 체험을 가진 자의 기도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바로 그러하기에, 그는 자신이 걸어야 할 모든 걸음에 있어서 가르침이 필요함을 느낀다. 여러분이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너무 교만하여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기숙학교를 졸업한 학생만이 “나는 기숙학교 교육을 마쳤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는 자는 매우 교만한 자이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자, 세상을 가장 잘 아는 자,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자는 언제나 자신에 대해 가장 낮은 생각을 품는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지혜를 피하는 지혜이다. 그리고 여호와께 말한다.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이것은 거룩한 기도이며, 겸손한 기도이며, 모든 거룩하고 겸손한 마음에 호소하는 기도이다.
또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것은 유순한 기도이다.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단지 “주의 뜻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하지 않는다. “주의 뜻을 행하기를 가르치소서”라고 한다. 이는 그 사람이 매우 무지하여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이든 행하는 방법을 배워야 함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아이에게 걷는 법을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이가 걷지 않는다. 아이에게 걷기를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이 에브라임을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그의 팔을 붙잡아 이끄심으로써 말이다. 하나님은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그들의 팔을 붙잡았노라”(호 11:3)고 말씀하셨다. 이는 마치 유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행하기를 가르치소서.”
주여, 내 머리만 가르치지 마시고, 내 마음만 가르치지 마시고, 내 손과 발도 가르치소서.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는 자는 유순하며 배움을 준비한 자이다. 이 기도는 또한 순응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이 기도의 큰 장점이다.
“나를 가르쳐 (나의 뜻이 아니라)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그는 자신의 뜻을 제쳐둔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주여, 주의 뜻 중에서 나에게 유익하고 기쁜 부분만 행하도록 가르치소서.”
오히려 그는 “주의 모든 뜻”을 행하기를 구한다.
“만일 주의 뜻 중에서 내가 기뻐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을 내게 가르치소서. 마침내 내 온 영혼이 주의 뜻에 일치하게 되며, 그것이 내게 기쁨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주의 뜻이기 때문에 내가 기뻐하게 하소서.”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께 복종하는 기도이다. 어쩌면 신자가 드릴 수 있는 가장 높은 기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혜의 문 앞에 처음 서 있는 배우는 자에게도 어울리는 기도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이것이 믿음의 기도라는 점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이 고백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또한,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시어 교사가 되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담겨 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에게는 두 가지 결함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분이 실제로 지니신 위대하신 만큼 크게 여기지 않는다. 동시에 하나님이 얼마나 낮아지실 수 있는지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양쪽에서 다 잘못 판단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높이를 알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이 시련은 너무 사소하니 하나님 없이도 견딜 수 있겠지.”
우리는 별들을 다스리시는 그 높으신 하나님이 자신을 가장 낮추셔서 교사가 되시므로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행하는 법을 가르치신다는 사실을 잊는다. 우리는 언젠가 한 위대한 나라의 대통령이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이를 대단한 겸손이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천군 천사들의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그의 작은 자녀들에게 내려오셔서 주의 뜻을 행하도록 가르치신다는 것에 대하여는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 기도는 실로 귀한 것이다. 이는 거룩하며, 겸손하며, 유순하며, 순응하며, 믿음에 찬 기도이다.
이제 그 실제 간구의 내용을 살펴보자. 명확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것은 실제적인 기도이다. 그는 단지 “주의 뜻을 알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매우 훌륭한 기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에 머물러 있고, ‘행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이며 듣고 잊어버리는 자들이다.
일온스의 실천이 일톤의 지식보다 낫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통적인 믿음일지라도, 만일 거룩하지 않은 삶이 동반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정죄를 더욱 증가시킬 뿐이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아는 것이 많을수록 심판도 클 것이다.
또한, 시편 기자는 “주여, 주의 뜻에 대하여 말하게 하소서”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주의 뜻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고 그것을 듣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행하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낫다. 만일 ‘말하는 것’(talk)이 ‘걷는 것’(walk)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더 많은 성도들이 있었을 것이다. 곧, 바르게 말하는 자들이, 또한 바르게 걸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많은 경우 말이 삶보다 낫다. 차라리 침묵하는 혀가 부정한 삶보다 낫다. 실제적인 경건이 가장 아름다운 수사보다 낫다.
이 기도는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이다. 어떤 이들은 모든 신비를 배우기를 갈망한다. 신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큰 특권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관심은 깊은 교리, 신비로운 부분을 아는 데에 있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예언에 몰두하하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그들은 혼란을 야기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예언 해석 이론들을 보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각각의 이론은 앞선 것보다 더 터무니없다. 아마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참으로, 예언들과 모든 지식을 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사도는 “내가 또한 더욱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고 하였다. 그 길은 바로 겸손하고 경건한 의존과 믿음의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주여, 나는 주의 뜻을 아는 것을 가장 간절히 원하나이다. 그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그러면 나는 만족하리이다.”
나는 이미 이 기도가 “우리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라는 간구임을 말하였다. 아, 우리 마음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렇게 기도하는가
“주여, 내 뜻대로 되게 하소서.”
이것이 인간 본성이 자연 그대로 두었을 때 처음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여호와가 누구기에 내가 그의 음성에 복종해야 한단 말인가? 내 뜻대로 되게 하소서.”
이런 욕망은 때때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도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욕망이 오래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주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으나, 우리의 반역하는 악한 마음은 속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무료 미리보기(20쪽)는 여기까지입니다. 구매하시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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