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 받기
10 예수 그리스도의 복 받기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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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내가 읽는 많은 “예수에 대한 아름다운 글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본 그리스도를 묘사한 것 같다. 그들은 그분을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는 알고 있지만, 인격적인 교제 안에서 아는 분은 아니다. 오, 새뮤얼 러더퍼드나 조지 허버트 같은 이들이 쓴 “그리스도의 생애”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친밀한 친구로 아는 달콤한 영혼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19세기의 계몽된 시대에도 적당히 어울리는 종교를 제시한 인물이다. 당분간 그의 종교도 유용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예수는 ‘비교적 나은 종교 교사’로 평가되고, 약간 존경받는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주님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다행히도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최고 지성과 문화에도 부합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를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로 드러냈을 것이다.” 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가끔 그분의 교리들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칭의, 속죄, 선택 교리, 이런 것들은 “옛 시대의 낡은 교리”라 하며, 그 의미를 뜯어고쳐 시대에 맞게 만든다. 그 결과, 은혜 교리는 “더 이상 믿는 사람이 없는 낡은 신앙”으로 취급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비평에 의해 다듬어지고, 그분의 “솔기가 없는 옷”(요 19:23)은 벗겨져, 서구의 재단사에게 맡겨진 것처럼 현대적 옷으로 다시 꾸며진다. 그리고 이렇게 “개정된 예수”가 새로운 종교 스승으로 소개된다. 그들은 말한다. “예수를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오늘의 세상은 잠시 동안 예수를 관용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다. 이 시대의 “진보”는 너무나 놀라워서, 아마 머지않아 그리스도와 기독교조차 시대에 뒤처졌다고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어리석은 지혜의 결과는 무엇인가? 오직 혼란, 불신앙, 무질서, 그리고 온갖 악한 결과들뿐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그분을 제외시킨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리는 오직 이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는 사신(使臣)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즉, 왕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의 권위가 아닌 그의 권위로 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교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유익하거나 편리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전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 교리들을 믿는다. 그것이 시대의 “계몽”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진리이며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이다. 세대가 어떠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반드시 그를 미워할 것이다. 세상이 차라리 대놓고 그리스도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희망적인 징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유다의 입맞춤으로 그분을 속이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오직 이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 받기』 중에서
📖 책 소개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 받기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오늘날 내가 읽는 많은 “예수에 대한 아름다운 글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본 그리스도를 묘사한 것 같다. 그들은 그분을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는 알고 있지만, 인격적인 교제 안에서 아는 분은 아니다. 오, 새뮤얼 러더퍼드나 조지 허버트 같은 이들이 쓴 “그리스도의 생애”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친밀한 친구로 아는 달콤한 영혼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19세기의 계몽된 시대에도 적당히 어울리는 종교를 제시한 인물이다. 당분간 그의 종교도 유용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예수는 ‘비교적 나은 종교 교사’로 평가되고, 약간 존경받는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주님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다행히도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최고 지성과 문화에도 부합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를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로 드러냈을 것이다.” 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가끔 그분의 교리들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칭의, 속죄, 선택 교리, 이런 것들은 “옛 시대의 낡은 교리”라 하며, 그 의미를 뜯어고쳐 시대에 맞게 만든다. 그 결과, 은혜 교리는 “더 이상 믿는 사람이 없는 낡은 신앙”으로 취급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비평에 의해 다듬어지고, 그분의 “솔기가 없는 옷”(요 19:23)은 벗겨져, 서구의 재단사에게 맡겨진 것처럼 현대적 옷으로 다시 꾸며진다. 그리고 이렇게 “개정된 예수”가 새로운 종교 스승으로 소개된다. 그들은 말한다. “예수를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오늘의 세상은 잠시 동안 예수를 관용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다. 이 시대의 “진보”는 너무나 놀라워서, 아마 머지않아 그리스도와 기독교조차 시대에 뒤처졌다고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어리석은 지혜의 결과는 무엇인가? 오직 혼란, 불신앙, 무질서, 그리고 온갖 악한 결과들뿐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그분을 제외시킨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리는 오직 이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는 사신(使臣)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즉, 왕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의 권위가 아닌 그의 권위로 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교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유익하거나 편리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전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 교리들을 믿는다. 그것이 시대의 “계몽”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진리이며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이다. 세대가 어떠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반드시 그를 미워할 것이다. 세상이 차라리 대놓고 그리스도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희망적인 징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유다의 입맞춤으로 그분을 속이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오직 이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교회는 결코 쾌락의 여행을 하는 유람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풍랑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선과 같았다. 주님의 참된 배는 과거에도, 지금도, 장차도 폭풍 가운데 있다. 그러나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 더 이상 시험의 물결은 없을 것이며, 영원한 수정 같은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시 보라. 풍랑이 더욱 거세질 때, 주께서는 배 안에 계셨으나 잠들고 계신 듯하였다. 교회 역사 속에서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 박해를 막을 어떤 섭리도 보이지 않았고, 이단을 물리칠 성령 하나님의 현현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계셨으나, 배의 뒤편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듯 보였다. 이 장면은 교회사 속의 여러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 성도들은 심한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위험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절망이 기도를 낳았다. 교회는 큰 환난을 통해 비로소 강력한 기도를 배우게 되었다. 아, 교회가 얼마나 자주 게을러졌던가! 주께서 불로 그녀를 깨우시기 전까지는 향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고난이 임하자, 그 불길이 그녀의 향로를 피웠고, 그 향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고난이 기도를 낳았고, 기도가 고난의 끝을 가져왔다. 그때 주님이 일어나신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드러내신다. 여러분은 주님이 역사 속의 개혁과 부흥의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지를 알고 있다. 주님은 떨고 있는 성도들의 불신앙을 꾸짖으시고,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셨다. 그리하여 교회에는 평온한 시대가 찾아왔다. 피 흘림도, 이단의 광풍도 없는 평화의 시기였다. 이렇듯 교회의 역사는 수없이 반복되는 항해의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와 택자들을 태운 이 놀라운 배의 항로를 주목하는 사람은 결코 흥미로운 사건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그의 간절한 간구의 힘이었다. 그의 소원은 단순한 바람으로 머물지 않고, 기도로 바뀌었으며, 그 기도는 논리를 담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끈질기게 구하였다. 그의 기도는 너무나 생명력 넘쳐서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침을 막으려 하였지만, 잠재울 수 없었다. 중요한 인물들이 그에게 말했다. “조용히 하라.” 심지어 사도들도 그에게 “입을 다물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확신한다. 만일 어떤 사도가 여러분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많은 이들은 그것을 좋은 변명거리로 삼아 기도를 멈출 것이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말라 했으니, 이제 더 이상 자비를 구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 안에 은혜의 역사가 일어난 사람이라면, 베드로가 쉰 명이라 해도 그 기도를 막을 수 없다. 멈출 수 없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얻는다. 만일 그대의 영혼 안에 야고보나 요한이 말려도 멈출 수 없는 기도가 있다면, 안드레, 바돌로매, 나다나엘, 그리고 열한 제자가 모두 달려와도 막지 못할 그 부르짖음이 있다면, 주 예수께서 곧 들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설령 지옥의 모든 마귀들이 그대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외쳐도, 기도하라. 설령 하늘의 모든 성도들이 “그 기도는 헛되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기도하라. 그렇게 간구하는 자의 소원은 반드시 구속자에게 닿는다. 예수께서 그대를 위하여 멈추실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 멈추셨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분은 복음이다. 그분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모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이 자녀로 변화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복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이시다. 이 복이 승리하는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인생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누리지 못하느냐 여부로 결정된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 받기』 | 시리즈 / 권차 | 10 예수 그리스도의 복 받기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4-05-10 |
| 쪽수 | 289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043486 |
전자책 ISBN | 9791124043486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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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유와, 계절의 끝에서 맺히는 결실처럼 풍요로운 문장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