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사무엘상 2권
사무엘상 2권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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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여, 그분의 외부적 예식을 멸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주일을 비웃고, 하나님의 집 예식을 멸시하며, 은혜의 수단을 소홀히 하고, 종교 외부 형식을 헛된 것이라 부르는 이 모든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가증한 일이다. 형식 자체가 생명은 아닐지라도, 그 형식이 담고 있는 생명을 위해 형식을 존중해야 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몸은 그 안의 영혼을 위해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누군가 내 몸을 훼손하려 할 때 그가 내 영혼을 상하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그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누군가 종교 외부를 훼손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비록 그가 종교의 진정한 생명력을 건드릴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또 한 가지 매우 엄숙한 점이 있다. 외부적 형식은 변경하거나 멸시해서도 안 되지만, 자격 없는 자가 침범해서도 안 된다. 블레셋 땅에서 돌아온 언약궤가 벧세메스(Bethshemite) 사람 여호수아(Joshua) 밭에 놓였을 때,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이 일로 하나님은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삼상 6:19). 이 벧세메스 사람들에게는 궤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저 들여다보고 싶은 헛된 호기심뿐이었다. 그러나 그 놀라운 돌판을 본 것은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왔다. 율법이 속죄소로 덮이지 않은 채 드러나면 어떤 인간에게든 죽음이며, 그들에게도 죽음이었다. 자격 없는 자가 종교의 외부적 형식에 침범할 때 얼마나 엄중한 형벌이 따르는지 기억하라. 이 두려운 구절을 인용하겠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9).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선언인가! 종교 능력을 갖추지 않은 채 감히 종교 형식에 손을 대는 자에게 저주가 선포된다. 하나님의 집 예식에 참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척 외부적인 고백을 하면서도 정작 그 일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를 신속히 일으키는 자는 없다. 주의하라. 그리스도의 외부적 예식이 종교 생명력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매우 엄숙하게 중요하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변경하거나 멸시해서도 안 되며, 초대받지 않은 채 뛰어들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지고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의 성물을 멸시한 죄로 하나님의 저주가 우리 위에 임할 것이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사무엘상 2권』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를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사무엘상 설교문은 총 40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7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사무엘상의 복음 이야기(2)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여, 그분의 외부적 예식을 멸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주일을 비웃고, 하나님의 집 예식을 멸시하며, 은혜의 수단을 소홀히 하고, 종교 외부 형식을 헛된 것이라 부르는 이 모든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가증한 일이다. 형식 자체가 생명은 아닐지라도, 그 형식이 담고 있는 생명을 위해 형식을 존중해야 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몸은 그 안의 영혼을 위해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누군가 내 몸을 훼손하려 할 때 그가 내 영혼을 상하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그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누군가 종교 외부를 훼손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비록 그가 종교의 진정한 생명력을 건드릴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또 한 가지 매우 엄숙한 점이 있다. 외부적 형식은 변경하거나 멸시해서도 안 되지만, 자격 없는 자가 침범해서도 안 된다. 블레셋 땅에서 돌아온 언약궤가 벧세메스(Bethshemite) 사람 여호수아(Joshua) 밭에 놓였을 때,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이 일로 하나님은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삼상 6:19). 이 벧세메스 사람들에게는 궤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저 들여다보고 싶은 헛된 호기심뿐이었다. 그러나 그 놀라운 돌판을 본 것은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왔다. 율법이 속죄소로 덮이지 않은 채 드러나면 어떤 인간에게든 죽음이며, 그들에게도 죽음이었다. 자격 없는 자가 종교의 외부적 형식에 침범할 때 얼마나 엄중한 형벌이 따르는지 기억하라. 이 두려운 구절을 인용하겠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9).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선언인가! 종교 능력을 갖추지 않은 채 감히 종교 형식에 손을 대는 자에게 저주가 선포된다. 하나님의 집 예식에 참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척 외부적인 고백을 하면서도 정작 그 일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를 신속히 일으키는 자는 없다. 주의하라. 그리스도의 외부적 예식이 종교 생명력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매우 엄숙하게 중요하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변경하거나 멸시해서도 안 되며, 초대받지 않은 채 뛰어들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지고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의 성물을 멸시한 죄로 하나님의 저주가 우리 위에 임할 것이다.
불쌍한 인간 본성은 항상 그런 것을 좋아한다. 사실 종교가 더 까다로울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더 좋아한다. 종교가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당신을 꽁꽁 묶고 속박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수행하기를 더 좋아한다. 힌두교(Hinduism)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는, 신발 속에 못을 박고 걷거나 수만 마일을 굴러가거나 갠지스(Ganges) 강의 더러운 물을 마시거나 죽음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엄청난 공로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 본성을 즐겁게 한다. “믿고 살라”는 말은 너무나 겸비하게 만든다.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것은 인간의 높은 눈을 낮추기에 인간은 “치워버려라!”라고 말하며 그리스도 외에 다른 무엇으로든 발길을 돌린다. 게다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예식 종교를 항상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죄를 포기할 필요가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내가 죽을 때 사제가 주는 성사만 받으면 구원받는 데 충분하다면, 얼마나 즐거운 종교인가! 나는 술 마시고 욕하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 마지막에 거룩한 기름만 바르면 내 모든 죄를 짊어진 채 천국으로 바로 가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말한다. “우리는 온갖 화려함과 경박함, 삶의 허영과 육신의 자만심을 다 누릴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견진성사(confirmation)를 받는 것뿐이다. 그 후에 가끔 교회에 가고, 화려하게 장정된 기도서와 성경책을 들고 아주 정중하고 세심하게 예배드리면 주교가 틀림없이 우리를 잘 인도해 줄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 구미에 맞는다. 번거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려한 유흥과 죄를 계속 즐기면서도 그것들과 함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죄와 죄인이 결별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 옛날 방식 복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룩함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나,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는 저 옛날 방식 성경 구절은 인간 본성에 결코 입에 맞지 않을 것이다. 인간 본성은 당신이 무엇을 하라고 시키든 상관하지 않는다. 믿으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것저것을 지키라고 말하면 사람은 그 일을 할 것이고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그 일이 더 힘들수록 그는 당신을 더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러 세상에 임하셨다. 그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해 보라. 그의 자존심이 즉시 곤두설 것이다. 그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을 미워하며, 복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자기 영혼에서 몰아낼 것이다.
하나님의 궤는 이스라엘이 전투를 위해 소집할 수 있는 모든 무장 군인이 지켰음에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탈취당했다. 무장하지 않은 제사장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던 궤였다. 사사기의 암울한 기간 내내 시대 상황이 극도로 어지럽고 위험했으나, 육신적인 무기로 보호받기 전까지 궤는 결코 포로가 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이 언약궤를 돌보도록 정하신 자들이 그것을 맡았을 때는 충분히 안전했다. 그러나 국가의 자랑스러운 깃발과 전국의 군대가 거룩한 성궤의 호위병을 자처했을 때, 하나님의 궤는 빼앗기고 말았다. 세속적인 권력이 영적인 것과 결합하고, 육신의 팔이 하나님의 능력의 팔을 후원하며 자신과 연결하려 했을 때, 비로소 궤는 원수들에 의해 승리의 전리품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우리는 이 교훈적인 사실에 대한 설명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 그러면 진리는 왕이나 군주, 법이나 제도, 기부금이나 특권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돌볼 것이다. 오직 계시된 순수한 진리만을 말하라. 그러면 진리는 스스로 길을 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웅변적인 언어로 진리를 꾸미고 장식하거나, 당신의 세속적인 지혜와 신중함으로 진리를 보호하고 지키려 한다면 진리는 포로가 되고 만다. 이 땅의 왕들과 군주들이여, 교회를 내버려 두라. 원한다면 박해하라. 교회는 당신들의 반대를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세속적 권력으로 교회의 교리를 전파하려 들지 말라. 그것은 교회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저주이다. 교회를 당신들의 후원 아래 두지 말라. 당신들의 왕실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교회 안에는 병이 생길 것이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교회의 사역자들이 세속 권력과 동맹을 맺었을 때, 소위 ‘교회’라고 불리는 곳은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자신의 도구로,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육신의 힘에 빚지지 않으시고, 자신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자신의 영광을 방어하신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의로움인 흰 세마포를 입은 봉헌된 자들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지, 갑옷을 입고 강철 가슴가리개를 번뜩이는 피 묻은 전쟁의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사무엘상 2권』 | 시리즈 / 권차 | 사무엘상 2권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4-05-10 |
| 쪽수 | 260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476109 |
전자책 ISBN | 9791124476109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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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유와, 계절의 끝에서 맺히는 결실처럼 풍요로운 문장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