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6
욥기의 복음이야기 6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 혜택: 결제 완료 즉시 마이페이지 및 주문 완료 페이지에서 영구 보관 & 다운로드 가능
욥은 자신의 밀과 보리를 저장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장하는 데 더 세심했다. 수확물을 창고에 넣는 것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 속에 보존하는 데 더 열심이었다. 그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소중히 간직하는가? 그대는 말씀을 연구하는가? 그대는 말씀을 읽는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적게 말씀을 탐구한다. 그대는 말씀을 묵상하는가? 그 말씀의 은밀한 달콤함을 빨아들이는가? 벌들이 꽃의 생명력을 모아 겨울 양식으로 꿀을 비축하듯 그대는 그 정수를 저장하는가? 성경 연구는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금속과 같다. 이것은 거룩한 사람들이 영양을 공급받는 강한 음식이다. 또한 모든 대적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길을 지키는 사람들의 뼈와 근육을 만든다.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셨고 욥은 그분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욥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았음을 배운다. 그는 말씀을 정한 음식보다 더 낫게 여겼다. 그는 말씀을 먹었다. 이것은 어떤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 곧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기술이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표면만 본다. 어떤 이들은 자비 없이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어떤 이들은 하늘의 떡을 조각내어 자신의 영리함을 뽐낸다. 어떤 이들은 케이크를 먹는 아이들처럼 알맹이만 골라낸다. 하지만 말씀을 자신의 음식과 음료로 삼는 자는 복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즉 영원하신 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니, 나는 이것으로 내 영혼을 만족시키리라. 나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 이것보다 더 참된 것, 이것보다 더 안전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을 가졌으니 그것이 내 안에, 내 마음속에, 내 생명의 가장 깊은 곳에 거할 것이다. 그것은 내 존재의 씨줄과 날줄로 엮일 것이다.” 본문은 욥이 말씀을 정한 음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덧붙인다. 사치스러운 별미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한 음식보다 말씀을 더 귀하게 여겼다. 여러분이여, 알다시피 사람에게 정한 음식이란 매우 높게 평가된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뭐라고? 내 빵을 가져가겠다고?” 사람은 이를 참을 수 없는 일로 여길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입에서 빵을 빼앗는 것은 가장 비열한 짓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욥은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는 것보다 차라리 입에서 빵이 빠져나가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그는 정한 음식보다 말씀을 더 생각했다. 고기는 육체만을 유지해 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먹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빵이 주는 영양분은 곧 사라진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영양분은 우리 안에 머물며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한다. 타고난 생명이 음식보다 소중하지만, 우리의 영적 생명은 자신보다 더 고귀한 고기, 곧 하늘의 떡이자 주 예수님이라는 인격으로 영양을 섭취한다. 빵은 배고픈 자에게 달콤하지만, 우리는 항상 배고픈 것이 아니며 때로는 식욕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좋은 점은, 하나님 가까이 사는 자는 항상 그것에 대한 식욕을 가진다는 것이다. 또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을 수 있다. 고백건대 나는 식욕이 없을 때도 식욕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곤 했다. 만족감을 느끼는 만큼 더 배가 고파졌다. 나의 공허함이 배고픔을 죽이는 것 같았으나, 말씀으로 소생할 때 나는 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6』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를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본서는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욥기 설교문 총 87편의 완역본이다. 과거 설교전집에는 32편만이 실려 있다. 고로 본 설교집에 55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6)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욥은 자신의 밀과 보리를 저장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장하는 데 더 세심했다. 수확물을 창고에 넣는 것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 속에 보존하는 데 더 열심이었다. 그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소중히 간직하는가? 그대는 말씀을 연구하는가? 그대는 말씀을 읽는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적게 말씀을 탐구한다. 그대는 말씀을 묵상하는가? 그 말씀의 은밀한 달콤함을 빨아들이는가? 벌들이 꽃의 생명력을 모아 겨울 양식으로 꿀을 비축하듯 그대는 그 정수를 저장하는가? 성경 연구는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금속과 같다. 이것은 거룩한 사람들이 영양을 공급받는 강한 음식이다. 또한 모든 대적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길을 지키는 사람들의 뼈와 근육을 만든다.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셨고 욥은 그분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욥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았음을 배운다. 그는 말씀을 정한 음식보다 더 낫게 여겼다. 그는 말씀을 먹었다. 이것은 어떤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 곧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기술이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표면만 본다. 어떤 이들은 자비 없이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어떤 이들은 하늘의 떡을 조각내어 자신의 영리함을 뽐낸다. 어떤 이들은 케이크를 먹는 아이들처럼 알맹이만 골라낸다. 하지만 말씀을 자신의 음식과 음료로 삼는 자는 복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즉 영원하신 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니, 나는 이것으로 내 영혼을 만족시키리라. 나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 이것보다 더 참된 것, 이것보다 더 안전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을 가졌으니 그것이 내 안에, 내 마음속에, 내 생명의 가장 깊은 곳에 거할 것이다. 그것은 내 존재의 씨줄과 날줄로 엮일 것이다.” 본문은 욥이 말씀을 정한 음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덧붙인다. 사치스러운 별미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한 음식보다 말씀을 더 귀하게 여겼다. 여러분이여, 알다시피 사람에게 정한 음식이란 매우 높게 평가된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뭐라고? 내 빵을 가져가겠다고?” 사람은 이를 참을 수 없는 일로 여길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입에서 빵을 빼앗는 것은 가장 비열한 짓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욥은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는 것보다 차라리 입에서 빵이 빠져나가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그는 정한 음식보다 말씀을 더 생각했다. 고기는 육체만을 유지해 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먹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빵이 주는 영양분은 곧 사라진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영양분은 우리 안에 머물며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한다. 타고난 생명이 음식보다 소중하지만, 우리의 영적 생명은 자신보다 더 고귀한 고기, 곧 하늘의 떡이자 주 예수님이라는 인격으로 영양을 섭취한다. 빵은 배고픈 자에게 달콤하지만, 우리는 항상 배고픈 것이 아니며 때로는 식욕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좋은 점은, 하나님 가까이 사는 자는 항상 그것에 대한 식욕을 가진다는 것이다. 또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을 수 있다. 고백건대 나는 식욕이 없을 때도 식욕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곤 했다. 만족감을 느끼는 만큼 더 배가 고파졌다. 나의 공허함이 배고픔을 죽이는 것 같았으나, 말씀으로 소생할 때 나는 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분의 위대함과 전능함에 대한 확신으로 마음이 고정될 때, 그 생각은 진리에서 멀리 떠나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묵상의 또 다른 행복한 결과는 영혼에 주는 꾸준한 평화와 감사한 평온이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바다에 있으며 배의 움직임 때문에 멀미가 나고 괴로웠던 적이 있는가?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 바닥이 흔들린다는 두려움 때문에 한 발자국도 제대로 내디디지 못한 적이 있는가? 마침내 해안에 발을 내딛고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얼마나 기쁘겠는가? “아! 이곳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곳은 단단한 땅이다. 비록 폭풍이 울부짖어도 이 섬은 안전하다. 이 땅은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밟아도 내 발밑에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늘 변하는 세상 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 피할 때와 똑같다. 하나님은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신 영원하신 분이다. 인간 삶의 덧없는 것들과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생각은 믿을 수 없는 깊은 바다의 물처럼 변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독수리 날개로 올라가 하늘 궁창에 앉아 계신 분께 나아갈 때 우리는 안전하다. 우리는 영원한 곳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으며 결코 방해받을 수 없는 만세 반석 안에 깃들게 된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보겠다. 어린아이들이 핑핑 돌아서 어지러워질 때까지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은 잠시 멈춰 서서 무언가를 꽉 붙잡는다. 그러면 주위의 모든 것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를 꽉 붙잡고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붙잡은 것이 단단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내 뇌는 고요해지고 세상은 도는 것을 멈춘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도 지난 6일 동안 원을 그리며 달리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모든 것이 우리와 함께 움직였다. 아마 오늘 아침 이곳에 올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조차 움직인 것처럼 느꼈을지 모른다. 섭리가 바뀐 것 같고 친구는 죽었으며 친척은 떠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이 떠다니는 덩어리처럼 보였다. 단단한 것도 없고 고정된 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하나님의 불변성을 굳게 붙잡으라. 잠시 가만히 서서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알라. 우리는 결국 세상이 우리가 꿈꾸던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기도에 위선자가 아님을 증명할 속성들이 연결되어 있는지 보라. 아니면 반대로 사탄의 앞잡이이자 하늘 앞의 사기꾼임을 드러내게 될 징후들이 있는지 보라. 비천한 위선과 무모한 거짓의 슬픈 징후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가 어찌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욥 27:10).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몇 가지 적절한 탐구를 포함한다. 첫 번째 요점은 일관성의 문제이다. 그 기도는 일시적인가 아니면 지속적인가? 경건의 연습은 영구적이고 규칙적인가? 아니면 발작적이고 가변적인가? 이 사람은 기도의 모든 계절에 하나님을 부르겠는가? 기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가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런 시기에 반드시 기도해야만 한다. 이 위선자는 그 모든 시기에 기도하는가? 아니면 특정한 기도의 시기만을 선택하는가? 그는 오직 정해진 시간과 선택된 장소에서만 기도하는 모습이 발견되는가? 그는 항상 모든 적절한 때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모습이 발견되는가? 예를 들어, 그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했다. 그는 회당에서 기도하여 모든 이가 자신의 유창함과 열정에 주목하게 했다. 그러나 과연 집에서도 기도하는가? 그는 자신의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가? 그는 그곳에서 은밀히 들으시는 하나님께 말하는가? 그는 그곳에서 자기 영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간구를 쏟아내는가? 그는 이삭(Isaac)처럼 해 저물 무렵 들판을 거닐며 고독한 묵상 중에 기도하는가? 그는 사도 베드로(Peter)와 함께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가? 그는 다니엘(Daniel)처럼 자신의 방을 찾거나 하나님처럼 동산의 고독을 찾는가? 아니면 그는 오직 대중 앞에서만 기도하는 자인가? 기도의 영보다는 기도의 은사만을 가졌으며, 감정의 열정보다는 언어의 유창함만을 가진 자인가? 오, 이것은 보배로운 것과 비천한 것을 식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험대 중 하나이다. 대중 기도는 경건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수많은 위선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개인 기도는 위선자가 마음을 두지 않는 일이다. 그가 잠시 동안 전념하더라도 곧 그만두게 된다. 영혼 없는 그가 견디기에 개인 기도는 너무 뜨겁고 무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 기도를 계속하느니 차라리 멸망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것에 대해 마음을 다해 살피기를 바란다! 나는 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가? 보는 눈이 없고 듣는 귀가 없을 때 기도하는가? 나는 개인 기도를 양심적으로 행하는가? 기도하는 것이 즐거움인가? 만약 내가 개인 기도를 결코 즐기지 않는다면, 나는 항상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위선자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사업 중에도 기도할 것이다. 그는 노동 중에도 기도할 것이다. 그는 평범한 직업 중에도 기도할 것이다. 굴뚝에서 나오는 불꽃처럼 짧은 기도들이 진정으로 경건한 영혼들로부터 하루 종일 날아오른다. 흉내 내는 자는 그렇지 않다. 위선자는 기도회에서 기도하며 회중 가운데서 목소리를 높인다. 때로는 지루할 정도로 길게 기도하지만 과연 그는 화살 기도(exclamatory prayer)를 하겠는가? 그는 계산대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가? 그는 들판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가? 그는 번화한 거리에서 소리 없는 간구로 하나님께 호소하는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귀에 속삭이는가? 아, 아니다! 위선자들은 항상 기도하는 것과 기도의 영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이것은 그들이 상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경험의 정수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신하라. 내면에 진정한 신앙이 있는 곳에는 기도하는 것이 영혼의 습관이 된다. 우리 중 일부는 짧고 말 없는 기도로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것이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우리는 이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의 지혜에 호소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한다. 어떤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한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분과 대화하는 것은 우리의 습관이 되었다.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우리는 율법의 속박을 멀리 떠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본성이 아이가 엄마를 찾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는다. 위선자는 자신에게 할당된 과업이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대로 기도한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자신의 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도한다. 여기에 사람이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는 영원한 구별의 징표가 있다. 만약 여러분의 기도가 오직 정해진 시간과 장소, 시기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인공적인 열기로 강요된 곰팡이는 건강한 나무의 장밋빛 열매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영적이지 않은 자의 비현실적인 헌신은 변화된 마음의 깊은 내면의 신음과는 크게 다르다. 만약 여러분이 날짜와 주간을 지키며 달력에 따라 기도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만약 시계에 맞춰 기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생명력이 있다기보다 기계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사순절(Lent)이기 때문에 금식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얼굴을 나타내신다면 그는 단순히 교회가 명령한다고 해서 금식할 수 없다. 그는 또한 달력에 표시된 축제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잔치를 벌이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 그의 영혼을 기쁘게 하실 수도 있다. 반대로 부활절(Easter)에 그의 영혼을 겸손하게 하실 수도 있다. 그는 특정한 날이나 날짜에 의해 조절되지 않는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영적 생명이 없는 자들이 저지르는 형식적인 교회 규칙을 거부한다. 그의 거듭난 본성은 그런 유치한 속박을 떨쳐 버린다. 살아 있는 영혼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항상 기도한다. 또한 믿음으로 얻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항상 기뻐한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욥기의 복음이야기 6』 | 시리즈 / 권차 | 욥기의 복음이야기 6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4-05-10 |
| 쪽수 | 246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476567 |
전자책 ISBN | 9791124476567 |
| 정가 (종이책) | 20,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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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유와, 계절의 끝에서 맺히는 결실처럼 풍요로운 문장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