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5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5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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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정복 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의 활을 당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의 힘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우리의 위대한 정복자이신 그리스도의 활도 이와 같다. 그 활은 오직 그분만이 온전히 당기실 수 있다. 그분만이 말씀의 능력을 완전하게 사용하신다. 그분이 화살을 시위에 걸고 전능하신 손으로 활을 당기실 때 그 화살은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왕께서 정확히 겨누신 심장 깊숙이 박힌다. 아무도 그 화살의 길을 막을 수 없다. 나는 이 화살들이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기보다 성경 속의 특정한 말씀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곧 계시의 화살통에서 꺼낸 날카로운 화살들이다. 하나님은 때에 맞는 말씀을 사용하신다. 어떤 때는 이 화살이 쏘아지고 어떤 때는 저 화살이 쏘아진다. 그러나 그 모든 화살은 날카롭다. 어느 하나도 헛되이 날아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회중들이여, 여러분은 이런 날카로운 화살이 심장을 찌를 때의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찌른다. 그 아픔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고통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죄를 깨달을 때의 고통보다 더 날카로운 아픔이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을 치료할 수 있는 분도 그 화살을 쏘신 바로 그분뿐이다. 상처를 내시는 분이 또한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이 화살들이 복수형으로 기록된 이유가 있다. 죄를 깨닫게 하는 화살이 있고 공의를 드러내는 화살이 있다. 또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화살도 있다. 그러나 자비의 화살도 있다. 위로의 화살도 있다. 하나님은 상하게 하시기도 하지만 싸매어 주시기도 하신다. 죄를 죽이는 화살이 있는가 하면 절망을 죽이는 화살도 있다. 절망 역시 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죄가 낳은 거짓된 절망도 제거하신다. 육적인 소망을 무너뜨리는 화살이 있는가 하면 죄된 두려움을 제거하는 화살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너뜨려야 할 것은 무너뜨리고 세워야 할 것은 세운다. 이것이 말씀의 지혜이다. 이 모든 화살은 왕의 원수들의 심장을 꿰뚫는다. 왕의 화살통 안에는 무딘 화살이 하나도 없다. 모든 화살은 목적을 이루도록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 모든 화살은 왕의 것임을 주목하라. 시편 기자는 “용사”께 이렇게 말한다. “왕의 화살은.” 진리는 성령 하나님이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깨닫게 해 주시기 전까지는 우리의 마음과 양심에 참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의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령 하나님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교리들이 있다. 그것들은 말씀 안에 매우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진리들을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 사용해 오셨다. 사람은 거절해도 하나님은 그 진리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이 날카로운 화살들이 죽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소중히 품고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회의주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교만한 의심도 꿰뚫는다. 나는 이 시대의 회의주의가 사람들의 머리보다 마음과 더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만일 그들이 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쉽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해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많은 질문에 일일이 답하려 드는 것은 내가 얼마 전에 오래된 책에서 읽은 우화 속 소년처럼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다. 한 소년이 쓰레기 수레를 타고 가다가, 너무 심술궂어서 달의 얼굴에 흙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달을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러자 다른 소년이 나타났다. 그는 아마 훨씬 착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지혜로운 아이는 아니었다. 그는 대야에 물을 담고 스펀지를 가져와 달의 얼굴을 씻어 주려 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성경의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또한 여러 방식으로 복음의 얼굴에 흙을 던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진리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선한 의도를 가졌지만 어리석은 신학자가 있다. 그는 진리 설교를 멈추고 스펀지와 물대야를 들고 달려간다. 그리고 복된 복음의 얼굴을 씻어 주려 한다. 그러나 복음은 태양이나 달처럼 깨끗하다. 누구의 씻김도 필요하지 않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던진 흙 때문에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실제로 의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판대 앞에 세우시고 행한 일에 대해 결산하게 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은 이미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왕의 날카로운 화살이 여러분의 심장을 꿰뚫을 때 모든 공상은 사라진다. 헛된 상상도 도망간다. 그때 여러분은 이렇게 외치게 된다. “내가 믿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다. 나는 믿는다. 오히려 내가 잠시라도 안식을 얻기 위해 의심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아니, 복되신 성령 하나님이여, 잃어버린 정죄받은 영혼이 하나님과 화평을 얻을 수 있도록 믿어야 할 진리를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리스도의 화살은 어디에 떨어지든지 자기 의를 죽인다. 그리스도의 활에서 날아간 화살 가운데 자신의 선함을 의지하는 마음을 죽이지 않은 화살은 하나도 없다. 그분은 그런 가증한 것을 미워하신다. 그리고 발견되는 곳마다 그것을 죽이신다. 마음의 완고함도 마찬가지이다. 감각 없는 무감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날카로운 화살이 임하는 곳마다 이런 것들은 죽임을 당한다. 그 앞에서는 어떤 강퍅함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5』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5)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옛날에 정복 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의 활을 당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의 힘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우리의 위대한 정복자이신 그리스도의 활도 이와 같다. 그 활은 오직 그분만이 온전히 당기실 수 있다. 그분만이 말씀의 능력을 완전하게 사용하신다. 그분이 화살을 시위에 걸고 전능하신 손으로 활을 당기실 때 그 화살은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왕께서 정확히 겨누신 심장 깊숙이 박힌다. 아무도 그 화살의 길을 막을 수 없다. 나는 이 화살들이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기보다 성경 속의 특정한 말씀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곧 계시의 화살통에서 꺼낸 날카로운 화살들이다. 하나님은 때에 맞는 말씀을 사용하신다. 어떤 때는 이 화살이 쏘아지고 어떤 때는 저 화살이 쏘아진다. 그러나 그 모든 화살은 날카롭다. 어느 하나도 헛되이 날아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회중들이여, 여러분은 이런 날카로운 화살이 심장을 찌를 때의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찌른다. 그 아픔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고통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죄를 깨달을 때의 고통보다 더 날카로운 아픔이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을 치료할 수 있는 분도 그 화살을 쏘신 바로 그분뿐이다. 상처를 내시는 분이 또한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이 화살들이 복수형으로 기록된 이유가 있다. 죄를 깨닫게 하는 화살이 있고 공의를 드러내는 화살이 있다. 또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화살도 있다. 그러나 자비의 화살도 있다. 위로의 화살도 있다. 하나님은 상하게 하시기도 하지만 싸매어 주시기도 하신다. 죄를 죽이는 화살이 있는가 하면 절망을 죽이는 화살도 있다. 절망 역시 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죄가 낳은 거짓된 절망도 제거하신다. 육적인 소망을 무너뜨리는 화살이 있는가 하면 죄된 두려움을 제거하는 화살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너뜨려야 할 것은 무너뜨리고 세워야 할 것은 세운다. 이것이 말씀의 지혜이다. 이 모든 화살은 왕의 원수들의 심장을 꿰뚫는다. 왕의 화살통 안에는 무딘 화살이 하나도 없다. 모든 화살은 목적을 이루도록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 모든 화살은 왕의 것임을 주목하라. 시편 기자는 “용사”께 이렇게 말한다. “왕의 화살은.” 진리는 성령 하나님이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깨닫게 해 주시기 전까지는 우리의 마음과 양심에 참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의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령 하나님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교리들이 있다. 그것들은 말씀 안에 매우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진리들을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 사용해 오셨다. 사람은 거절해도 하나님은 그 진리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이 날카로운 화살들이 죽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소중히 품고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회의주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교만한 의심도 꿰뚫는다. 나는 이 시대의 회의주의가 사람들의 머리보다 마음과 더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만일 그들이 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쉽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해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많은 질문에 일일이 답하려 드는 것은 내가 얼마 전에 오래된 책에서 읽은 우화 속 소년처럼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다. 한 소년이 쓰레기 수레를 타고 가다가, 너무 심술궂어서 달의 얼굴에 흙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달을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러자 다른 소년이 나타났다. 그는 아마 훨씬 착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지혜로운 아이는 아니었다. 그는 대야에 물을 담고 스펀지를 가져와 달의 얼굴을 씻어 주려 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성경의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또한 여러 방식으로 복음의 얼굴에 흙을 던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진리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선한 의도를 가졌지만 어리석은 신학자가 있다. 그는 진리 설교를 멈추고 스펀지와 물대야를 들고 달려간다. 그리고 복된 복음의 얼굴을 씻어 주려 한다. 그러나 복음은 태양이나 달처럼 깨끗하다. 누구의 씻김도 필요하지 않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던진 흙 때문에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실제로 의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판대 앞에 세우시고 행한 일에 대해 결산하게 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은 이미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왕의 날카로운 화살이 여러분의 심장을 꿰뚫을 때 모든 공상은 사라진다. 헛된 상상도 도망간다. 그때 여러분은 이렇게 외치게 된다. “내가 믿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다. 나는 믿는다. 오히려 내가 잠시라도 안식을 얻기 위해 의심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아니, 복되신 성령 하나님이여, 잃어버린 정죄받은 영혼이 하나님과 화평을 얻을 수 있도록 믿어야 할 진리를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리스도의 화살은 어디에 떨어지든지 자기 의를 죽인다. 그리스도의 활에서 날아간 화살 가운데 자신의 선함을 의지하는 마음을 죽이지 않은 화살은 하나도 없다. 그분은 그런 가증한 것을 미워하신다. 그리고 발견되는 곳마다 그것을 죽이신다. 마음의 완고함도 마찬가지이다. 감각 없는 무감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날카로운 화살이 임하는 곳마다 이런 것들은 죽임을 당한다. 그 앞에서는 어떤 강퍅함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성령 하나님이 기름부음으로 임하시는 곳마다 결국에는 기쁨과 평안이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 우리 주 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 하나님의 백성 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 위에서도 그러하다. 그리스도인들 위에서도 그러하다.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 위에서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분에게 기름부음을 받는 자들 위에서도 그러하다. 모든 경우의 마지막 열매는 기쁨과 평안이다.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의 머리 위에서 성령 하나님은 기쁨이 되신다. 그리고 이 즐거움의 기름은 그 옷자락 아래까지 흘러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움의 기름”을 위로자 되시는 성령 하나님께 돌린다. 이 위대한 진리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진리를 배운다. 그것은 복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구원의 사역 안에서 완전한 협력을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를 보내신다. 성자 하나님은 기쁨으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그 위에 임하신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모두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신다. 하늘과 땅의 한 하나님은 곧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위에 역사하신 성령 하나님의 사역은 매우 놀라운 주제이다. 우리는 거룩한 아기 예수의 형성과 탄생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본다. 그분은 성령 하나님의 덮으심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나셨다. 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모든 믿는 자의 눈앞에 드러났다. 우리 하나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 요단(Jordan) 강에서 올라오셨을 때였다. 그때 성령 하나님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셔서 그분 위에 머무셨다. 그 전에는 예수께서 “심령이 강하여지며”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성령 하나님이 충만하여”라고 기록되었다. 그 후 예수께서는 성령 하나님께 인도되셨다. 또 하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셨다. 이 일은 그분의 온 삶 속에서 나타났다. 성령 하나님은 수많은 기적 가운데 그분과 함께하셨다. 또 그분의 말씀 뒤에는 능력과 확신이 따랐다. 그러므로 그분은 서기관들과 다르게 권세 있는 자처럼 말씀하셨다. 그분 안에서는 다음 예언이 풍성하게 이루어졌다.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머리니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사 11:2-4). 성령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특별한 관계를 가지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롬 1:4).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같은 성령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을 때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셨다. 그분은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셨다. 그리고 승천하신 뒤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과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일이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이는 성령 하나님이 구속주의 승천과 함께 교회 위에 풍성하게 부어졌기 때문이다. 오, 오늘날에도 성령 하나님은 얼마나 아름답게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하시는가. 그분은 그리스도의 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알리신다. 또 교회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증언하시는 영원한 증인이 되신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은사와 은혜를 이루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 예수는 회개를 주신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이 그 회개를 우리 안에서 이루신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그러나 먼저 믿음을 창조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또 예수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시는 분도 그분이시다. 이 시대 전체를 통하여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일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신다. 또 백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드러내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대적하는 세대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증언하신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증거가 된다. 하늘의 성령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라. 그분은 하늘의 기름부음이 되신다. 그리고 구속의 위대한 계획에 온 마음으로 동의하심을 나타내신다.
주님이신 예수님은 동료들보다 더욱 풍성한 기쁨의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동료들 역시 기쁨의 기름 부음을 받는다. 다윗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주님께 드리는 고백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분이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기름 부음은 어떤 면에서 기쁨을 주는가? 나는 여덟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직분수여를 위한 기름 부음이다.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분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기쁨으로 서로에게 속삭여 보라. “그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5:10). 기름이 아론의 머리에 부어졌을 때 그것이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흘러내렸던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다. 오늘날 왕과 제사장을 세우는 바로 그 기름 부음이 우리에게도 임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렇다면 우리가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여러분은 왕인데도 기뻐하지 않는가? “우리 왕의 자녀들이 어찌 날마다 슬퍼할 수 있으랴. 달콤한 위로자여, 내려오셔서 주의 은혜의 기름을 부어 주소서.” 지금 이 기쁨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한 제사장이다.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들이 어두운 얼굴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 이 복된 사역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모든 제사장들이여, 항상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라. “이스라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아론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35:19). 우리 역시 하나님께 구별되었다. 제사장에게 부어진 기름은 성별의 기름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그는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 되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섬길 수 있었다. 그는 평생 회중 가운데서 특별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도 이와 같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따로 세우셨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주님이신 예수님은 그 놀라운 기도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과 같사옵니다”(요 17:16).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그렇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성별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며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다. 다른 모든 용도에서 구별되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거룩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 31:33). 이 사실이 여러분을 기쁘게 하지 않는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구별되었고, 이 땅에서도 영원한 나라에서도 그분의 사역을 위해 쓰임받도록 거룩하게 되었는데도 기뻐하지 않는가? 오, 내 영혼아, 지금도 성별의 기름이 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 기름이 네 얼굴을 빛나게 하고 네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는가? 이제 너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기름은 우리를 직분에 합당하게 만든다. 성령 하나님이 그리스도 위에 임하신 이유는 그분이 지혜와 능력의 영으로 충만해져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시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성령 하나님은 모든 성도 위에 임하신다.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또 같은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요일 2:27).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가장 필요한 은사는 지식이다. 우리가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무지한 사람을 가르치고, 혼란 가운데 있는 사람을 인도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가르치고, 주인이 맡기신 사역에 합당하게 만드는 분은 바로 이 기름 부음이다. 아,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지식을 주신다면, 우리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지는 슬픔을 낳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 곧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그 빛은 기쁨을 가져온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신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는가? 만일 감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 성령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쁨으로 가득한 놀라운 진리들을 가르쳐 주셨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단 한 가지, 곧 예전에는 눈먼 자였으나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만 가르쳐 주셨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평생 기뻐하기에 충분하다. 그분은 참으로 기쁨의 기름이 아니신가? 셋째로,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신다. 동방에서는 오래전부터 기름을 약으로 사용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오늘날 수많은 약품보다 옛날의 치료법이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병든 사람을 위해 약을 사용하고 회복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때, 기름을 바르는 것을 권하셨다는 사실이다. 기름 부음이 언급된 이유는 그것이 당시 널리 사용되던 치료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해롭거나 터무니없는 방법이었다면 성령 하나님이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더 깊이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옛 시대에 기름 부음이 널리 사용된 치료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올리브기름에는 놀라운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책에서 뱀에 물린 사람이 올리브기름으로 독을 제거했다는 사례를 읽은 적이 있다. 올리브가 자라는 나라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자주 사용되며, 여러 면에서 매우 유익한 약으로 여겨진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분이시다. 얼마나 많은 상처와 멍이 이 기름으로 치유되었는가? 성령 하나님이 오시기 전 우리의 상처는 곪아 있었고, 싸매어지지도 않았으며, 연고를 발라 부드럽게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가장 귀한 향품으로 만든 이 기름은 우리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했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옛 상처들도 계속해서 고쳐 주고 계신다. 그 능력은 너무도 놀라워서 마침내 모든 흉터까지 없애 버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티나 주름이나 그 밖의 어떤 흠도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는 일은 얼마나 더 큰 기쁨이 되어야 하겠는가?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5』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5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4-11-20 |
| 쪽수 | 303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476925 |
전자책 ISBN | 9791124476925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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