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잠언의 복음이야기 4
스펄전의 잠언의 복음이야기 4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4.2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 혜택: 결제 완료 즉시 마이페이지 및 주문 완료 페이지에서 영구 보관 & 다운로드 가능
다시 한번 우리가 전해야 할 좋은 소식이 있다. 하나님은 불쌍하고 방황하는 자녀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길만 마련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도 마련하셨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애굽로 데려오려고 사람을 보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야곱은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요셉이 바로 아래에서 온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은 너무 좋아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요셉이 보낸 수레들을 보았을 때 야곱의 기운이 되살아났다. 우리 성경 번역에는 ‘수레’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요셉이 늙고 쇠약한 야곱과 그의 온 가족을 이집트로 데려오기 위해 당시 이집트에서 마련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수레들도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수레들을 본 족장의 기운이 되살아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불쌍한 죄인 중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내 발은 절뚝거리는데 어떻게 그 길을 달려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사람을 구원하는 진리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그 진리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이신 것도 압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진리가 내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영생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와 길이실 뿐 아니라 생명이시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과연 내가 그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얻을 수 있다.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길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길을 달려가게 하는 능력도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도록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도 주신다. 또한 그리스도는 생명이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우리 안에 넣어 주시고 그 생명을 붙드시며 완전하게 하신다. 사랑하는 죄인이여,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복되신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안내와 지시와 도움과 살리시는 역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믿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여러분이 회개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회개를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참으로 회심한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실제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을 회심시키시고 완전히 돌이키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다. 참된 신자에게는 반드시 성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다. 복음은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라고 하지 않는다. 복음이 요구하는 것은 복음 자체가 여러분에게 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의 한 부분에서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 다른 부분에서는 약속으로 주어진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하라고 명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친히 그 죄인이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을 때도 그러하셨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 9:6). 예수님은 명령과 함께 그 명령에 순종할 능력도 주셨다. 또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내밀라”(마 12:13). 그 손은 말라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명령이 나올 때 신경과 근육에 다시 힘을 주는 기적의 능력도 그 명령과 함께 나왔다. 이와 같이 복음을 붙들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다는 것을 믿으라. 놋뱀을 바라볼 수 있는 바로 그 눈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얻으려고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그 선물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먼 나라에서 오는 좋은 소식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은 여러분이 지금 즉시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이 하나님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된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구주가 되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주 멀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전할 좋은 소식은 한순간에 그곳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에게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순간 여러분은 즉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 죽어 가던 강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여러분은 그 강도처럼 곧바로 위에 있는 낙원에 들어가지는 않고 이 땅에서 조금 더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즉시 죄 사함을 받으며 그 죄 사함은 즉각적인 동시에 영원하다. 또한 즉시 이루어지는 동시에 완전하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해지는 좋은 소식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이루신 일을 온전히 의지하라.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받으려는 다른 모든 길에서 떠나게 하시고 오직 이 길만 의지하게 하시기를 바란다. 또한 자신의 기도나 눈물이나 행위나 고난이나 준비나 회개를 의지하는 모든 생각을 몹시 싫어하고 철저히 버리게 하시기를 바란다. 죄인을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갈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스스로 실을 잣듯 만들어 낸 것은 모두 다시 풀어야 한다. 여러분이 세운 것은 모두 무너뜨려야 하며 하나님께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모두 다시 가져와야 한다. 여러분은 자기 것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만족하시는 바로 그곳에서 단순히 안식해야 한다. 곧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복되신 인격과 완성된 사역 안에서 안식해야 한다. 이제 여러분이 영적으로 목마르다면 이 좋은 소식은 시원한 물 한 모금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목마르지 않다면 그 물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취하게 하는 술에 이미 취한 사람에게 시원한 물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 보아야 별 소용이 없다. 목마름이 없어서 그 물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또는 자기에게 큰 죄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죄 때문에 마음으로 참되게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설교하는 것은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에 들어가 그곳의 조각상들에게 말하는 것이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들어가 내 발밑의 먼지를 향해 설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시원한 물은 목마른 사람을 위한 것이며 긍휼과 구원의 좋은 소식은 죄책을 깨달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오,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의 깊은 필요를 깨닫게 하시고 강렬한 영적 목마름을 주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먼 나라에서 오는 이 좋은 소식이 여러분에게 참으로 귀하게 될 것이다. -35쪽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잠언의 복음이야기 4』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잠언 설교문은 총 43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5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8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잠언의 복음이야기(4)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다시 한번 우리가 전해야 할 좋은 소식이 있다. 하나님은 불쌍하고 방황하는 자녀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길만 마련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도 마련하셨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애굽로 데려오려고 사람을 보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야곱은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요셉이 바로 아래에서 온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은 너무 좋아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요셉이 보낸 수레들을 보았을 때 야곱의 기운이 되살아났다. 우리 성경 번역에는 ‘수레’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요셉이 늙고 쇠약한 야곱과 그의 온 가족을 이집트로 데려오기 위해 당시 이집트에서 마련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수레들도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수레들을 본 족장의 기운이 되살아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불쌍한 죄인 중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내 발은 절뚝거리는데 어떻게 그 길을 달려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사람을 구원하는 진리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그 진리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이신 것도 압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진리가 내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영생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와 길이실 뿐 아니라 생명이시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과연 내가 그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얻을 수 있다.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길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길을 달려가게 하는 능력도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도록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도 주신다. 또한 그리스도는 생명이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우리 안에 넣어 주시고 그 생명을 붙드시며 완전하게 하신다. 사랑하는 죄인이여,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복되신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안내와 지시와 도움과 살리시는 역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믿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여러분이 회개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회개를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참으로 회심한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실제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을 회심시키시고 완전히 돌이키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다. 참된 신자에게는 반드시 성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다. 복음은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라고 하지 않는다. 복음이 요구하는 것은 복음 자체가 여러분에게 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의 한 부분에서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 다른 부분에서는 약속으로 주어진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하라고 명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친히 그 죄인이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을 때도 그러하셨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 9:6). 예수님은 명령과 함께 그 명령에 순종할 능력도 주셨다. 또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내밀라”(마 12:13). 그 손은 말라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명령이 나올 때 신경과 근육에 다시 힘을 주는 기적의 능력도 그 명령과 함께 나왔다. 이와 같이 복음을 붙들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다는 것을 믿으라. 놋뱀을 바라볼 수 있는 바로 그 눈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얻으려고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그 선물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먼 나라에서 오는 좋은 소식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은 여러분이 지금 즉시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이 하나님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된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구주가 되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주 멀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전할 좋은 소식은 한순간에 그곳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에게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순간 여러분은 즉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 죽어 가던 강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여러분은 그 강도처럼 곧바로 위에 있는 낙원에 들어가지는 않고 이 땅에서 조금 더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즉시 죄 사함을 받으며 그 죄 사함은 즉각적인 동시에 영원하다. 또한 즉시 이루어지는 동시에 완전하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해지는 좋은 소식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이루신 일을 온전히 의지하라.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받으려는 다른 모든 길에서 떠나게 하시고 오직 이 길만 의지하게 하시기를 바란다. 또한 자신의 기도나 눈물이나 행위나 고난이나 준비나 회개를 의지하는 모든 생각을 몹시 싫어하고 철저히 버리게 하시기를 바란다. 죄인을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갈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스스로 실을 잣듯 만들어 낸 것은 모두 다시 풀어야 한다. 여러분이 세운 것은 모두 무너뜨려야 하며 하나님께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모두 다시 가져와야 한다. 여러분은 자기 것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만족하시는 바로 그곳에서 단순히 안식해야 한다. 곧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복되신 인격과 완성된 사역 안에서 안식해야 한다. 이제 여러분이 영적으로 목마르다면 이 좋은 소식은 시원한 물 한 모금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목마르지 않다면 그 물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취하게 하는 술에 이미 취한 사람에게 시원한 물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 보아야 별 소용이 없다. 목마름이 없어서 그 물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또는 자기에게 큰 죄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죄 때문에 마음으로 참되게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설교하는 것은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에 들어가 그곳의 조각상들에게 말하는 것이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들어가 내 발밑의 먼지를 향해 설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시원한 물은 목마른 사람을 위한 것이며 긍휼과 구원의 좋은 소식은 죄책을 깨달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오,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의 깊은 필요를 깨닫게 하시고 강렬한 영적 목마름을 주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먼 나라에서 오는 이 좋은 소식이 여러분에게 참으로 귀하게 될 것이다. -35쪽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잠 27:1). 그렇게 해야 하는 데에는 매우 지혜로운 이유가 많다. 무엇보다도 어떤 일이든 자랑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어리석기 때문이다. 자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더 훌륭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의 몸이나 영혼의 실제 상태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랑해도 그 자랑 때문에 더 위대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더 작아 보인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랑하는 사람을 전보다 좋지 않게 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을 아무리 자랑해도 그 자랑으로 그것의 가치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자기 재산을 자랑한다고 재산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자기 즐거움을 자랑한다고 즐거움이 커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신이 누리는 즐거움에 만족하고 기쁨을 느끼면 그 즐거움은 매우 달콤해질 수 있다. 그러나 ‘내일’이라는 보물은 그렇지 않다. 아직 그 보물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자랑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아주 오래된 속담 하나가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감히 그대로 말하지 않겠다. 닭과 관계된 속담이다. 아마 여러분도 기억할 것이다. 그 속담은 이 본문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내일은 우리가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내일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어쩌면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일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오, 사람이여! 씨를 뿌렸다면 내년에 여러분에게 올지도 모르는 수확을 자랑하라. 그러나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여러분은 ‘내일’이라는 씨를 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내일을 자랑할 권리가 없다. 오, 새를 잡는 사람이여! 새들이 전에 여러분의 그물로 날아들었다면 그것을 자랑하라. 다시 그곳으로 날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일찍 자랑하지 말라. 새들이 여러분의 미끼보다 자기 마음에 더 드는 다른 미끼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여러분의 덫에서 멀리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많은 날이 찾아왔다고 해서 또 다른 날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날들은 사슬의 고리와 같지 않아서 한 날이 왔다고 다음 날도 반드시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오늘이 있지만 그와 같은 또 다른 날을 결코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루하루가 그 종류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 각각의 날은 따로 태어난다. 쌍둥이처럼 함께 태어나는 날은 없다. 오늘에게는 형제가 없으며 오늘은 홀로 서 있다. 내일도 홀로 와야 하며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형제 없이 홀로 이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날을 한꺼번에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수많은 날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내일을 자랑할 필요가 없다. 내일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덧없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자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내일이다. 오, 사람이여! 부서지는 파도 위의 물거품을 자랑하라. 바다 위의 거품을 자랑하고 하늘을 스쳐 지나가는 구름을 자랑하라.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자랑하라. 그러나 내일은 자랑하지 말라. 내일은 너무도 실체가 없고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그것은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여러분은 아직 내일을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자랑하는가? 내일은 어리석은 사람이 무지개 끝에 있다고 꿈꾸는 보물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곳에 있지 않으며 그 사람도 그것을 찾아낸 적이 없다. 내일은 로크 로먼드(Loch Lomond)의 떠다니는 섬과 같다. 많은 사람이 그 섬에 관하여 말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본 적이 없다. 내일은 난파를 노리는 자가 켜 놓은 거짓 등불과 같다. 사람들을 꾀어 파멸의 바위로 이끌기 때문이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잠 27:1). 내일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연약하고 쉽게 부서지는 것이다. 어떤 유리도 내일의 기쁨과 내일의 소망만큼 쉽게 깨지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아직 활짝 피기도 전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산산이 부숴 버릴 수 있다. 마음씨 좋고 순진한 그 사람은 자기의 위대함이 틀림없이 무르익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리가 내렸다. 모든 것을 죽이는 서리가 내려 그의 새싹을 얼어 죽게 했고 결국 그는 쓰러졌다.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여러분은 아직 내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여러분은 내일을 결코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설령 내일을 얻는다 해도 내일은 여러분을 속일 것이다.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내일이면 여러분은 ‘내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워 떨게 될 곳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잠 27:1).
직업을 바꾸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오늘은 한 가지 일을 하지만 내일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는 분명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다른 일을 하도록 정해진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업을 조금 잘못 선택했을 뿐이며 다른 분야로 옮기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명에 관하여 잘못 판단했고 지금 하는 일이 참으로 자신의 소명이 아니라면 그 일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먼저 그것이 정말 자신의 소명이 아닌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영감으로 기록된 분명한 말씀을 거스르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 7:24). 이는 여러분이 회심했을 때 하고 있던 직업이나 생업을 성급하게 버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름보다 앞서 달려가고 주제넘은 자기 고집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여러분에게 정해 주신 길에서 벗어난다면 반드시 그 대가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볼 수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둥지에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 이 원리는 자신의 일자리와 주변 사람들을 늘 바꾸려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어떤 주인은 자기 종에게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종은 자기 주인에게 늘 불만을 품는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있는 곳에는 유혹이 너무 많으니 다른 곳으로 가 보겠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나는 그것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다. 나를 괴롭히는 현재의 유혹을 견디는 편이 새로운 유혹을 만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겪는 시험 속에서는 적어도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시험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흔들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자신이 겪는 시험을 다른 시험으로 바꾸는 일을 매우 조심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한 시험을 다른 시험과 바꾼다고 해도 결국 얻는 위안은 그 정도뿐이다. 해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고 있다. 이처럼 슬픔과 탄식이 어디에나 있는 세상 안에 우리의 몫이 정해져 있다. 아이작 와츠(Isaac Watts) 박사가 묘사한 병자의 쓰라린 경험처럼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지만, 장소만 바뀔 뿐 고통은 그대로이니, 우리가 얻는 위안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여러분은 자리를 몇 번이고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 유혹을 피할 수는 없다. 저 푸른 하늘 너머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코 마귀의 공격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벗어날 수 없다. 악한 영들은 삶의 모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가난한 사람은 견디기 힘든 고난에 몹시 시달리고 부자는 마음을 끄는 올무에 둘러싸여 있다. 손으로 수고하는 사람에게 불평할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머리로 수고하는 사람은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푸른 대지의 가장 먼 끝까지 달아난다 해도 유혹은 여전히 여러분을 뒤쫓을 것이다.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어디에서든 깨어 지켜야 한다. 유혹과 시험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겪는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유혹의 자리에서 다른 유혹의 자리로 서둘러 달아나지 말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처지를 바꾸도록 정하신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라. 여러분이 할 일은 순종하는 마음으로든 감사하는 마음으로든 하나님이 정해 주신 몫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순간의 충동에 굴복하여 평생 누릴 위안을 잃지 않도록 이곳에서 저곳으로 성급하고 경솔하게 옮겨 다니지 말라.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잠언의 복음이야기 4』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잠언의 복음이야기 4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6-10-19 |
| 쪽수 | 353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736692 |
전자책 ISBN | 9791124736685 |
| 정가 (종이책) | 22,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4.2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구약 지혜서·시가서 명설교 완역본으로 깊은 영적 통찰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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