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전도서의 복음이야기
스펄전의 전도서의 복음이야기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4.2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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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람이 무엇이기에”라고 물은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한편으로 붉은 흙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이 창조주의 손에서 갓 지음을 받았을 때에도 그러하였다. 솔로몬은 본 장의 1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전 6:10). 누가 살았든지 그가 아무리 지혜롭고 선하고 위대한 사람이었든지 그는 오직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람의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보라. 몸의 아름다움과 생각하는 능력과 심지어 영혼의 덕까지 모두 더해 보라. 그래도 그는 결국 사람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입김처럼 엷고 가벼우며 실체가 없는 존재이다. 그는 왔다가 가며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나 짧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기 시작하자마자 곧 그 존재를 마친다고 할 만큼 짧은 삶을 산다. 사람은 헛됨 그 자체처럼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사람이 하나님과 다투려고 하는 것이 쓸데없고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10절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전 6:10). 자기보다 강한 사람과 다투는 것은 언제나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한 시간 있다가 사라질 피조물과 스스로 계시는 창조주가 서로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 불리는 가련하고 연약한 벌레와 전능하시고 아무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이 서로 맞설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싸우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곧 알 수 있다. 자기 창조주와 다투려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질그릇 조각이 쇠막대기를 깨뜨리려고 싸우겠는가? 밀랍이 불과 싸울 수 있겠는가? 그런 싸움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과 다투기 시작하는가!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조차 그렇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거나 우리의 위로가 되는 것을 거두어 가실 때가 있다. 우리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곧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이 질문이 아주, 아주 멀리까지 나아간 경우들을 보았다. 우리가 존경하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 다투기라도 하듯 행동하였다. 심지어 하나님을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자 그들은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하였다.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날이 해마다 돌아올 때마다 그 슬픔을 되새겼다. 그러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품었다. 이와 같은 반역적인 마음은 고난 자체보다 열 배나 더 큰 고통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 하나님의 매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영혼은 가시를 걷어차면서 스스로 상처를 입힌다. 그 결과 처음에 받도록 정해진 상처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스스로 입는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와 다툴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보다 더 잘 이해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가? 온 세상의 위대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감히 우리의 법정에 세워 심문하려고 하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생각하기만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 39:9).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족장 욥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 2:10). 우리에게 흔히 부족한 것은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어린아이 됨이 이런 순종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어린아이 됨은 거듭남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이 우리에게 이런 순종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상식은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전도서의 복음이야기』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전도서 설교문은 총 12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7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5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전도서의 복음이야기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람이 무엇이기에”라고 물은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한편으로 붉은 흙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이 창조주의 손에서 갓 지음을 받았을 때에도 그러하였다. 솔로몬은 본 장의 1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전 6:10). 누가 살았든지 그가 아무리 지혜롭고 선하고 위대한 사람이었든지 그는 오직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람의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보라. 몸의 아름다움과 생각하는 능력과 심지어 영혼의 덕까지 모두 더해 보라. 그래도 그는 결국 사람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입김처럼 엷고 가벼우며 실체가 없는 존재이다. 그는 왔다가 가며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나 짧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기 시작하자마자 곧 그 존재를 마친다고 할 만큼 짧은 삶을 산다. 사람은 헛됨 그 자체처럼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사람이 하나님과 다투려고 하는 것이 쓸데없고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10절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전 6:10). 자기보다 강한 사람과 다투는 것은 언제나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한 시간 있다가 사라질 피조물과 스스로 계시는 창조주가 서로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 불리는 가련하고 연약한 벌레와 전능하시고 아무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이 서로 맞설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싸우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곧 알 수 있다. 자기 창조주와 다투려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질그릇 조각이 쇠막대기를 깨뜨리려고 싸우겠는가? 밀랍이 불과 싸울 수 있겠는가? 그런 싸움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과 다투기 시작하는가!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조차 그렇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거나 우리의 위로가 되는 것을 거두어 가실 때가 있다. 우리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곧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이 질문이 아주, 아주 멀리까지 나아간 경우들을 보았다. 우리가 존경하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 다투기라도 하듯 행동하였다. 심지어 하나님을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자 그들은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하였다.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날이 해마다 돌아올 때마다 그 슬픔을 되새겼다. 그러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품었다. 이와 같은 반역적인 마음은 고난 자체보다 열 배나 더 큰 고통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 하나님의 매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영혼은 가시를 걷어차면서 스스로 상처를 입힌다. 그 결과 처음에 받도록 정해진 상처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스스로 입는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와 다툴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보다 더 잘 이해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가? 온 세상의 위대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감히 우리의 법정에 세워 심문하려고 하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생각하기만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 39:9).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족장 욥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 2:10). 우리에게 흔히 부족한 것은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어린아이 됨이 이런 순종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어린아이 됨은 거듭남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이 우리에게 이런 순종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상식은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하루를 살다 사라지는 가련한 피조물인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의 눈앞에 보이는 우리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들의 꽃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말은 무엇인가? 우리는 때때로 몹시 교만하게 말한다.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반드시 무엇을 하겠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말은 한 번 내쉬는 숨이며 잠깐 나타나는 안개이고 공중에서 사라지는 한낱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계획하지만 하나님은 결정하시며 사람은 결심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풀어 버리신다. 사람이 기대하는 것을 하나님이 물리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지만 사람은 지나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날보다 앞선 때를 생각해 보라. 그때에는 날도 없었고 오직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만 홀로 계셨다. 그때 하나님은 자신의 뜻으로 한 세계를 창조하기로 정하셨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모든 것을 창조한 그 말씀은 얼마나 위대한 말씀인가! 그리고 바로 그 말씀이 모든 것을 멸하실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지금 있는 하늘과 땅도 같은 말씀으로 마지막 심판을 위해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하나님이 단지 한마디 말씀하시기만 해도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파도 위에 잠시 생긴 거품이 다시 파도 속으로 녹아들어 영원히 사라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람도 그렇게 사라진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 90:3).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그 말씀이 떨어지면 사람의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에게 돌아간다. 그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 흩어진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그룹이나 스랍의 손을 빌리지 않으셨다. 창세기의 장엄하면서도 단순한 기록에서 우리가 읽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멸하기를 뜻하시든 백만 명을 멸하기를 뜻하시든 하나님의 말씀은 그 뜻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산헤립의 군대를 하룻밤에 끊어 버리고 애굽의 처음 난 자들을 죽게 한 말씀은 얼마나 강력한 말씀이었던가! 하나님의 말씀이 큰물을 명령하자 물이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덮었고 바로 그 말씀이 소돔과 고모라에 하늘로부터 불을 내렸다. 마지막 날에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말씀이 나올 때 하나님은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드실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 있는 말씀 앞에서 하늘과 땅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여,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창조하시며 자신의 말씀으로 멸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에게서 한 민족의 조상이 될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의 몸은 이미 죽은 것과 같았고 사라도 나이가 많았지만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그들을 웃게 하셨으니 이삭이 그 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시 68:6).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시 113:9).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죽이시는 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뜻하시기만 하면 전염병이 사람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린다. 마치 풀 베는 사람의 낫이 지나간 뒤 들판의 풀이 쓰러져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전염병이나 전쟁을 부르시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이 쓰러진다. 하나님이 기근으로 징계하기를 뜻하시면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벌레들을 부르시고 그것들이 온 땅을 뒤덮는다. 요엘은 이것도 여호와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여기서 ‘거룩한 곳’은 강단을 가리킨다. 높은 하늘 아래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더 거룩한 곳이 있다면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일 것이다. 이곳은 기독교 세계의 테르모필레(Thermopylae)이다. 바로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침입해 오는 악한 세상의 군대 사이에 큰 전투가 벌어진다. 이곳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거룩한 것의 마지막 흔적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제단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제단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강단이 남아 있다. 사람이 그곳에 들어설 때에는 발에서 신을 벗어도 좋을 만큼 거룩한 곳이다. 그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 강단은 구주께서 임재하심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사도들의 분명하고 힘 있는 웅변으로 굳게 세워졌다. 또한 별처럼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를 빛내고 자기 이름을 그 시대에 새긴 수많은 복음 전도자의 신실함과 열정으로 유지되고 지켜졌다. 이처럼 위대하고 거룩한 모든 것의 명예를 지닌 강단이 이제 그 자리를 맡고 있는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나는 악인들이 그 강단에 오르고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슬프도다! 완고해진 죄인이 있다면 죄를 지으면서도 강단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가장 더러운 죄를 계속 저지르며 살다가 마침내 그 죄가 드러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인간의 마음이 너무나 추해서 그가 다시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 짐승 같은 사람 주위에 몰려들었다. 단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또 우리는 자기 죄가 명백하게 드러나 유죄가 확정되었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계속 복음을 선포한 사람들의 사례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자신들이 전하는 바로 그 복음을 부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모든 죄인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옷이 한 번 더럽혀졌다면 이제 강단에 설 생각은 모두 버려야 한다. 제단에서 섬기는 사람은 깨끗해야 한다. 모든 성도는 거룩해야 한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은 누구보다 더 거룩해야 한다. 그런데도 슬프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교회에는 때때로 밝아야 할 태양이 검게 변한 것 같은 목회자가 있었다. 아름답고 환해야 할 달이 피 덩어리처럼 된 것 같은 목회자도 있었다. 하나님이 교회에 거룩한 목회자들을 주실 때 그 교회는 행복하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 때 그 교회는 불행하다. 그런데 나는 오늘날에도 성경의 여러 장보다 낚싯대에 관하여 더 많이 아는 목회자들을 알고 있다. 사람의 영혼을 찾아 나서는 일보다 여우 사냥개에 관하여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혼을 낚는 그물이나 사람들에게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고 간절히 권하는 일보다 사냥용 덫과 그물을 훨씬 더 잘 안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농부의 만찬 자리에서 여전히 떠들썩하게 즐긴다. 축배를 들 때에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내고 잔을 요란하게 부딪친다. 여전히 흥청거리고 쾌락을 즐기며 거칠고 방탕한 무리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여전히 용납하는 교회가 참으로 가련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강단에서 깨끗이 제거되는 날은 복된 날이다. 그때 강단은 다시 찬란하게 서게 될 것이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아 6:10).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전 8:10). 182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전도서의 복음이야기』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전도서의 복음이야기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6-10-19 |
| 쪽수 | 330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736715 |
전자책 ISBN | 9791124736708 |
| 정가 (종이책) | 22,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4.2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구약 지혜서·시가서 명설교 완역본으로 깊은 영적 통찰을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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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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