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은혜 누리기
은혜 누리기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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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곧 교회를 보라. 교회는 어떻게 강함을 드러내었는가? 물론 여러분은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다, 나도 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능력이 부인할 수 없도록 드러나고, 그 결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강함이 아니라 교회의 약함이었다. 믿는 자들이 고난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세상이 보았을 때, 그때야 비로소 세상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의 백성 안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성도들의 고난은 진리의 승리였다. 순교자들은 앞장섰다. 그들은 가장 많은 고난을 당했고 그 결과로 택하신 군대의 용사들이 되었다. 그들이 궁핍하고, 고통받고, 핍박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연약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전쟁 도구, 복음을 위한 전쟁 무기가 되어 정복을 이루게 하였다. 런던의 한 교회의 목회자가 어느 이른 아침 스미스필드에서 화형을 당했을 때, 햇살에 얼음도 녹지 않은 그 추운 새벽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화형장 주위에 서 있었다. 그는 평소 그들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어찌 젊은 신자들이 그토록 이른 새벽부터 목회자의 화형을 보기 위해 모였겠는가? 단순한 호기심이었겠는가? 아니다. 역사에는 그들이 “길을 배우기 위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그가 타는 모습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들도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기 위해 온 것이었다. 로마 교회는 이런 자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통으로 인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약함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영광스러운 승리로 나아갔다. 순교자가 고통당할 때, 그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다. 그 능력은 잔인한 불길에 천천히 타들어 가는 중에도, 그가 끝까지 신앙을 붙들도록 지탱해 주었다. 만일 사람들이 단지 박멸할 수 없는 존재, 또는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였다면, 하나님의 붙드시는 은혜는 그렇게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그는 모세의 떨기나무 가운데서 타오르던 불 속에서처럼,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그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그가 말씀하시자 하늘과 땅이 서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창조였다! 그러나 그때는 그의 능력에 반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전능한 말씀은 어떤 제약도 없이 펼쳐졌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더욱 큰 능력을 어떻게 드러내실 수 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능력을 어떻게 더 분명히 보이실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그분은 자신의 능력을 막힘 없는 말씀으로만 사용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연약하고 불충분한 도구들을 사용하심으로 그 능력을 더욱 드러내신다. 은혜의 나라에서는 주께서 연약함으로 둘러싸인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그리고 스스로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수단들을 통해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에, 하나님의 능력은 두 배로 드러나는 것이다.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은혜 누리기』 중에서
📖 책 소개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기도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은혜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은혜누리기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이제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곧 교회를 보라. 교회는 어떻게 강함을 드러내었는가? 물론 여러분은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다, 나도 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능력이 부인할 수 없도록 드러나고, 그 결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강함이 아니라 교회의 약함이었다. 믿는 자들이 고난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세상이 보았을 때, 그때야 비로소 세상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의 백성 안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성도들의 고난은 진리의 승리였다. 순교자들은 앞장섰다. 그들은 가장 많은 고난을 당했고 그 결과로 택하신 군대의 용사들이 되었다. 그들이 궁핍하고, 고통받고, 핍박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연약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전쟁 도구, 복음을 위한 전쟁 무기가 되어 정복을 이루게 하였다. 런던의 한 교회의 목회자가 어느 이른 아침 스미스필드에서 화형을 당했을 때, 햇살에 얼음도 녹지 않은 그 추운 새벽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화형장 주위에 서 있었다. 그는 평소 그들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어찌 젊은 신자들이 그토록 이른 새벽부터 목회자의 화형을 보기 위해 모였겠는가? 단순한 호기심이었겠는가? 아니다. 역사에는 그들이 “길을 배우기 위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그가 타는 모습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들도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기 위해 온 것이었다. 로마 교회는 이런 자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통으로 인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약함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영광스러운 승리로 나아갔다. 순교자가 고통당할 때, 그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다. 그 능력은 잔인한 불길에 천천히 타들어 가는 중에도, 그가 끝까지 신앙을 붙들도록 지탱해 주었다. 만일 사람들이 단지 박멸할 수 없는 존재, 또는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였다면, 하나님의 붙드시는 은혜는 그렇게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그는 모세의 떨기나무 가운데서 타오르던 불 속에서처럼,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그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그가 말씀하시자 하늘과 땅이 서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창조였다! 그러나 그때는 그의 능력에 반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전능한 말씀은 어떤 제약도 없이 펼쳐졌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더욱 큰 능력을 어떻게 드러내실 수 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능력을 어떻게 더 분명히 보이실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그분은 자신의 능력을 막힘 없는 말씀으로만 사용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연약하고 불충분한 도구들을 사용하심으로 그 능력을 더욱 드러내신다. 은혜의 나라에서는 주께서 연약함으로 둘러싸인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그리고 스스로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수단들을 통해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에, 하나님의 능력은 두 배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다운 능력, 곧 예수님의 생애에서 뚜렷하게 드러난 특유한 능력이다. 신약성경을 읽는 모든 이가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 안에는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독특한 능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지휘하고 큰일을 위해 용기를 불어넣으며 고난 가운데서도 그 마음을 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힘이었다. 또한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의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웅변의 힘이었다. 조국의 그리스인들을 분발하게 하고, 마케도니아의 속박을 끊게 하는 말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난받는 능력, 멸시받는 것을 기꺼이 감당하는 능력,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깊은 나락까지 내려가는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능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다섯 상처들 속에, 사람 중 아무도 그렇게 망가진 얼굴이 없을 정도로 흠모를 잃은 그 장엄하고도 슬픈 얼굴 속에,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간구하실 때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게 했던 그 큰 고뇌의 심장 속에. 사랑과 인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능력이 지금도 사람의 마음을 굴복시키며, 고난당하신 예수를 왕 되신 예수로 높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한다.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니, 이는 이 동일한 능력이 내 안에 장막치시기 위함이라. 나는 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예수님처럼 고난을 당하고, 스스로를 낮추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함이라.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니라.” 곧, 나의 주를 위해 받아들이는 약함과 고난을 견딤으로써 내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강함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 능력은 무엇이었는가? 다시 말하겠다.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8-19)는 그 위임의 권세이다. 바울은 이 능력이 자기 안에 장막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모든 족속을 가르치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는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능력을 얻기 위해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광야의 장막에서 오소리 가죽 아래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위대한 변화시키는 능력이 바울 안에 거하면서, 모욕과 박해, 고난과 죽음을 겪는 그 순간들 속에서 영광스럽게 드러났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여 설교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의 능력은 그의 연약함에 있었다. 그의 낮아지심, 하나님께 대한 의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자기 부정, 아버지께 온전히 바쳐진 헌신에 있었다. 바울은 말한다. 그가 고난당하고 약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도록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는 이 동일한 능력이 그 안에 머물게 하려 함이었다고 말이다.
본문 전체를 하나로 바라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보좌에 앉은 은혜”의 개념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의 보좌이며, 그 위에는 누가 앉아 있는가? 그것은 인격화된 은혜이다. 은혜가 존귀하게 자리에 오른 것이다. 참으로 오늘 은혜는 보좌 위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이다. 어찌하여 이토록 높임을 받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은혜는 ‘정복’을 통해 보좌를 얻었다. 은혜는 사랑받는 자의 모습으로 땅에 내려왔고 죄와 마주하였다. 그 싸움은 길고도 격렬하였다. 죄는 은혜를 짓밟는 것처럼 보였고 은혜는 마치 패배한 듯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은혜는 죄를 붙잡아 자기 어깨에 짊어지고 거의 그 무게에 짓눌릴 뻔하였으나 십자가까지 그 죄를 짊어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 못박아, 죄를 죽였고, 영원히 소멸시켰으며, 영광스럽게 승리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지금 이 시각, 은혜는 보좌 위에 앉아 있다. 은혜는 인류의 죄를 정복하였고, 인간의 죄책을 짊어졌으며, 그 모든 원수들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은혜는 ‘정당한 권리’로 그 보좌에 앉아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어떤 불의도 없다. 하나님이 한 믿는 자를 용서하실 때에도, 그가 죄인을 지옥에 던지실 때만큼이나 의로우시다. 나는 내 영혼 안에서 확신한다. 곧 그리스도를 믿는 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회개하지 않고 죽어 여호와의 임재로부터 쫓겨나는 자들을 거절하는 것만큼이나 크고 순전한 공의가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의로우시면서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게 하였다. “대속(代贖)”이라는 단어를 알고,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자는, 징벌적 정의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음을 알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빚을 다 갚으셨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대리로 고난을 받으시고, 의를 주셨으며, 그것이 그들에게 전가된 자들을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오히려 불의하신 분이 되실 것이다. 은혜는 정복으로 보좌를 얻었고, 권리로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성도들이여, 은혜는 오늘날에도 보좌에 앉아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이다. 은혜는 능력 안에서 즉위하였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를 말할 때, 그것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보좌를 의미한다. 은혜는 하나님의 발판 위에 앉아 있지 않다. 은혜는 하나님의 궁정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은혜는 ‘보좌’에 앉아 있다. 은혜는 ‘통치하는 속성’이다. 은혜는 오늘의 ‘왕’이다. 이것은 은혜의 경륜의 시대이며, 은혜의 해이다. 은혜는 ‘의’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기까지 왕노릇하고 있다(롬 5:21).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은혜누리기이다. 은혜의 능력과 은혜를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공 여부는 은혜를 누리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은혜 누리기』 | 시리즈 / 권차 | 은혜 누리기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5-03-15 |
| 쪽수 | 297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93755822 |
전자책 ISBN | 9791193755822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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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소개
도서출판 나무와열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깊이 있는 사유와, 계절의 끝에서 맺히는 결실처럼 풍요로운 문장을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