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은혜의 진수 맛보기
은혜의 진수 맛보기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 혜택: 결제 완료 즉시 마이페이지 및 주문 완료 페이지에서 영구 보관 & 다운로드 가능
사실 은혜야말로 모든 진정한 도덕성의 원천이자 근거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진실한 거룩함이란 은혜가 만들어 내고 은혜가 지속시키는 거룩함밖에 없다. 이 여인은 은혜가 아니었다면 죽는 날까지 여전히 검고 더러운 상태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놀라운 변화를 이루셨다. 그녀의 뻔뻔한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고, 아첨하던 입술은 닫혔으며 사치스러운 옷은 벗겨졌고 음욕에 가득 찼던 마음은 정결케 되었다. 간음으로 가득했던 눈은 이제 회개의 샘이 되었고 정욕적인 말만 하던 입술은 이제 거룩한 입맞춤을 드렸다. 방탕한 자는 회개자가 되었고 버려진 자는 새 피조물이 되었다.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닌 변혁의 능력을 증언하고 있다. 그녀는 가장 깊은 회개를 나타냈다. 그녀는 풍성히 울었다. 단지 감상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죄악을 기억하며 울었다. 그녀는 슬픔과 수치심으로 울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훈계를 경시했던 일들, 유혹자의 목소리를 따랐던 일들, 그리고 악에서 악으로 달려갔던 일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고통스러운 생생한 꿈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그 거룩한 발을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길로 걸어왔는지를 떠올렸다. 슬픔의 수문이 열렸고, 그녀의 영혼은 눈물 속으로 흘러나왔다. 오 복되신 은혜의 성령 하나님이여, 우리가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깨어진 바위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는 이 장면을 볼 때,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시 147:18). 이 여인의 겸손함을 주목하라. 그녀는 한때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뻔뻔했으며 수치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구주 뒤에 서 있다. 그녀는 예수 앞에 나아가기를 감히 하지 못하였다. 가장 천한 자리라도 주어지면 만족하였다. 그녀는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도 감히 꿈꾸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의 발에 봉사할 수 있다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 영광을 받아들였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은 거룩한 수줍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부당함을 깊이 느낀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가장 낮은 자리라도 기꺼이 감당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이라 하면서 왕의 말을 타고 왕의 옷을 입으며 사람들이 “왕이 기뻐하는 자라” 말해 주기를 원하는 섬김은 결코 참된 섬김이 아니다. 회당의 윗자리를 탐하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랍비’라 부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섬김이다. 여러분이 가난한 자를 돌보고, 낮은 처지의 사람들과 기꺼이 함께하며, 무지한 자의 교사요 어린 자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주인의 등 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자는 진실한 섬김을 하는 자이다. 어둠 속에서 기록되지 않고 박수도 받지 못하지만 기쁘게 섬기는 자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한때 수치를 몰랐던 여인 속에서 은혜는 이제 진실한 겸손이라는 고귀하고 단정한 꽃을 심었고, 그것을 번성하게 하였다. 248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은혜의 진수 맛보기』 중에서
📖 책 소개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설교 연구자들에게도 기도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의 복음설교 시리즈 중 은혜를 주제로 전한 설교이다. 제목은 은혜의 진수 맛보기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사실 은혜야말로 모든 진정한 도덕성의 원천이자 근거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진실한 거룩함이란 은혜가 만들어 내고 은혜가 지속시키는 거룩함밖에 없다. 이 여인은 은혜가 아니었다면 죽는 날까지 여전히 검고 더러운 상태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놀라운 변화를 이루셨다. 그녀의 뻔뻔한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고, 아첨하던 입술은 닫혔으며 사치스러운 옷은 벗겨졌고 음욕에 가득 찼던 마음은 정결케 되었다. 간음으로 가득했던 눈은 이제 회개의 샘이 되었고 정욕적인 말만 하던 입술은 이제 거룩한 입맞춤을 드렸다. 방탕한 자는 회개자가 되었고 버려진 자는 새 피조물이 되었다.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닌 변혁의 능력을 증언하고 있다. 그녀는 가장 깊은 회개를 나타냈다. 그녀는 풍성히 울었다. 단지 감상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죄악을 기억하며 울었다. 그녀는 슬픔과 수치심으로 울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훈계를 경시했던 일들, 유혹자의 목소리를 따랐던 일들, 그리고 악에서 악으로 달려갔던 일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고통스러운 생생한 꿈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그 거룩한 발을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길로 걸어왔는지를 떠올렸다. 슬픔의 수문이 열렸고, 그녀의 영혼은 눈물 속으로 흘러나왔다. 오 복되신 은혜의 성령 하나님이여, 우리가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깨어진 바위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는 이 장면을 볼 때,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시 147:18). 이 여인의 겸손함을 주목하라. 그녀는 한때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뻔뻔했으며 수치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구주 뒤에 서 있다. 그녀는 예수 앞에 나아가기를 감히 하지 못하였다. 가장 천한 자리라도 주어지면 만족하였다. 그녀는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도 감히 꿈꾸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의 발에 봉사할 수 있다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 영광을 받아들였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은 거룩한 수줍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부당함을 깊이 느낀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가장 낮은 자리라도 기꺼이 감당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이라 하면서 왕의 말을 타고 왕의 옷을 입으며 사람들이 “왕이 기뻐하는 자라” 말해 주기를 원하는 섬김은 결코 참된 섬김이 아니다. 회당의 윗자리를 탐하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랍비’라 부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섬김이다. 여러분이 가난한 자를 돌보고, 낮은 처지의 사람들과 기꺼이 함께하며, 무지한 자의 교사요 어린 자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주인의 등 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자는 진실한 섬김을 하는 자이다. 어둠 속에서 기록되지 않고 박수도 받지 못하지만 기쁘게 섬기는 자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한때 수치를 몰랐던 여인 속에서 은혜는 이제 진실한 겸손이라는 고귀하고 단정한 꽃을 심었고, 그것을 번성하게 하였다. 248
3. 모든 참된 신자는 깊은 확신과 기쁜 신뢰를 지니고 이렇게 선언한다. “참된 신자는 결코 이런 죄를 범하지 않는다.” 심령 깊은 곳에서 그는 이 극악한 죄들을 혐오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거나 무효로 만드는 생각조차 견딜 수 없다. 자, 정직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직 은혜만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는 자신을 의지하는가? 당신은 자신의 감정이나 신실함, 회개에 조금이라도 의존하는가? 나는 당신이 그 생각조차도 혐오한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자신이 과거에 무엇이었든, 현재 무엇이든, 미래에 무엇이 되기를 소망하든, 그 어떤 것에도 소망의 그림자조차 두지 않는다. 당신은 그것을 감염된 더러운 걸레처럼 내던지며 가능하다면 우주 밖으로 쫓아버리고 싶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고백한다. 내가 전심으로 복음을 전파해 왔고, 그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만일 행위를 내 구원의 근거로 의지하려 한다면, 나는 그 모든 설교조차 배설물처럼 내던져 버릴 것이다. 내가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하여도(그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나는 단 한 순간도 그것이 내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나 자신이 버림을 받을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성공적인 사역이나 성장하는 교회를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나의 구속자 안에서만 쉼을 얻는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바를 여러분 각자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할 수 있으리라. 여러분의 구제, 기도, 눈물, 핍박을 견딘 일, 교회에 바친 헌금, 주일학교에서의 충성된 봉사, 당신은 이런 것들을 예수의 피와 나란히 두고 구원의 근거로 삼은 적이 있는가? 아니다. 당신은 그런 생각을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확신한다. 당신에게 그것은 지극히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은혜, 은혜, 오직 은혜만이 당신의 유일한 소망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이것이다. 곧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마음속에서 효과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교리이다.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슥 4:6). 바울이 에베소서에 쓴 바와도 같다.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따라, 그의 크신 권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다”(엡 1:19–20). 이제 우리는 본문을 또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 어떤 이들은, 설령 하나님의 은혜가 그 일을 시작하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능력을 지닌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은 그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하늘 아버지 안에 있다는 점이다. 그에 대하여도,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에 대하여 그런 것처럼,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진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성령 하나님의 지속적인 내주(內住)와 하나님의 생명이 지속적으로 그의 영혼 안으로 흘러들어오지 않는다면 여전히 죽은 죄인처럼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단지 지금의 우리가 된 것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유지되는 것도 전적으로 은혜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우리 자신을 망치고, 우리 자신을 정죄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의 전능한 은혜로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말이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된 전 생애 가운데 단 한 시간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존한 시간은 없었다. 우리의 과거 어느 시점을 돌아보아도, “내가 나 자신의 힘만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없다. 우리가 우리의 높은 자리 위에 서 있었던 그때조차, 그 자리에 우리가 설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지혜 덕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달렸을 때도 그 일을 우리의 힘으로 해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을 경험하는 순간은 오직 우리가 뒷걸음질치고, 넘어질 때뿐이다. 결코 전진할 때나 위로 올라갈 때가 아니다. 시편 기자와 함께, 우리는 주께 말해야 한다. “나의 모든 근원이 주께 있나이다”(시 87:7). 주 안에 모든 근원이 있다면 모든 과정도 주께 속한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항상 이렇게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오, 은혜여! 내가 얼마나 큰 빚을 졌는가! 날마다 나는 그 빚을 더해 가네!” 나는 단 한 번 은혜에 빚진 자일 뿐 아니라, 매일 매일 그 빚은 더해지고, 매 시간마다 나의 빚은 더욱 커져만 간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나 된 것이라.” 여러분 중 어떤 이는 스무 해 전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훨씬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말할 점은 어떤 의미에서는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은혜”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무상의 호의, 곧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런 면에서는 은혜에 자람이란 있을 수 없다. “죄인이 믿는 그 순간, 그리고 십자가 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자리에서 즉시 의롭게 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그가 백발이 될 때까지 산다 할지라도, 그는 결코 그 순간보다 더 의롭게 되지 않으며 더 많은 사랑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어린양과 생명의 연결을 맺는 그 순간, 나는 “은혜 안에” 있게 된다. 그 이후에 내가 계속 살아가며 내 은혜가 자라고 믿음이 깊어지고 열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사랑이 더 불타오르게 된다 할지라도, 나는 그 이전보다 더 “은혜 안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더 많이 사랑하지 않으며 그분의 마음 안에서 나를 향한 애정이 그때보다 더 깊거나 순결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모든 죄를 지닌 채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첫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지금보다 덜 의롭다 하지 않으며 덜 받아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선택의 은혜에서 자라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베드로전서에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며, 이런 의미에서 “은혜 안에 있는 것”은 자라지도 후퇴하지도 않는다. 의롭다 하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양과의 연합 안에서, 정죄함 없이, 성도는 영원토록 그러하며,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어느 한순간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만큼, 다른 모든 순간에도 똑같이 의롭다. 오늘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면 나는 어제도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내일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것이다. 내가 구주를 신뢰하는 그 순간에 나는 은혜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으며 그 점에 있어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하게 되었다. 나는 그 완전함 이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점에 있어서는 은혜 안에서 자랄 수 없다. 나는 더 많은 칭의의 자비를 받을 수 없다. 더 많은 용서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한 번에 다 받았고,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본문 말씀은 은혜가 자란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에게 “은혜 안에서 자라 가라”고 말한다. 은혜 자체가 자라는 것과 우리가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증가하지 않는다. 은혜는 항상 무한하며 그러므로 더 많아질 수 없다. 은혜는 항상 영원하며 항상 밑바닥이 없고 항상 끝이 없다. 더 많아질 수도 없고 하나님의 본성상 더 적어질 수도 없다. 본문은 우리에게 “은혜 안에서 자라 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속에 있다. 더 깊은 바다 속에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그 안에서 자라야 한다. 우리는 그 안에 더 많이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 안에 있어 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며 언약 안에 있고 구속의 경륜 안에 있으며 예수님과 연합해 있다. 우리는 더 많이 그렇게 될 수도 덜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구주의 피로 말미암아 영원히 안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혜 자체는 더 자랄 수 없으나, 우리는 그 안에서 더 자랄 수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 가게” 된다.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로 강력한 복음 설교로 널리 알려진 그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서는 은혜의 진수 맛보기로 은혜의 핵심이 무엇이며 복된 은혜의 바다 물결을 어떻게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공 여부는 은혜의 진수를 맛보느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은혜의 진수 맛보기』 | 시리즈 / 권차 | 은혜의 진수 맛보기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5-03-15 |
| 쪽수 | 289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93755884 |
전자책 ISBN | 9791193755884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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