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4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4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형식: EPUB (리플로우)
• 용량: 12.8MB | 기기: PC, 모바일(iOS/Android),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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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외적인 예배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상징적인 의식의 장엄함이나 거룩한 화려함을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옛 제사장이 바깥뜰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갔듯이, 다윗도 외적인 것들을 지나 더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가장 안쪽에 있는 거룩한 임재만이 그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는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알맹이를 원했다. 육적인 규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영적인 생명과 실체를 가져야 했다. 그는 제사 자체보다 하나님을 더 갈망했다. 그는 제사장을 위해 부르짖은 것도 아니었다. 제단이나 성막을 위해 부르짖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부르짖었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날 많은 신앙 고백자들이 아직 배우지 못한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곧 외적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내적인 것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외적인 예배도 아니다. 여러분이 예배하는 하나님은 말이나 무릎을 꿇는 자세나 형식적인 표현과 의식 자체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 모든 외적인 것을 지나 그분께 나아갈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이 영에게 말하듯 그분께 말할 때 기뻐하신다. 비밀스러운 생명을 가진 사람이 그 생명의 능력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말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갈망했던 것이다. 왕좌도 아니었다. 집도 아니었다. 조국도 아니었다. 심지어 은혜의 방편 그 자체만도 아니었다. 그가 갈망한 것은 오직 그의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그의 부르짖음은 이것이었다.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까?”(시 42:2) 나는 시편 기자의 갈망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했다. 다시 말해 회중과 함께 진심으로 예배드리기를 갈망했다. 물론 그는 혼자서도 예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 공감하는 힘이 크게 작용한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경건에 큰 도움이 된다. 더욱이 당시의 예표 시대에는 다른 어떤 곳보다 거룩한 장소가 하나 있었다. 모든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은 그 거룩한 성소로 올라가야 했다. 다윗은 성막 문에서 울려 퍼지던 큰 외침을 기억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외로운 가운데 있던 그는 상상 속에서 회중의 찬양 소리를 다시 들었다. 무리가 영광스러운 할렐루야를 노래하던 그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찬양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영혼의 상태가 그러한 예배에 온 마음을 다 쏟아부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회중 가운데 들어가 함께 예배하기를 갈망한 것이다. 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과 나는 영적인 신선함을 잠시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 다시 살아 있는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얼마나 사모하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을 때, 이곳에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회중과 함께 무릎 꿇고 공동의 기도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얼마나 복된가. 야곱이 천사를 붙잡았듯 우리도 붙들고, 축복받기 전에는 놓지 않을 때 얼마나 복된가. 말씀을 큰 회중 가운데서 들을 때도 얼마나 기쁜가. 특별히 나를 위해 꿀에 적신 떡 조각이 주어질 때 말이다. 내가 직접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고, 나를 위해 일부러 떨어뜨려 놓은 한 줌의 곡식을 거두어 갈 수 있을 때 말이다. 그리고 그날의 양식을 겸손한 감사와 함께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 때 그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4』 중에서
📖 책 소개
오래 전에 스펄전의 신구약 성경 설교전집이 보문사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등을 통해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설교집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새로운 설교가 모두 실려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스펄전의 시편 설교문은 총 439편이다. 반면, 과거 설교전집에는 143편만이 실려 있다. 본 설교집에 296편의 설교가 새로 추가되었다. 둘째, 가독성을 좋게 하였다. 과거 설교집은 단락별로 너무 많은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본 설교집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히 읽도록 단락을 좀 더 세분화하였다. 셋째, 가급적 각 권당 설교를 10-13편 정도로 제한했다. 책이 두꺼울수록 읽는 데 지치기 쉽다. 넷째, 설교 원문에는 없는 성경 장절 표기를 대부분 삽입했으며, 필요한 경우, 현대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당시 인물들의 출생과 사망연도와 약간의 해설을 추가했다. 다섯째, 현대인들이 누구나 이해하도록 12세 수준의 쉬운 번역 방식을 취했다.
스펄전의 설교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설득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주석적, 영적 깊이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영적 성숙에 대한 상당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복음의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설교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4)이다.
📑 목차
💬 책 속으로
본문 속 깊은 은혜의 말씀과 명문장그는 외적인 예배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상징적인 의식의 장엄함이나 거룩한 화려함을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옛 제사장이 바깥뜰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갔듯이, 다윗도 외적인 것들을 지나 더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가장 안쪽에 있는 거룩한 임재만이 그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는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알맹이를 원했다. 육적인 규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영적인 생명과 실체를 가져야 했다. 그는 제사 자체보다 하나님을 더 갈망했다. 그는 제사장을 위해 부르짖은 것도 아니었다. 제단이나 성막을 위해 부르짖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부르짖었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날 많은 신앙 고백자들이 아직 배우지 못한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곧 외적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내적인 것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외적인 예배도 아니다. 여러분이 예배하는 하나님은 말이나 무릎을 꿇는 자세나 형식적인 표현과 의식 자체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 모든 외적인 것을 지나 그분께 나아갈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이 영에게 말하듯 그분께 말할 때 기뻐하신다. 비밀스러운 생명을 가진 사람이 그 생명의 능력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말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갈망했던 것이다. 왕좌도 아니었다. 집도 아니었다. 조국도 아니었다. 심지어 은혜의 방편 그 자체만도 아니었다. 그가 갈망한 것은 오직 그의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그의 부르짖음은 이것이었다.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까?”(시 42:2) 나는 시편 기자의 갈망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했다. 다시 말해 회중과 함께 진심으로 예배드리기를 갈망했다. 물론 그는 혼자서도 예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 공감하는 힘이 크게 작용한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경건에 큰 도움이 된다. 더욱이 당시의 예표 시대에는 다른 어떤 곳보다 거룩한 장소가 하나 있었다. 모든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은 그 거룩한 성소로 올라가야 했다. 다윗은 성막 문에서 울려 퍼지던 큰 외침을 기억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외로운 가운데 있던 그는 상상 속에서 회중의 찬양 소리를 다시 들었다. 무리가 영광스러운 할렐루야를 노래하던 그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찬양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영혼의 상태가 그러한 예배에 온 마음을 다 쏟아부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회중 가운데 들어가 함께 예배하기를 갈망한 것이다. 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과 나는 영적인 신선함을 잠시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 다시 살아 있는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얼마나 사모하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을 때, 이곳에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회중과 함께 무릎 꿇고 공동의 기도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얼마나 복된가. 야곱이 천사를 붙잡았듯 우리도 붙들고, 축복받기 전에는 놓지 않을 때 얼마나 복된가. 말씀을 큰 회중 가운데서 들을 때도 얼마나 기쁜가. 특별히 나를 위해 꿀에 적신 떡 조각이 주어질 때 말이다. 내가 직접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고, 나를 위해 일부러 떨어뜨려 놓은 한 줌의 곡식을 거두어 갈 수 있을 때 말이다. 그리고 그날의 양식을 겸손한 감사와 함께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 때 그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그는 단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기만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사랑이 실제로 자기 마음에 부어지기를 갈망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경험 말이다. 단순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정도가 아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실제로 넘쳐흐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오, 이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 기쁨이 충만해질 때 사람은 황홀해진다. 때로는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종종 믿는 사람을 그 기쁨으로 압도한다. 그는 영광 때문에 힘이 빠진다. 사랑 때문에 병이 든 사람처럼 된다. 여러분은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가? 마치 하늘나라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장차 올 영광의 생명과 현재의 생명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에스골(Eshcol)의 포도송이를 맛보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쓰이는 수정 같은 잔으로 마시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 하늘 아래에서 성령 하나님의 보증만큼 복된 것은 없다. 그것은 하늘 잔치의 미리 맛보는 음식이다. 앞으로 올 기쁨에 대한 보증이다. 그렇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실제로 교제할 때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의 관으로 장식된다. 그때 생명의 강이 우리 영혼 안에서 넘쳐흐른다. 모든 생각이 살아 움직인다. 모든 능력이 새 힘을 얻는다. 모든 열정이 높아진다. 그리고 온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가득 채워진다. “하나님의 본체라는 가장 깊은 바다에 잠겨 그 무한함 속에 완전히 사라지리라.”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는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일은 어제만의 경험이나 오늘만의 경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영원토록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만일 이 거룩한 기쁨이 한동안 끊어지거나 우리에게서 거두어진다면, 우리는 끈질긴 간구로 본문의 고백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오늘 아침 내가 말하는 대상 중에, 한때 매우 활기차고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한때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크게 자라갔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매우 무기력하고 무거워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된 것을 마음 아파하고 있다. 나는 그 불편함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마음의 물결이 더욱 높아져 여러분을 처음 정박했던 자리로 다시 밀어 올리기를 바란다. 한때 누렸던 기쁨과 평안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슬프게도 너무 잘 안다. 나 자신도 그것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때 누렸던 평안한 시간들이여! 그 달콤한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도다. 그러나 그것들은 떠나가 버렸고 세상이 결코 채울 수 없는 아픈 빈자리를 남겼도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때 여러분에게는 오직 한 가지 소원만 있게 된다. 하나님이다. 여러분의 하나님이다. 그때에는 모든 애정이 하나의 애정으로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간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다. 요구 사항을 붙이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오시기만 한다면 만족한다. 설령 하나님이 징계의 막대기를 들고 오신다 해도 만족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만 한다면 만족한다. 하나님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가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병상에 오래 누워 있는 삶도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오직 예수님과 교제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포도주가 넘치는 술틀을 구할 수 있다. 곡식으로 가득 찬 창고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분을 붙들고 놓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의 유일하고도 모든 것을 삼키는 갈망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영원한 위로로 위로받는 것이다. 길을 잃고 거리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본 적이 없는가? 그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를 찾으며 운다. 여러분이 그 아이에게 무엇을 주든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엄마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족할 수 없다.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보라. 여러 가지 장난감을 보여 주어도 소용없다. 맛있는 과자를 주어도 소용없다. 아이는 오직 “엄마”를 원한다. 엄마를 찾지 못하면 작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그러나 엄마를 보여 주기만 하라. 아이가 엄마 품으로 뛰어들게 하라. 그러면 그 아이가 더 무엇을 원하겠는가? 엄마 품에 안긴 그 아이는 완전히 만족하게 된다. 나도 이와 같은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 품에 안겨 울다가 잠들 수만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이 내게서 사라져도 괜찮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를 기뻐하신다면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소원도 내 영혼을 스쳐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 가족 모두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자신들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 저 비둘기를 보라. 이제 막 새장에서 꺼내어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여러분이 그 비둘기에게 머물라고 권해 보라. 비둘기가 좋아하는 모이를 뿌려 보라. 그러나 비둘기는 여러분 곁에 머물지 않는다. 하늘로 날아오른다. 공중을 몇 바퀴 돈다. 그리고 익숙하고 사랑하는 비둘기집을 바라본다. 그 순간 온몸이 집을 향한 날개가 된다. 무엇이 그 비행을 막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다. 아무리 유혹해도 소용없다. 화살이 활에서 날아가듯 곧바로 사랑하는 집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집에 내려앉기 전까지는 지친 날개를 쉬지 않는다. 믿는 사람의 영혼도 바로 이와 같다. 하나님에게서 잠시 멀어졌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영혼은 본향을 향해 날아간다.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이 그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다. 믿는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주기만 하라. 그의 부패한 본성을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 주라. 그의 염려를 벗겨 주라. 그의 불신앙에서 해방시켜 주라. 참된 자유를 주기만 하라. 그러면 그는 즉시 주 예수님께로 날아갈 것이다. 그 무엇도 그를 머물게 하지 못한다. 그 무엇도 그에게 위로를 줄 수 없다. 오직 무한한 사랑의 복된 품 안에서만 안식을 찾게 된다. 성도는 그와 함께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성도에게 필요한 한 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리아처럼 모든 마르다의 염려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발 앞에 앉는다. 다음으로 본문은 이 갈망의 강렬함을 보여 준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목마른 사슴이 헐떡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안타깝다. 마치 온몸이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뜨거워진 혀만 갈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거칠게 숨 쉬는 콧구멍만도 아니다. 번뜩이는 눈만도 아니다. 그 생물 전체가 갈증을 느낀다. 몸의 모든 부분이 갈증을 느낀다. 털 한 올까지도 갈증을 느끼며 헐떡이는 것 같다. 믿는 사람도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 그러하다. 그의 영혼이 바른 상태에 있다면, 그는 이전에 누리던 행복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의 모든 힘을 다하여 갈망한다. 그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그를 주저하게 만들 수도 없다. 시편 기자가 갈증이라는 비유를 사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갈증은 쉽게 달랠 수 없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러 날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물 없이 지낼 수는 없다. 길고 고된 행군을 하는 동안 군인들은 음식이 부족한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행군과 같은 경우를 보면, 수백 명의 군인이 물 부족 때문에 죽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배고픔은 한동안 참을 수 있지만 갈증은 무섭다고. 갈증은 타이르거나 설득할 수 없다. 갈증에는 귀가 없다. 또한 잊어버릴 수도 없다. 사람이 목마르면 목마를수록 그 필요는 더욱 강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오 나의 하나님이여, 이러한 영적인 갈증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누리지 못할 때에는 차라리 항상 이런 상태에 있기를 원한다. 나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을 때가 아니면 한순간도 평안이나 안락함이나 위로를 얻지 못할 정도로 목말라하기를 원한다. 다윗은 말한다.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 42:3) 마치 자기 안에서는 아무런 위로도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영혼은 짠 눈물로 눈을 통해 흘러넘쳤다. 그리고 그 눈물은 그를 더욱 목마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부르짖음은 아침에도 한밤중에도 계속 올라갔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는 반드시 주를 보아야 합니다. 나는 반드시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반드시 주의 사랑을 누려야 합니다. 나를 이 감옥에 가두지 마소서. 나를 주의 앞에서 쫓아내지 마소서. 주의 성령 하나님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나를 다시 주께로 이끌어 주소서. 나는 주를 갈망합니다. 나는 신음합니다. 나는 쇠약해집니다. 나는 주를 사모하다 죽을 것 같습니다. 오 내게 오셔서 주의 은혜를 나타내 주소서.”
✍️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편집부 서평스펄전의 설교들을 보면, 마치 16-17세기 청교도들의 위대한 설교들을 19세기로 옮겨놓은 듯하다. 설교 내용은 매우 예리하고 치밀하다. 성경 주석은 칼빈주의적이며 개혁적이며 복음주의적이다. 설교 방식은 영화의 한 컷 한 컷이 빠르게 진행되듯이 각 주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설교 길이는 길지만, 결코 늘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적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동적이다. 나아가 신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탁월한 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설교가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 현재 선포되더라도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스펄전의 설교 원고를 오늘날 강단에서 몇 개의 예화만 고친 채 그대로 설교하더라도 회중들을 충분히 은혜의 용광로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저자 소개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설교자로, "설교의 황태자(The Prince of Preachers)"로 불린다. 19세에 런던 뉴파크스트리트 채플의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 있는 설교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1861년, 5,000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을 건립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명확하고 열정적인 전달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생애 동안 3,600편 이상의 설교와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영적 감화를 끼치고 있다.
🎓 역자 소개
나무와열매 번역실은 두 가지 번역 방식과 목표로 완성도 높은 번역을 추구한다. 첫째, 중학생 수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다. 대부분 고전어 번역본은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번역실은 기독교 고전들이 마치 오늘날 현대어로 집필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한다. 둘째, 복잡한 문장 구조를 단순화한다. 고전의 특징은 긴 문장으로 인한 복잡함과 난해함이다. 본 번역실은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단문 구조로 쉽고 명쾌하게 번역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영적 갈증을 겪는 모든 성도들이 생수의 강가에서 은혜를 누리도록 사명을 다하고 있다.
🏷️ 기본 정보 및 서지 사양
| 도서명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4』 | 시리즈 / 권차 | 스펄전의 시편의 복음이야기14 |
|---|---|---|---|
| 저자 (원저) | 찰스 H.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 옮긴이 (역자) | 나무와열매 번역실 |
| 출판사 | 도서출판 나무와열매 | 발행일 | 2024-11-20 |
| 쪽수 | 290쪽 | 판형 / 무게 | 128*188mm |
| 종이책 ISBN | 9791124476901 |
전자책 ISBN | 9791124476901 |
| 정가 (종이책) | 21,000원 | 정가 (전자책) | 10,000원 (약 33% 특별 할인) |
| 전자책 사양 | EPUB (리플로우) | 전자책 파일 크기 | 12.8MB |
| 직영 단독 혜택 | 스펄전 명언 캘리그라피 책갈피 2종 세트 | ||
편집자의 기획 노트 (Editor's Note)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의 명설교 전집으로, 영혼에 생명수와 같은 깊은 은혜를 선사합니다.
독자 리뷰 &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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